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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FEATURE

EDITOR’S VIEW

  • 2019-03-06

CES 2019에서 엿본 자동차의 미래



벗어던질 권리 예술인가, 외설인가. 따분한 논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건 몇 달 전 디올 맨 2019년 프리폴 쇼에 다녀온 선배와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킴 존스의 디올이 두 번째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날 쇼장 한가운데에는 벌거벗은 듯한 거대한 여자 로봇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고, 반짝이는 메탈릭 피부엔 색색의 찬란한 빛이 사정없이 교차되어 쏟아졌다. 섹시 로봇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과 함께 끊임없는 외설 논란을 면치 못한 아티스트 소라야마 하지메와 디올의 눈부신 협업 결과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으로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주 근사한 파격이었다. 디올 맨이 새로운 역사를 쓴 압도적 무대와 작품도 멋있었지만,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은 킴 존스의 시도가 더 돋보였다. 킴 존스는 이번 쇼를 마친 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본능을 따르고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명하게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문득 작년 여름 진행한 화보가 뇌리를 스쳤다. 7・8월호 특집으로 편집부가 함께 ‘8인의 사진가가 포착한 청춘의 찰나’란 주제로 화보를 진행했을 때, 나는 어느 젊은 사진가와 양양 바닷가로 떠났다. 모델, 사진가,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모두 30대 초・중반으로 비슷한 또래인 우리는 마음을 모아 머릿속에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일말의 두려움 없는 자유로운 청춘을 바닷가에 수채 물감처럼 풀어놓고 싶었다. 모델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해를 삼킬 듯한 찰나의 수평선을 향해 달려갈 때, 누구 하나 그것이 ‘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누렸고, 누군가는 그저 갈망했던 청춘의 겁 없고 발칙하고 자유로운 어느 날을 떠올렸을 뿐.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인쇄 직전 여자의 누드가 출판 심의에 문제가 없는지 설왕설래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이는 예술이라 했고, 어떤 이는 “벗은 몸은 무조건 야하다”고 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도 ‘선정성’에 대한 모호한 기준만 있을 뿐,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행여나 출간 후 문제가 발생할까 염려되어 거듭 연락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저희는 사전 심의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지인인 변호사는 이렇게 거들었다. “아무리 누드라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찍었다면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라이언 맥긴리?” 참 시답잖다고 생각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시비가 피부로 다가온 순간, 문화를 소비하는 우리네 현실이 참 애석하게 느껴졌다. 흡사한 작품임에도 어떤 것은 세계적 아티스트라서 예술성을 인정받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예술가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 어떠한 반열에 오른 뒤에야 그토록 갈망하던 작업을 펼치면 되는 걸까? 혹은 끊임없이 외설 시비로 고발과 수모를 감내해야 했던 아이 웨이웨이나 무라카미 다카시, 그리고 소라야마 하지메처럼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고 함께 총알을 맞아줄 세계적 인플루언서를 만나기만 기다려야 하는 걸까? 요는, 창작이란 자고로 예술의 영역이니 외설을 구분 짓는 잣대를 느슨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평론가 존 버거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오랜 시간 문화 소비 주체를 철저히 남성 편향적 시각에 고정한 채 여자의 누드를 아름다움으로 소비했다. 존 버거의 평론이 그 전에 예술을 보던 방식을 완전히 전복시킨 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같은 작품도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누드가 곧 외설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는 예술과 외설을 가르는 올바른 잣대가 필요하다. 벗은 몸이 곧 선정적 대상이 된다면 아름다운 인체를 아름답다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 8년 전, 야한 그림을 올렸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에서 경고나 사전 설명 없이 계정을 폐쇄당한 사용자가 있었다. 여자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수 세기 동안 논란이 된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66)이란 작품으로,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다. 그리고 작품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담함과 솔직함, 쿠르베의 정교한 색채 사용과 위대한 기교 덕분에 매혹의 힘을 가지며, 포르노그래피 이미지도 탈피했다’. 당시 사진을 올린 사용자는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시도했지만, 페이스북은 본사가 자리한 캘리포니아에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버텼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7년 만에 프랑스에서 재판이 시작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오늘날 문화를 소비하는 거대한 수단인 SNS마저 예술을 오롯이 예술로 바라보지 못하는 동시대에서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하는가. 본능을 따르고 스스로를 믿으며 현명하게 위험을 감수할 것. 어쩌면 킴 존스의 말에 그 해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_ 전희란




