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MARCH. 2019 FEATURE

EDITOR'S TASTE

  • 2019-03-05

잠시 어슷하던 일상이 궤도를 되찾고 있다. 봄이 오고 이내 일상의 탈출을 계획하게 될 즈음, 우리가 그리는 ‘그곳에서의 어떤 모습’.



진득이 머무르기

“리스본은 관광지가 되게 작은데 관광객은 그 앞에만 계속 있고, 그곳 빼고는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도시예요. (중략) 너무 친근한 느낌이랄까.” 소설가 김연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여행지로 리스본을 꼽았다. 내가 찾은 리스본에 대한 기억과 닮아 있는 그의 이야기에 지난 여행 사진을 들여다본다. 돌 조각이 깔린 길과 숙소 옆 언덕길을 따라 달리던 낡은 트램, 빵에 물릴 즈음 식당에서 발견한 매콤한 피리피리 소스가 좋았던 곳. 시차로 뒤척이다 일찍 눈뜬 하루는 간밤에 사둔 작은 맥주 한 병을 꺼내 마신 뒤 남편과 산책을 나섰다. 슬며시 고개 드는 아침 해에 하늘이 열리는 골목을 걸으며 건물 외벽을 장식한 갖가지 타일을 구경하고, 불 꺼진 상점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하루의 계획을 짜던 기억도 난다.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부지런히 문을 열어둔 델리에 들러 요깃거리를 사면 아침 산책이 끝나는데, 그길로 우린 숙소 옥상에 올라가 빨간 지붕을 한가롭게 내려다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바르셀로나와 리스본을 지나 파리를 잇는 신혼여행 내내 관광지의 긴 행렬에 발 맞추는 일도, 쇼핑도 없던 여유로운 일상. 새록새록 떠오르는 좋은 기억에 올해는 꼭 다시 찾아 좀 더 진득이 머무르고 싶어졌다. 아담한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예약해 느긋하게 햇빛을 즐기고, 저녁 식사 무렵엔 노란 깅엄 체크 테이블과 석양이 예뻤던 레스토랑 폰토 파이널에 들러야겠다. 새로운 걸 좇는 대신 좋았던 곳을 다시 한번 찾는 게 우리의 여행 방식이니까. 에디터 정유민





멋진 신세계

어린 시절,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호기롭게 출발선에 섰으나 끝내 결승선을 넘지 못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내게 서포터스라는 단어는 무척 소중하고 감사하다. 마치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랄까. 2005년은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던 시점이기도 하고, 내가 ‘맨유’ 팬이 된 해기도 하다. 골수팬이 된 지 어느덧 14년째. 화면으로만 보던 노스웨스트 더비(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라이벌 대결)를 이제는 직접 눈에 담고 싶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와 리버풀 지역의 앙숙 관계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4년 맨체스터가 거대한 운하를 건설하면서 해안가 지역인 리버풀이 큰 타격을 받았고, 두 지역의 갈등은 그때 고조됐다. 결국 지역 감정이 축구로 이어지며 둘의 라이벌 관계는 124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두 팀은 영국 프리미어리그(EPL)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자 최고 견원지간으로 축구장이 떠나갈 만큼 뜨거운 관중의 함성과 볼거리를 안긴다. 서로 격돌할 때마다 선수 간 마찰은 기본이고 선수와 감독, 선수와 팬, 팬들끼리도 마찰을 빚는다. 이렇게 재미있고 설레는 경기를 더 이상 2D로 볼 순 없다. 올해는 그곳의 일부가 되어 4D를 마음껏 누리며 그 세계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에디터 현국선




버닝맨에 버닝
버닝맨(Burning Man)이라는 기묘한 축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지난해 건축가 비야르케 잉에르스 (Bjarke Ingels)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다. 손톱만 한 사진 속에서 황량한 사막 위에 뜬 거대한 미러볼을 보고선 한참 동안 스크롤을 멈춘 기억이 난다. 미러볼에 선명하게 비친 사막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매년 8월 말부터 9월 초, 네바다 블랙 록 사막(Black Rock Desert)에서 기적처럼 열렸다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가상 도시 버닝맨은 오직 참가자의 힘으로 건설되는 팝업 도시다. 축제가 끝나면 어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생활할 모든 것을 챙겨와야 하는 이 불편한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텅 빈 사막으로 모여드는 인구는 매년 7만 명에 달한다. 이마저도 매년 1월에 판매를 시작하는 표는 못 구해서 안달이다. 저마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내가 버닝맨에 ‘버닝’하게 된 건 오직 이 축제만을 위해 탄생하는 설치 작품이다. 세계에서 모여든 작가들은 매년 달라지는 축제의 테마에 맞춰 저마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일주일이면 기꺼이 태워 없어질 작품에 맹렬히 혼을 불태운다는 점이 어쩐지 매력적이고 짜릿해서다. 버닝맨 2019의 테마는 ‘메타모르포세스(Metamorphoses)’.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생성과 소멸이 번뜩이는 현장으로부터 나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버닝맨 2019는 8월 25일부터 9월 2일까지 열린다. 에디터 전희란




뒤셀도르프 강둑에서 에일 한잔
몇 년째 휴가 기간엔 밀린 숙제를 한다. 별건 아니고, 챙기지 못한 이들을 찾아다니는 일종의 순례다. 청춘을 별 탈 없이 건너게 해준 은인, 마음의 빚을 진 몇몇이 먼 지방 혹은 해외에 있다. 2015년엔 포항을 찾아 K 선배가 운영하는 분식집 일을 거들며 고인 말을 했다. 이듬해엔 태국에 있는 T형과 며칠이고 골프를 치며 밤마다 취했다. 그다음 해엔 도쿄에 있는 H형과 선술집을 배회하며 철 지난 농담을 했다.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빚이 남았다. 꼬마 시절부터 따르던 S는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친인척 하나 없는 그는 신문지로 꼬깃꼬깃 싼 현금 다발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고작 세 살 많은 것도 형이라고, 그를 달고 중앙대 부근 복덕방을 뒤지던 겨울이 14년 전이다. 이후 반 토막만 한 내 자취방에서 1년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몇 년 전 S는 번듯한 은행을 관두고 독일 뒤셀도르프로 갔다. 나이답지 않게 덕지덕지 짐을 붙이고 살던 그의 선택을 난 응원했다. S는 가끔 엽서나 메일을 보낸다. “형, 여기는 과거가 없는 도시야. 아무도 지난 시간에 대해 묻지 않아.” 단서 없는 말들이지만 막연히, 그리고 뿌옇게 그곳의 광경을 상상해본다. S의 말에 따르면, 그가 거주하는 동네인 메디엔하펜 항구(MedienHafen)는 화려하지만 해가 저물면 도시도 잠든다고 한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이면 S는 안개가 자욱한 텅 빈 거리를 걷다 강둑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라인강 하류의 잔잔한 유속을 바라보며 한국을 생각한다고. 연초마다 안부를 물으며 “올해는 꼭 갈게”라는 말을 남겼으니 이젠 부채를 갚을 때가 됐다. 이번 가을엔 소설 좋아하는 그를 위해 사둔 책과 막걸리 몇 병 챙겨 뒤셀도르프에 가려 한다. 미뤄둔 말과 에일로 거하게 취한 채 깊은 밤 강둑에 앉아 함께 라인강의 풍경을 확인하고 싶다. 에디터 조재국

 

에디터 정유민(ymjeong@noblesse.com), 현국선(hks@noblesse.com)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