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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LIFESTYLE

파리에서 생긴 일

  • 2018-12-30

가수 정준영이 파리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주방에서는 미슐랭 1스타 셰프 이준의 레스토랑 스와니예 군단이 칼자루를 쥐고, 국내 최정상 바 앨리스 팀 이진용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든다. ‘한국의 집’을 뜻하는 ‘메종 드 꼬레(Maison de Core、e)’라는 공간에서는 분명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왼쪽부터_ 정준영, 바텐더 이진용, 셰프 이준, 메종 드 꼬레 대표 김직.

때는 2018년 10월 30일. 파리 멋쟁이들의 메카 마레 지구에 수상한 간판을 단 공간이 들어섰다. 미래적인 광채의 비닐로 꾸민 외관에,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는 오직 하나. ‘메종 드 꼬레(Maison de Core'e)’. 아무리 따져봐도 한국적 이미지와 정면충돌하는 듯한 요소로 가득한 공간에서 방랑자에 가까운 한 밴드 보컬과 실험을 즐기는 미슐랭 스타 셰프, 스토리텔링의 대가인 바텐더와 파리를 본진으로 둔 스타트업 대표까지 네 명의 남자가 ‘한식’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만났다.
“몇 년 전 직이 형(메종 드 꼬레의 CEO)이랑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어요. 로마에서 유명하다는 한식집에 갔는데, 맛이 형편없는 거예요. 해외로 여행 갈 때마다 꼭 한식집에 들르는 편인데, 한 번도 ‘와 진짜 맛있다!’ 싶은 곳이 없었어요. 제가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1 팝업의 디너 메뉴들.
2, 3 서울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내믹하고 미래지향적 모습을 반영해 ‘디크로 필름(Dichro Film)’으로 장식한 팝업 레스토랑 내・외부.
4 공간 안쪽에 재치있는 컨셉의 포토 월을 마련해두었다.

늘 그렇듯 정준영의 심드렁한 말투에서 웬일인지 진지함이 묻어났다. 정준영의 여행 메이트이자 평소 친한 형인 메종 드 꼬레 대표 김직과의 협업은 이렇다 할 시발점도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실제로 만난 준영이는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진중하고 고민이 많은 친구였어요.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사이로 가까워진 뒤 파리에서도 자주 어울리게 됐죠. 메종 드 꼬레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준 친구예요. 메종 드 꼬레 레스토랑 프로젝트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올 때부터 함께 회의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준영이의 꿈이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여는 거더라고요.”
메종 드 꼬레는 본래 파리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의 이름이다. 프랑스에 사는 30대 젊은 한국인들이 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혁신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결과물로, 사업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펼쳐왔다.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 광범위하고 모호한 ‘Maison’이란 단어를 선택했고, 그럼에도 한국적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Core'e’를 더했다. 현재까지는 만두, 라면, 김, 칩을 비롯해 한국의 기념품으로 인기가 높은 마스크 팩 등의 상품을 개발해 까르푸 등 대형 유통 채널에 공급하는 일을 전개해왔다. 이번 팝업 레스토랑은 2019년 실제로 파리에 열 한식 레스토랑의 티저 격이다. 현재 정준영은 메종 드 꼬레 CMO를 맡고 있다.
“사실 파인다이닝을 원한 건 아니었어요.” 등 뒤에서 파인다이닝 셰프 이준이 고군분투하며 요리하는 동안 메종 드 꼬레 대표 김직이 꺼낸 말은 다소 의외였다. “준영이와 저는 한국 문화의 힘은 스트리트 컬처에 있다고 믿어왔거든요. 그런데 무대가 세계 미식의 중심이자 본고장인 프랑스, 게다가 파리잖아요.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열려면 두 가지를 절충하고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셰프가 필요했어요. 이준 셰프가 떠올랐죠. 파인다이닝 ‘스와니예’와 캐주얼 퀴진 ‘도우룸’을 동시에 운영하는 인물. 게다가 미국 유학파 출신이고 프랑스에서의 요리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5 전채 3종에는 송어알을 올린 바지락 타르트와 해바라기 씨앗 소스를 올린 배추 다시마 버터 구이, 된장 소스를 올린 가지찜이 올라간다.
6 트러플 커스터드와 달팽이, 대파 오일, 시금치와 파마산 치즈를 넣어 만든 스와니예의 시그너처 메뉴, 서래달팽이.

맛, 감동적 경험, 그리고 공유와 소통. 정준영과 김직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세 가지 가치를 완벽히 충족하는 스와니예의 평소 단골이던 김직은 이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파리에서 한번 신나게 놀아봅시다!” 실험과 모험을 즐기는 이준이 ‘OK’를 외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에 퍼포먼스와 스토리텔링의 대가인 바텐더 이진용이 합세했다. ‘프랑스 식탁에는 무조건 와인’이란 정답 같은 룰을 깨고 한국의 재료를 활용한 식전주와 칵테일을 선보인다. 대추와 인삼을 활용한 칵테일은 식전주로, 유자와 소금을 이용한 칵테일은 메인 디시에 더해 식감을 극대화했다. 바텐더가 말아주는 탁월한 소맥의 맛도 빠질 수 없다.





7 메종 드 꼬레의 CMO로 활약하는 정준영.

수상한 현장에 당도한 건 팝업 4일째인 11월 2일 금요일이었다. 전날 대망의 디너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는 이들의 몰골만 봐도 상황이 대충 그려졌다. 팝업을 위한 작은 공간이지만 긴 테이블을 빼곡히 채우면 스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공간에서 긴 디너 코스를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공들여 서비스하기 위해 네 남자가 주방과 홀을 오간 거리와 그들의 손을 스쳐간 접시의 양. 숫자로나마 짐작해보는 어젯밤의 여운도 잠시, 눈앞에 점심 코스가 차려졌다. 한식의 터치를 재치있게 가미한 세 가지 전채가 나란히 줄지어 접시에 담겨 나오고, 뒤이어 잘게 썬 양배추와 무, 불고기를 얹은 리소토가 차려졌다. 익숙한 듯 생경한 맛에는 딱히 무엇과 비교할 기준이나 잣대가 없었다. 맛있었다. 식사의 마지막은 검은 접시에 올라온 찐 만두 두 점. 생각보다 평범한데? 그 자그마한 만두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씹는 순간, 메종 드 꼬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찢어진 만두피 사이로 배어 나온 초콜릿 크림의 아주 달콤하며 발칙한 충격.
‘그래서 한국적인 게 도대체 뭔데? 우리 입에 맞으면 그만 아냐?’ 네 남자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신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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