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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CITY NOW

파리에서 생긴 일

  • 2019-03-06

지난겨울 파리 미술계에서 나온 소식 중 눈에 띄는 두 가지.

아랍 미술의 개척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디아 알아자위의 ‘Portrait de l’Oiseau-Qui-N’Existe-Pas’(2004년).

갤러리스트 르망 부부의 어떤 기부
최근 프랑스에선 대규모 예술품 기부가 화제가 됐다. 이름난 갤러리스트 클로드 & 프랑스 르망(Claude & France Lemand) 부부가 파리의 아랍 세계 연구소(Institut du Monde Arabe, IMA)에 무려 13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한 것. 그뿐 아니라 이들은 향후 IMA에서 지속적으로 관련 전시와 작품 소장, 연구, 카탈로그 출판 등이 가능하도록 기금을 조성했다. 실제로 이는 파리 미술관 사상 최대 규모의 기부 중 하나라고.
르망 부부의 컬렉션은 구성 면에서 독특하다. 현대미술계에서 긴 세월 변방의 예술로 취급됐다가 최근 오일 머니를 무기로 급성장하고 있는 아랍 세계의 유화 366점, 수채화와 구아슈화 239점, 데생 151점, 조각 41점, 판화 129점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특히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브르타뉴에 살며 시적인 풍경화로 일가를 이룬 압둘라 베낭퇴르(Abdallah Benanteur)부터 레바논 출신으로 2004년 파리에서 사망한 추상화가 샤픽 아부드(Shafic Abboud),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한 1세대 이라크 아티스트 디아 알아자위(Dia Al-Azzawi)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 한국에선 낯설지만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예술가들의 작품도 많다. 덕분에 근현대 아랍 미술 작품이 부족했던 IMA의 소장품 라인이 비약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클로드 & 프랑스 르망 부부.

1945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클로드 르망은 1975년 발발한 내전을 피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어 파리로 망명 후 정착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베이루트의 택시 기사 아들로 태어난 그가 자신과 아내가 두 번째 모국에 ‘입양’되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그는 수단 하르툼, 이집트 카이로 등지에서 비교문학 교수로 일하다가 1988년 10월 아내와 함께 파리 6구, 뤼 리트레(Rue Littre)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작품을 모아온 그가 전문 갤러리스트로 다시 태어난 순간. 미술 시장에서 이 부부의 성공은 ‘예외적으로’ 빨랐다. 올해 74세가 된 클로드 르망은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오직 우리 갤러리에만 충실하도록 요구했고, 대신 나는 정기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작품을 사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에텔 아드난의 ‘Paysage 2’.

화제를 바꿔, 1987년 파리에 설립한 이래 지난 30여 년 동안 프랑스와 아랍연맹 간 가교 역할을 하며 문화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교류 증진에 힘써온 IMA는 이번 기증 덕에 미술관으로서 새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어떻게 르망 부부가 이곳에 작품을 기부하게 되었냐고? IMA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측면 외에 실존하는 하나의 세계로서 ‘아랍’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점이 부부의 맘에 들었기 때문. IMA는 르망 컬렉션을 토대로 오는 3월 10일까지 3개의 기획전을 동시에 진행하며 발 빠르게 신소장품을 활용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클로드 르망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기부는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와 아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도 작품들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품었던 열정을 계속 증언할 테니 말이다.” 과연 지나온 생의 궤적을 고스란히 들어내 공익을 위해 헌정하겠다는 신념과 그 실천의 가치는 온 세상이 쉽게 말하는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분명하다.











아제딘 알라이아의 흔적이 서린 서점.

아제딘 알라이아가 파리에 남긴 것
베르리가 18번지(18, rue de la Verrerie). 77세의 나이로 2017년 11월 18일 영원히 잠든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ia)가 거주하며 아틀리에로 삼았던 파리 중심부 마레 지구의 주소다. 이곳이 그가 떠나고 1년 만에 새 공간으로 변모했다. 바로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이 그의 문화적·예술적 유산을 더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해 기존에 운영하던 갤러리 아제딘 알라이아(Galerie Azzedine Alaia) 내에 예술 전문 서점을 새롭게 마련한 것.
서점은 넓지 않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범상치 않다. 디자이너 생전의 컬렉션 목록에 있던 장 프루베의 간결한 책장과 테이블이 중심에 놓였고, 공간을 밝히는 2개의 천장 조명은 세르주 무이의 상징적 디자인으로 알라이아의 거실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서점 한쪽 벽면에 줄리언 슈나벨이 제작한 아제딘 알라이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가장 중요한 책 선정에서도 알라이아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그의 작업 세계를 연대별, 주제별로 정리한 도록과 더불어 그와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의 작품집 위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은 헬무트 뉴튼이나 브루스 웨버,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등 다양한 분야의 거물. 패션 애호가를 만족시킬 만한 마리아노 포르투니, 발렌시아가 등의 책도 빼놓지 않았다. 아제딘 알라이아는 패션, 건축, 문학 등 여러 출판 프로젝트에 긴밀하게 관여할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평소 그의 뜻에 따라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은 자체 출간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서점에 특별한 오라를 더하는 건 가장 안쪽 벽에 걸린 한 점의 초상화. 깨진 그릇 조각을 활용한 거친 질감과 카리스마를 풍기는 눈빛이 인상적인 알라이아의 상반신을 그린 유화는 영화감독 겸 화가 줄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의 작품이다. 공간을 채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슈나벨 역시 이 공간의 주인과 막역한 우정을 나눴다. 서점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영업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아랍 세계 연구소,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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