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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ARTIST&PEOPLE

작가와 정원

  • 2019-03-06

그간 경현수 작가는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작품을 위해 그리기와 수정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그것이 정원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현수 작가.

1년 전, 경현수 작가는 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한 낡은 주택을 구입해 1층을 작업실로, 2층을 주거 시설로 만드는 공사를 진행했다. 1층 작업실 책상 앞엔 마당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냈고, 그는 그것을 통해 손수 꾸민 작은 정원을 매일 바라본다.




1 경현수 작가의 정원 위에 세워진 납작한 돌. 이는 정원 내에서 조형적 역할을 한다.
2 정원 안엔 경현수 작가의 조각 작품도 몇 점 숨어 있다. 이는 자연스레 변색되어 식물과 조화를 이룬다.

집 구조상 처음부터 이 자리에 정원이 있었던 것 같네요? 맞아요. 10개월 전만 해도 정원에 제법 큰 나무 세 그루가 있었어요. (대문 옆, 정원 한쪽을 가리키며) 원래는 저기 있는 개나리가 정원 대부분을 덮고 있었죠. 장미 넝쿨도 큰 게 있었고요. 옛날 스타일이긴 해도 정원 관리는 잘되어 있었는데, 제 취향이 아니라 공사할 때 다 뽑아달라고 했어요.

그럼 지금 이곳에 있는 식물은 직접 심으신 건가요? 네, 정원 공사에 꽤 시간을 들였어요. 집 공사할 때 건축 폐기물이 상당했는데, 그게 정원의 흙 위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뭔가가 자라날 형편이 안 됐죠. 오염된 흙은 버렸고, 지금 보이는 식물은 전부 양재동 꽃 시장에서 사 와 직접 심고 가꾼 거예요.

정말 공들여 가꾼 것처럼 보여요. 혹시 이전에도 식물로 공간을 꾸며본 적이 있나요? 없어요. 그냥 조그만 화분 몇 개가 다였죠. 그런데 정원 가꾸기를 시작해보니 식물이 저랑 좀 맞는 거 같긴 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이요? 아니, 실은 제 작업이 식물과 연관성이 깊어요. 지금의 페인팅 작업이나 이전의 설치 작업도 구체적으로 보면 식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죠. 특히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방식이 닮았어요. (바로 옆에 있는 설치 작품을 가리키며) 이것도 그래요. 이렇게 얽히고설킨 부분을 사람들은 작위적이라고 생각하던데, 그렇지 않거든요. 식물이 자라는 모습과 유사하죠.

작품의 창조주인 작가만 알고 있는 어떤 규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만의 규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철저히 계산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식물이 성장하는) 흐름을 굉장히 따른 거죠. 그래서 형태에서 리듬감이 느껴져요. 규칙이 없으면 리듬감은 생기지 않거든요.

이전의 작업 중엔 실제 데이터(실물 지도 등)를 기반으로 한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작 데이터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것에서 파생한 어떤 이미지를 추출하는 게 중요한 작업이었죠. 정작 ‘이거다’ 하고 이미지를 정하는 과정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그려보는’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질리지 않는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계속 그리고 수정했죠.

한데 그렇게 완성되는 건 결국 비구상형의 추상 이미지일 텐데 ‘수정이 필요하다’는 감각은 어떻게 생기는 건가요? 그런 결정은 작가의 감각적인 부분도 작용하지만, 디자인 센스가 중요하다고 봐요.

디자인 센스란 결국 ‘감’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디자인 센스는 기본적으로 그리드를 맞추는 작업인데, 이게 너무 정확하면 재미없으니까 ‘감’을 조금 첨가하는 거죠.

혹시 이런 건가요? 몇 대 몇 비율로 그리드를 맞추긴 해야 하는데, 나는 현대미술 작가이기 때문에…. 맞아요. 파괴시키죠. 사실 그게 ‘감’이라는 거예요. 정확히 안 맞추죠. 왜냐면 거기 맞추면 생각보다 작품이 금방 지루해지거든요.