CES 2019에서 엿본 자동차의 미래
‘CES(Consumer Electronics Show)2019’가 막을 내렸다. 155개국 4500개 기업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지만, 막상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평이 많았다. CES 스타 애플과 삼성은 조용했고 가전, 무선통신 분야에도 혁신은 없었다. 심심했던 건 맞지만 ‘정체’라는 일부 의견은 박하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매년 나오지 않는다. 이미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5G, 클라우드 컴퓨터 같은 4차 산업의 핵심 기술은 상용화가 이뤄졌다. 현재 화두는 이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다. 그게 다음 진화의 키다. 그 지점에서 CES 2019는 유의미했다. 이번 CES가 예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주인공이었다. 21세기 들어 CES는 스마트 디바이스 경연장으로 불렸다. 올해는 달랐다. 이번 CES는 ‘모빌리티 쇼’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동차가 주연이었다. CES는 아예 ‘교통, 가상현실, 스포츠 기술 및 디지털 건강의 근간이 되는 5G 생태계 전체가 모이는 전시회’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명시했다. CES에 참가한 자동차 제조업체는 모두 11곳.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 기아자동차등 전통 자동차 브랜드를 포함해 벨 헬리콥터, 할리데이비슨 같은 특수 모빌리티업체도 참가했다. 2019년 CES에서 엿본 자동차의 미래는 ‘C.A.S.E’가 중심이었다. 바로 연결(C, Connectivity), 자율주행(A, Autonomous), 공유(S, Shared), 전기구동(E, Electric)이 그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들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접목되는 광장이 자동차인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율주행 콘셉트 모델 ‘어바네틱(Urbanetic)’을 선보였다. 어바네틱은 전기자동차 설계의 특수성(배터리와 모터가 차량 하부에 집중된 형태)을 이용해 바닥은 그대로 유지하고 용도에 따라 외형을 교체할 수 있다. 모듈은 12명의 인원이 탑승할 수 있는 승객용과 최대 10개 팔레트를 적재할 수 있는 화물 운송용 두 가지다. 아우디는 가상현실을 차량에 적용했다. 디즈니와 협업해 ‘마블 어벤저스 : 로켓 레스큐 런’ VR 콘텐츠를 선보였다. 자회사인 AEV(Audi Electronics Venture)와 공동 설립한 홀로라이드가 선보인 기술은 VR 콘텐츠와 차량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연동해 생동감 넘치는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제공한다. 기아자동차는 IT 기술로 감성 주행(Emotive Driving)을 돕는 ‘R.E.A.D’ 시스템을 선보였다. 탑승자의 생체 정보와 감정 상태를 인식해 내부를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이 밖에 현대모비스는 레벨4 자율 자동차 콘셉트 모델 ‘엠비전’을 통해 전면 유리창에 펼쳐진 스크린을 터치하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 작동하는 기술을 보여줬다. CES엔 나오지 않았지만 구글은 최근 ‘웨이모 원’이라는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고, GM과 포드, 보쉬도 올해 자율주행을 이용한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상상해보자. 운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동차. 이건 차(car)의 개념을 통째로 변화시킨다. 그간 자동차는 오롯이 이동을 위한 수단이었다. 차량의 모든 기술은 주행을 위해, 내부 환경은 운전을 위해 채워졌다. 이제 자동차는 휴식의 장소이자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기차, 비행기와 같지만 더욱 개인적인 공간이다. 일부 전문가는 자율주행이 카섹스를 크게 증가시켜 되레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예측을 내놓았다.




바뀌는 건 섹스뿐이 아니다. 먼저 운전, 화물 운송과 관련한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 버스와 택시, 트럭은 운전자 대신 최대 처리 속도 20Gbp에 이르는 5G로 연결돼 스스로 이동한다. 탑승 장소와 목적지, 물건 픽업 장소와 배달 장소만 입력하면 끝이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도심의 교통 체증도 해소될 것이다. 사실 도심 트래픽은 차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신호 체계를 무시한 몇몇 운전자 때문이다. 정해진 룰대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세상에서 출퇴근은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는 도심 외곽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인구를 증가시켜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고 빈도 역시 크게 떨어져 자동차 보험 산업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대신 차량 공유 업체와 내부 인테리어 설비 산업은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자연스레 자동차에 대한 가치 기준도 바뀔 것이다. 몇 마력, 토크 성능, 연비 수준 같은 주행 데이터보다는 탑승자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거라는 뜻이다. 대형 스크린과 5.1 채널 스테레오, 180도로 움직이는 비엔나 가죽 소파와 발 마사지 기능을 탑재한 차량이 새로운 프리미엄의 기준이 된다. 탑승자는 집을 인테리어하듯 다양한 모듈로 개인의 취향과 목적에 맞게 차량 내부를 꾸밀 수 있다. 이제 두세 가지 트림으로 출시되는 형태의 차량이 아니라 기본 플랫폼에 수백 가지 모듈로 차량을 꾸밀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도심엔 드라이빙 스루 형태의 숍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자동차도 휴대폰이나 IPTV처럼 통신 요금이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시대가 개막할 것이다. 이건 모두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거나 바로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_ 조재국등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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