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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CITY NOW

의료 시스템과 예술의 공생

  • 2019-03-07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의료 서비스를 지속하고자 영국 국민의료보험이 선택한 해결책, 그리고 환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병원의 새로운 모색. 바로, 예술이다.

1 NHS 70주년 기념 포스터 제작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매길의 ‘In Two Parts’. 화면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2 임피리얼 헬스 채러티의 2018 레지던스 아트 프로그램. 작가 나베인 G. 칸도소스의 ‘폴리크롬 플레이’.

NHS의 예술적인 위기 탈출
‘모든 국민은 지불 능력에 상관없이 의료 욕구에 따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마련한 영국의 의료 제도 ‘국민의료보험(National Health Service, 이하 NHS)’. 잘 알려져 있다시피 NHS는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영국 내에서 모든 의료 서비스는 무료다. 이 이상적인 의료 시스템은 돈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명암이 있듯이, NHS 역시 부족한 예산이 골칫거리. 일례로 NHS의 예산 문제는 브렉시트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캠프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유럽연합에 들어가는 돈으로 NHS의 예산을 연 200억 파운드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선전으로 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영국인이 브렉시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건 유럽연합 탈퇴라는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이처럼 NHS 확충을 바라는 소망이 이면에 자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NHS를 향한 영국인의 사랑이 지대하듯 예술계의 지지도 뜨겁다. 런던만 하더라도 NHS 산하의 많은 병원이 예술 단체와 협업하고 있다. 그중 영국 예술위원회가 공인한 의료 자선단체 임피리얼 헬스 채러티(Imperial Health Charity)가 NHS 소속 병원과 환자, NHS 직원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체 소장 작품만 2000점을 웃돌 만큼 예술을 향한 관심이 높은 이들은 작년,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함께 NHS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피터 블레이크, 제러미 델러, 톰 햄믹, 모나 하툼, 데이비드 마치, 엘리자베스 매길 그리고 크리스 오르가 참여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이들은 각각 자신의 개성을 살린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피터 블레이크는 선명한 색상과 대담한 타이포그래피로 화면을 채웠고, 모나 하툼은 포스터보다 파인 아트에 가까운 하늘색 화면을 공개했다. 각양각색 인쇄물에서는 예술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NHS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창립 70주년 기념 포스터라 종류당 70장을 제작했고, 판매 수익은 모두 NHS와 NHS 산하 5개 병원 운영에 사용한다고. 운 좋게도 아직 몇몇 포스터는 CCA 갤러리 홈페이지(www.ccagalleries.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
더불어 임피리얼 헬스 채러티는 NHS 소속 병원에서 헨리 무어, 에두아르도 파울로치, 게리 흄 등 저명한 작가들의 전시를 열거나 런던의 갤러리, 아티스트와 연계해 환자들이 창작을 경험할 수 있는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3 피터 블레이크는 텍스트 디자인으로 NHS 기념 포스터를 꾸몄다.
4 톰 햄믹이 제작한 NHS 포스터.

병원 안 미술관
병원에서 진행하는 예술 전시는 ‘감상’ 이상의 만족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례로, UCLH(University College London Hospitals)의 UCLH 아트 앤 헤리티지(UCLH Art and Heritage) 부서를 들 수 있다. ‘예술과 함께하면 환자의 스트레스, 통증, 혈압 감소와 정신 건강 개선이 두드러지며 병원 내 직원들의 사기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한 연구 조사를 바탕 삼아 이 부서를 설립했다고. 지난 30년간 UCLH 아트 앤 헤리티지는 예술을 통해 환자와 직원에게 품격 있는 병원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예술 보존을 꾀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 단지 병원의 공실을 갤러리로 바꾼 겉핥기 수준이 아니다. 전담 큐레이터의 진두지휘 아래 작품 컬렉팅, 전시, 환자를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미술관 못지않은 활동을 펼친다. 이들의 고무적인 행보는 런던을 넘어 영국 대부분의 병원이 예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자극제가 됐다.






NHS 소속 병원 중 하나인 해머스미스 병원에서 열린 < Art in Focus: Sandra Blow > 전시 전경.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어린이 병원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 이하 GOSH)도 예술 부서 GOSH 아츠(GOSH Arts)를 통해 환자에게 자체 아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GOSH도 NHS 산하지만, GOSH 아츠만큼은 독립 운영을 고수한다. 즉 어린이 환자와 소통하고자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 특히 건물 곳곳에 특별한 작품을 배치한 GOSH 신관에서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 침대에 하염없이 누워 있는 환자들을 위한 가상 창문 제작이었다. 필름메이커 그룹 아카다미아가 제작한 혁신적인 가상 창문은 환자가 침대 머리맡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지루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다른 외부 풍광을 보여준다고. 대기실과 어린이 놀이방은 조셀린 하우가 디자인한 활기찬 그래픽 패턴으로 꾸몄다. 한편 GOSH 아츠는 GOSH의 신경학자, 정신과 의사 그리고 어린이 극장 회사 리츠(Theater Rites)와 손잡고 예술 프로그램 ‘애니메이팅 더 브레인(Animating the Brain)’을 개발했다. 그리고 실험 대상자의 뇌를 로봇 랩보이(LabBoy)에 일대일로 구현해 환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부분을 예술 작품으로 전환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이 프로그램의 진척을 위해 2주 동안 GOSH의 신경과 어린이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여자 또한 워크숍에 흥미를 갖고 신경학으로 예술의 창조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평을 내기도.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신경이 손상된 어린이의 치료를 돕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영국 의료계에서 예술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이로운 존재다. 예술계도 전형적인 전시장을 벗어나 병원에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둘 사이의 공생 관계, 왠지 느낌이 좋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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