3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이미지로 완성한 정원.
4, 5 ‘The Line #4’와 ‘The Line 1804’.

지금 정원에 있는 식물도 여러 번 다시 심고 뽑고를 반복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이 거의 없는 백지 상태에서부터 그 작업을 시작하셨죠. 이는 그간 해온 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정원을 제 작품하고 동일시했거든요. 작품과 나, 정원의 관계가 굉장히 비슷한 맥락으로 와닿았어요. 솔직히 정원이 제 눈앞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전 아무런 정리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집 구조상 너무 훤하게 그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 어제 없던 잡초가 하나 났네? 그게 보기에 아름답다면 그냥 두지만, 거슬리면 바로 제거해요. 나무에도 새 가지가 올라왔어요. 그런데 다음 날 보니 거슬려요. 그럼 제거해요. 이렇게 정원을 가꾸게 된 거죠. 이런 과정이 제가 작품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과 같다는 거예요.

하지만 너무 ‘제거’에만 열중하면 나중에 가선 조금 심심해지지 않을까요? 그림도 정원도요. 그렇게 되기 전 새 충격을 가하죠. 새 이미지를 집어넣기도 하고, 새것과 기존 이미지를 충돌시켜서 막 꼬이게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해요. 하지만 목표는 하나예요. 오랫동안 바라봐도 보기 좋은 이미지.

한데, 그렇게 감을 통해 완성되는 걸 추상 이미지라고 한다지만, 어떤 작품에선 그 안에 사람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있더라고요. 뭐, 이 또한 저만의 감각이 작동한 것이지만요. 그럴 거예요. 사람들은 추상미술에 자기와 익숙한 이미지를 대입시키기도 하니까요. 또 그 부분은 실제로 제가 아주 즐기는 파트예요.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데 우연히 어느 순간 그게 실제 사물과 유사성을 갖는 경우가 생길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너무 한쪽으로만 가면 재미없으니까 의도적으로 뉘앙스를 조금 넣어주기도 하죠. 대략 10% 정도 넣어주는 게 제 작업 방식이에요.

그런 작업 방식은 정원 가꾸기에도 적용할 수 있겠죠? 물론이죠. 지금 보이는 식물들도 전부 작품과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자리를 잡았어요. 처음부터 모두 지금의 자리에 있던 건 아니죠. 돌멩이도 옮기고, 저기 화초들도 옮기고요. 각자 자라기 좋은 위치에 제가 보기 좋은 위치를 더해 완성한 거죠.

중간중간 납작한 돌들은 왜 저렇게 배치하신 건가요? 일단 위에 뭘 올려두려고?(웃음) 화분을 올려놓을 수도 있고, 제 작품을 올려둘 수도 있게요. 기본적으로 저는 조형적인 걸 본다고 했잖아요. 정원이 크지 않다 보니 이왕이면 이 안에선 높낮이가 전부 비슷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로, 이 평평한 정원에 뭔가 하나가 높이 튀어나와 있으면 그것에 맞게 조형적으로 맞춰야 하잖아요. 그럼 계속해서 뭔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그 높이를 아래로 ‘까는’ 용도로 돌을 가져온 거죠. 제가 식물을 살 때도 높이가 있는 건 잘 안 사요. 정원이 작아 식물이 높으면 답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잘라버리는 거예요.

정원은 아무 말도 없는데, 정원 주인이 주변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섬세하고 예민해서 그러는 편이죠.(웃음)

곧 봄이 오면 정원의 각종 나무와 꽃이 엄청 만개할 것 같아요. 그럴 때도 정원 주인은 계속 뭔가를 자르고 있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자르면서 조용히 제 작업을 진행하겠죠.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6월쯤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전시가 있어요. 미술관이 리뉴얼된 뒤라 조금 크게 전시가 열려요. 그래서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죠.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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