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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9 FEATURE

존재의 이유

  • 2018-12-21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올해의 음악가’에 2018년 이언 보스트리지에 이어 올해에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를 선정했다. “오케스트라 단원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연주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그를 베를린에서 먼저 만났다.

프랑크 페터 치머만,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니콜라이 스나이데르와 함께 남자 바이올리니스트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테츨라프(Christian Tetzlaff).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에 선정된 그의 공연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바로 1월 공연부터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협연과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과 소나타 3번 등이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수석 객원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호흡을 맞출 시마노프스키 협주곡은 과거 <텔레그라프>의 평론가 피에르 아이반 휴이트에게 ‘하나의 경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마의 산과도 같은 대작,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그가 1993년과 2005년, 그리고 2017년, 총 세 번이나 레코딩을 완성한 곡이다. 특히 2017년 녹음해 핀란드의 온딘(Ondine) 레이블에서 발매한 앨범은 평론가로부터 “탁월한 테크닉과 표현력을 바탕으로 대위법적인 화성의 구조가 명료하고 명암이 뚜렷한 빼어난 연주”라는 호평을 받아 디아파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과거 뉴욕 카네기홀의 퍼스펙티브 아티스트,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시대를 확장한 연주로 클래식의 지평을 넓혀온 그가 올 시즌에는 보스턴 심포니, 런던 심포니, 뮌헨 필하모닉,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과 줄줄이 협연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협연, 그리고 솔로 연주로 한 해 스케줄이 꽉 차 있음에도 여동생인 첼리스트 타냐 테츨라프 등과 함께 결성한 ‘테츨라프 콰르텟’을 통해 실내악의 매력을 전하는 일에도 열심인 그와의 만남은 ‘(힘을 뺀) 클래식’을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에 선정되셨습니다. 올 한 해 당신의 연주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과거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 등으로 국내에서 한국 청중을 만나왔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기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한국인 음악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몇 차례 공연을 할 때마다 한국 관객이 지닌 클래식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큰 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런 이유로 저 또한 올해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1월에는 마르쿠스 슈텐츠의 지휘로, 9월에는 만프레트 호네크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협연이 예정되어 있고, 실내악 공연도 마련되어 있죠. 시마노프스키, 바흐, 드보르자크, 베토벤, 프랑크, 수크의 레퍼토리를 준비하셨는데, 이처럼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곡을 선정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떤 한 곳에 소속되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경우, 저는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로와 실내악, 교향곡 등 다양한 형식과 시대 양식을 선보인다면 음악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요세프 수크(Josef Suk)의 작품처럼 제가 생각하기엔 환상적이지만 다른 청중에겐 익숙하지 않거나, 또는 모든 청중이 늘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역사 속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아름답고 깊이 있는 곡이 많습니다. 베토벤 교향곡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곡과 함께 이들이 섞일 수 있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거예요.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한국 관객에게 어떤 해석으로 들려줄 것인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티켓을 예매한 독자들을 위해 연주를 감상하는 구체적인 팁을 알려준다면요?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천재적인 곡이에요. 하나의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죠.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악기로 이 곡을 연주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의 소리는 새롭게 발견됩니다. 관객을 바짝 긴장시키는 매력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여유로움을 남기는 형식을 지닙니다.

보석과도 같은 그 곡을 연주하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보통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모든 음을 연주하고, 훌륭한 사운드를 넓게 그리고 천천히 매력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 곡에서 이러한 연주 성격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유켄트슈틸(jugendstil, ‘청춘양식’이라는 의미로 독일어권에서 칭하는 아르누보 양식)의 곡이에요. 마치 춤을 추는 듯 활발하고 경쾌하면서도, 느리고 우아한 선율을 지니죠. 몇몇 순간은 아다지오(adagio 조용하게, 느리게)와 렌토(lento, 느리게)를 완벽하게 표현하는데, 이 순간은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있어요. 매우 다채로운 곡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의 테크닉보다는 곡의 전체적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맞아요. 이 곡에서 바이올린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형식 안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이올린 연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협주곡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들으면 곡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거예요. 이 곡이 폴란드시인 타데우시 마친스키(Tadeusz Micin ´ki)가 쓴 <5월의 밤>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는 거 아시죠?

당신은 레퍼토리가 광범위할 뿐 아니라, 곡의 분석 또한 철저하고 이성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곡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곡을 다룰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곡을 분석할 때 작곡가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청중에게 잘 전달할지에 중점을 둡니다. 작곡가가 곡에 담아낸 모든 감정과 생각을 관객이 붙잡을 수 있도록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당신을 포함해 세 명의 남매가 모두 전문 연주자입니다. 집안 또한 함부르크의 음악가 출신이라고 알고 있어요. 어릴 때 부모님에게 어떤 음악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는 남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개인 교습을 받았어요.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3시간 동안 연습하면서 ‘내가 정말 부지런하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전까지는 개인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았죠.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더 잘해야 한다”거나 혹은 “더 빨리 연주해야 한다”는 등의 압박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대신 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스스로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았으니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신을 통해 좋은 교육 방법을 또 하나 발견하는군요. 10대부터 20대까지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때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고, 그 과정을 통해 음악이 직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게 음악은 하나의 사회 활동입니다. 비슷한 또래와 함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즐겁게 연주 여행을 다니며 음악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혼자 너무 많은 연습을 하는 것은 솔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신체적 부상과 음악적 측면에서 좋지만은 않아요. 고립된 상태에서의 지나친 연습은 결국 음악을 이야기하는 연주가 아니라 단지 악기를 다루는 것에만 그치게 하니까요.

