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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FEATURE

이런 작가도 있다

  • 2018-12-26

아트 퍼니처 작가 훈 모로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멋진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처럼, 가구를 만든다.

흔들바위에 내려앉은 구름을 형성화한 의자 ‘돌로마이트 4’와 함께 선 훈 모로.

지난 10월, 서울 포스코미술관.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피터 클라젠 & 훈 모로: 인간 ∞ 자연> 2인전이 열렸다. 두 작가는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자연에 대한 동경’ 그리고 ‘사회 안의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표작과 신작을 두루 전시, 많은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한데 ‘신구상회화’의 대표 작가 피터 클라젠은 알겠는데, 훈 모로는 누구일까? 유럽미술계의 거장 피터 클라젠과 함께 전시를 연 이는 놀랍게도 한국인 가구디자이너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면, 예술 작품에 가구의 기능을 더한 아트퍼니처 작가로 지금 한창 유럽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인물. 그런데 한국인의 이름이 ‘훈 모로’?
‘훈 모로(Hoon Moreau)’는 그녀의 이름(본명 전훈)에 프랑스인 남편의 성을 붙인 것이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그녀는 파리로 건너가 에콜 카몽도에서 실내 건축과 환경 디자인을 전공한 뒤 프랑스의 유명 건축 회사 윌모트 & 아소시에(Wilmotte & Associes) 등에서 20여 년간 고급 주택과 호텔 등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도맡아 하다 지난 2014년 독립을 선언, 개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지 4년쯤 됐으니, 누군가는 그녀를 ‘신인’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타이틀은 적당치 않다. 왜냐고? 그녀는 이미 프랑스 갤러리의 초청으로 파리와 뉴욕, 런던, 룩셈부르크 등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또 2017년엔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평론가들로부터 “자연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가구로 번역하려는 기발한 몽상가”라는 평을 받았다.
한데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그녀에게 한 가지 묻기로 하자. 어떻게 20여년간 일해온 직장을 하루아침에 관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말이다. 그것도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 중 선두 주자인 전업 작가의 길을. “100세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수년 전, 딱 인생의 반 정도 살았을 때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정리되자 경력과 월급은 뒤로하고, 제가 전공한 조각과 회사에서 20년 동안 쌓은 경력을 더해 ‘내 작품’을 하자고 마음먹었죠. 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비록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파리의 집과 작업실이 있는 부르고뉴를 왔다 갔다 하며 분주히 살고 있지만요.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금의 일을 앞으로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그녀는 현재 부르고뉴에 있는 작업실에서 나무를 깎고 흙을 주물러 청동주물을 만드는 등 작업 과정 전체를 직접 하고 있다. 또 이렇게 완성되는 가구는 자연을 닮았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 세계의 관계를 조명한다. 그 때문에 작품은 뾰족한 바위나 거대한 산맥, 너른 들판 등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많다. 예로, 지난 포스코미술관 전시에서 소개한 ‘돌로마이트 1’은 알프스산맥의 깎아지른 듯한 절경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의자로 원목 오브제 표면이 먹(墨)을 깊숙이 머금어 칠흑처럼 어두우면서도 단단한 나무의 결을 자연스럽게 내비친다. 어떤 작업은 보석 세공의 화려함을 갖췄다. ‘시각의 경청’은 그녀의 작업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예.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과 별을 그린 회화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조심스럽게 열면 수납장으로서 쓰임새가 드러난다. 그녀는 이처럼 원목 같은 자연의 재료에 우리 먹과 금, 등을 사용해 이전에 없던 가구 작품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재료로 작품을 만들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누구나 직접 만지고 사용하며 예술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가구 작품을 제작하고 싶죠.”




오크나무, 금박, 견사 등을 조합해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테이블 ‘평행의 바위’.

한데 갑자기 드는 의문 하나. 지난 20년간 직장에서의 현장 경험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이라고 하기엔 그 내공이 지나치게 뛰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몇 가구에 물 흐르듯 펼쳐지는 먹 붓질과 서랍장의 야무진 만듦새 등 많은 부분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의문점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금세 20여 년간 줄곧 해온 나무와 산등성이 바위, 폭포 등의 스케치를 펼쳐 보인다. 거기엔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깨닫는 이치, 나무의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속살 등 그녀가 오래 들여다본 생각과 모양, 작품의 실루엣이 등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어떻게 이렇게 집요할까? 또 어떻게 이렇게 자연을 자유롭게 작품으로서 그려낼 수 있을까? “지구가 위기에 놓여 있어요. 모든 사람이 더 생각해야죠. 인간은 뿌리이자 근원인 자연을 떠날수 없고, 무한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관찰→분석→해석→나만의 표현’ 순으로 작업해요. 이 과정이 하나라도 빠지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데, 특히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일상을 연결하게 되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덧붙이면 저는 데생과 페인팅, 조각, 공예, 가구 등 장르에 경계를 두고 있지도 않아요. 회사에 다닐 때도 실내 건축과 디자인을 할 때 나무, 돌, 금속, 타일, 유리 전문가 등 때론 수십 명이 함께 회의를 한 적도 많죠.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이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녀는 매일 집에서 작업실까지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한다. 10대 딸이 둘 있는데, 저녁 10시에 파리의 자택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엄마 역할을 끝내면 곧장 작업실로 가서 메일을 확인하고 잠든다. 다음 날엔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작업한 뒤 다시 파리로 간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작업과 엄마 역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어떤 예술가는 자신이 꿈꾸는 예술 세계를 이루기 위해 이처럼 인간 관계에서의 조화로운 균형을 찾기도 한다.
그녀에게 아직 꺼내놓지 못한 꿈이 있는지 물었다. “저는 늘 아름다운 것을 꿈꿔요. 아름다운 시각을 갖고 싶고, 뭐든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마술사이고 싶죠. 늘 ‘미의 본질’은 뭘까 생각해요. 사실 ‘예쁘다’고 하는 것이 정말 예쁜 게 아닌 경우도 많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도 긴 시간이 지나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했을 때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저는 작품에서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 나무가 갈라지고 터지면서 나타나는 안에 있는 소중한 것.” 오늘도 프랑스에 사는 한 예술가는 왕복 3시간 걸리는 파리와 부르고뉴를 오가며 어제보다 더 멋진 작업을 꿈꾼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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