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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CITY NOW

단단한 아트 트라이앵글

  • 2019-03-06

프랑크푸르트 미술계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 슈테델슐레와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포티쿠스가 만드는 단단한 공동체적 시스템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 미술대학 슈테델슐레의 정문.

우리는 오늘날 소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고 일컫는 베를린, 런던, 파리 등 대도시가 자본과의 싸움에 지쳐가는 모습을 본다. 자본 앞에 무기력해진 많은 예술가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난다. 이들을 따라 자연스레 유입된 문화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 떠돌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며 ‘문화 중심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새로움과 혁신이 존재하지 않는 예술의 매너리즘에 빠진다.
이러한 탈문화 현상 혹은 문화 경질화를 막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단발적 정책과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행사를 진행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건 ‘공동체적 시스템’. 다소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문화 주체의 양성과 생성 그리고 외부와의 교류와 건강한 경쟁을 통해 문화의 혈류가 도시 전체에 흐르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의미한다.






건축가 한스 홀라인이 설계를 맡은 것으로도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독일 경제의 중심 도시 프랑크푸르트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 있어서 이러한 공동체적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있다. 특히 슈테델슐레 미술대학(Stadelschule),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Museum fur Moderne Kunst), 포티쿠스 미술관(Portikus)의 아트 트라이앵글이 안정적으로 형성돼 동시대 미술의 동력을 생산한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슈테델슐레 미술대학 출신의 작가 아네 임호프가 퍼포먼스 ‘파우스트(Faust)’를 선보이며 독일 국가관에 황금사자상을 안겨 프랑크푸르트 미술이 크게 조명받았다. 같은 해 국내에선 양혜규 작가가 모교 슈테델슐레에 교수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슈테델슐레는 이전부터 유명 작가와 이론가가 교수로 활동해온 곳이다. 양혜규 작가를 비롯해 독일의 대표적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기획한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 독일의 가장 진보적인 아트 매거진 〈텍스트 추어 쿤스트(Text zur Kunst)〉를 창간한 이자벨 그로 등이 교수로 있다.






슈테델슐레 미술대학 교수이기도 한 작가 볼프강 틸만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와 개성 넘치는 학생들 또한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담론을 형성한다. 국제적 활동 경험이 풍부한 미술인들이 자리 잡으며,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미술관들 역시 자연스레 그 규모와 명성이 한 단계 높아졌다.
그중에서도 1991년 개관한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 건축가 한스 홀라인이 설계를 맡아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삼각형 모양의 부지 위에 들어선 뾰족한 삼각 형태의 미술관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대표작으로도 꼽힌다. 내부는 다양한 수직적 구조를 이루는데, 그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달라 마치 미로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현재 45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1981년 프랑크푸르트시가 기업가 카를 슈트뢰어의 컬렉션 상당 부분을 전해 받은 것에서 출발한다. 초기엔 미국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로 구성된 컬렉션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가 대부분이었으나, 동시대 미술의 범주에서 프랑크푸르트가 지닌 환경이 자주 언급되고 그 수요가 늘면서 전시 작품의 시대적 범위도 함께 넓어졌다. 더불어 다양한 국제기관과 교류하고 동시대 미술관의 대중적 기능을 수용하면서 지금은 독일을 넘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포티쿠스 미술관의 외관과 전시 공간.

슈테델슐레 미술대학,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과 더불어 아트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는 포티쿠스 미술관은 물리적 규모와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서 앞선 두 곳보다는 영향이 미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간 위치에서 세대와 세대, 전문가와 대중을 잇는 징검다리로서 프랑크푸르트 미술 신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곳이 바로 포티쿠스 미술관이다. 1987년에 설립한 포티쿠스 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알테 브뤼케(Alte Brucke) 중간에 있는 작은 섬 마이민젤(Maiminsel)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과 교회가 연상되는 독특한 외관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지붕엔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작업 ‘불빛 연구소(Light Lab)’(2006~2007)가 설치되어 있어 저녁이면 불빛을 밝히며 존재감을 뽐낸다.
이곳은 겨우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학예사들이 대규모 전시를 매년 6~7개씩 여는데, 슈테델슐레 출신 학생 혹은 교수의 전시를 많이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네 임호프와 양혜규의 전시도 개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단지 이들의 작업만 보이는 건 아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작가의 전시가 포티쿠스 미술관이 개관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남준과 게르하르트 리히터, 솔 르윗, 브루스 노먼, 클라스 올든버그, 한스 하케 등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만약 이곳이 중간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프랑크푸르트의 미술은 과연 자본과 문화 사이의 충돌에서 고유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건 그만큼 오늘의 프랑크푸르트 미술 현장과 그 안정적 인프라를 이야기할 때 포티쿠스 미술관을 빼놓고선 논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처럼 프랑크푸르트의 아트 트라이앵글은 각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지니면서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관계를 지속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생겨나는 담론은 세계의 많은 예술가, 이론가, 비평가, 큐레이터에게 주목받는다. 미술계의 건강한 ‘공동체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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