뤼베크 음대에서 우베 마르틴 하일베르크(Uwe-Martin Hailberg)를,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월터 레빈(Walter Levine)을 사사하셨습니다. 각 스승들에게 어떤 것을 배웠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우베 마르틴 하일베르크로부터는 바이올린 연주의 기본을 배웠고, 월터 레빈과는 약 9개월 동안 몇몇 작품의 해석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어요. 하지만 두 스승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보다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배운 것 같아요. 두 분을 통해 음악가로서 작곡가의 역사와 우정, 사랑 같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솔로뿐 아니라 실내악 연주로도 많은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테츨라프 콰르텟(Tetzlaff Quartet)이라는 본인 이름을 건 현악 4중주단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요. 솔로 활동을 병행하면서 이를 이어간다는 것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테츨라프 콰르텟의 활동기준이나 영역이 궁금합니다. 콰르텟은 본디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서로 협업 가능한 4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집니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제1바이올린 등과 같이 수직적 구조는 존재하지 않죠. 이는 현악사중주에서 기본 조건이자 원칙입니다. 실내악의 연주 작품 자체가 그렇기도 합니다. 곡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4개의 중요한 소리가 존재하도록 곡이 쓰여졌기 때문이죠. 이러한 자세는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에도 중요합니다. 솔로 연주자의 연주를 항상 옳다고 보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와 단원이 있고, 연주할 때 이들은 동등한 권리와 자격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브람스 교향곡의 경우 오케스트라 단원이 각자의 부분을 연주하고, 솔리스트가 동행합니다. 솔리스트가 주인공처럼 연주를 선보이고 다른 이들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내악이든 오케스트라든 연주자로서 각자 맡은 역할과 연주를 분류할 줄 알고 함께 선보여야 하죠.

오케스트라나 솔로 연주가 청중에게 줄 수 없는 실내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솔로 레퍼토리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깊이의 작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나 알반 베르크의 ‘서정 조곡(Lyric Suite)’이 그렇죠. 당대 작곡가들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을 실내악에 담아내곤 했어요. 즉 실내악은 작곡가를 청중에게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저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오는 1월 7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바흐와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실내악 연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테츨라프 콰르텟 멤버가 아닌 것이 좀 아쉽지만, 서울시향 단원들과의 새로운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서울시향 단원들의 연주는 환상적이에요. 그렇기에 저로서도 서로를 빨리 알아가기를 바라고 있죠. 자신의 연주만을 독자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모두가 서로의 연주를 좋아하고 어울린다면 빠른 시일 안에 굉장히 좋은합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곡가와 곡에 담긴 지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미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는 길에 들어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당신을 ‘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의 탁월한 해석자며, 브람스와 슈만 음악에서 가장 내밀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주자 중 한 명’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애정을 갖는 레퍼토리도 바흐나 브람스의 곡인가요? 제 연주에서 바흐, 브람스, 슈만이 중심 작곡가이긴 하지만 저는 제가 연주하기를 좋아하고 최고의 연주가 가능한 작품을 연주하기 때문에 몇 명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요. 알반 베르크의 ‘서정 조곡’을 비롯한 많은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와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매우 좋아하죠. 하지만 어느 작곡가에 중점을 두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답하기는 어렵네요.

바이올린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스스로 느끼기에 연주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일부러 다르게 연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변해왔어요. 지금은 20대 같은 이전의 시기보다는 더 편안한 시점이고, 음악 또한 더욱 본질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많이 답답했고 연주를 위한 판단이 좋지 않았다면,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연주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됐죠. 이처럼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있네요.

연주에서 악기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현대에 제작한 악기를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악기의 연식을 따지기보다 최고 음을 들려주는 악기를 선호합니다. 현재 슈테판 페터 그라이너(Stefan-Peter Greiner)의 바이올린을 사용하고 있지만 만약 누군가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 중 훨씬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게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저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할 거예요. 제가 우선시하는 건 그 악기가 최고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지 여부죠.

조성진, 선우예권, 문지영, 조성호, 김다미 등 세계적 기량을 갖춘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래도록 훌륭한 연주자로 남기 위해 갖춰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을 가르쳤고, 더불어 오늘날 세계적 기량을 갖춘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과 그들의 음악을 종종 접하곤 합니다.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해요. 연주자는 단순히 악기와 연주를 사랑해서, 또는 연주자 자체가 환호를 받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와 그들의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굉장한 차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음악의 역할’ 또는 ‘클래식의 역할’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훌륭한 연주를 들을 때면 감동의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이내 제 안의 깊은 영혼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죠. 이처럼 어둡거나 힘든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특히 중요합니다. 인간의 삶이 늘 밝거나 아름답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작곡가들 또한 가난을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작품속에서 청중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경험이고, 바로 이것이 클래식의 가장 큰 가능성입니다. 슬픔, 상처 그리고 죽음에 관해 함께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죠. 이를 가능케 한 매개체가 바로 클래식 음악입니다.

정말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던 클래식 음악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와 청중에게 새해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음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영혼을 깊게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현지 진행 이정훈(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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