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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 2018-12-21

정체불명의 한국어도, 낙후된 서울 풍경도 없다. 이제 서구의 미디어가 한국을 긍정적이고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존 조가 출연한 <서치>. 한국인의 모습을 왜곡 없이 그려내 호평을 얻었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한국인과 한국의 모습을 생경하게 그려 이질감을 느낀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대다수 콘텐츠가 한국 하면 분단국 이미지만 주목하거나, 북한만을 떠올리는 등 제대로 된 고증이나 묘사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 여기에는 무수한 예시가 있다.
1960~1980년대 인기를 끈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2010년 방영을 시작한 미국 CBS 수사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오>에 등장하는 파주와 포항은 숲이 우거진 아마존 밀림처럼 묘사돼 있다. 뱀술이 파주 전통주로 둔갑했고, 막걸리는 보드카 병을 연상시키는 각진 유리병에 담는 등 왜곡된 설정이 난무했다. 심지어 파주가 아닌 ‘페주(peju)’라는 잘못된 자막에선 실소가 터져 나온다. 1970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매쉬>에 나오는 한국인은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쓰고 있어 동남아시아인을 연상시켰다. 영화 <007 어나더데이>에는 정작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물소가 나온다. 이뿐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 <월드워 Z>는 한국을 좀비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것처럼 설정했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민의 치아를 뽑는다는 미개한 설정으로 원성을 샀다. 출연진이 구사하는 한국어는 해괴하기까지 했다. 한국 배우 김윤진이 출연한 미국 ABC의 흥행 드라마 <로스트>에 등장한 한국인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 대사와 억양으로 방영 당시 국내에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고, 누리꾼의 수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서구의 미디어가 한국을 명확하고 긍정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과거의 단편적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14년, 서울에서 촬영해 눈길을 끈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촬영 전 ‘영화에서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내용으로 양해각서를 쓰기도 했다. 이후 공개된 영화엔 마포대교, 세빛둥둥섬, DMC 월드컵 북로, 강남역 거리, 문래동 철공소 골목 등 한국의 도시 풍경이 사실적으로 담겼다. 물론 촬영할 당시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을 IT 강국이자 의료 선진국으로 그렸으며,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는 “최첨단, 스마트 국가이미지 때문에 한국을 촬영지로 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 캐나다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 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김 씨네 편의점>은 연극에 이어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2 <하와이 파이브 오>는 포항시를 아마존 밀림처럼 왜곡했다.
3 <신비한 동물사전2: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내기니 역을 맡은 한국 배우 수현.

요즘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영화에서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고, 한국의 문화나 제품에 대한 구체적 대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서치>는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자 아니쉬 차칸티 감독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진짜 한국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했다. 최근 미국 CBS의 유명 수사 드라마 < NCIS >에선 주인공들이 한국의 보이 그룹 NCT DREAM의 멤버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며, “그중에서도 마크가 최고다”라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려운 구체적인 대사가 등장했다. 영화 <오션스 13>에는 PP L이라는 오해를 살 정도로 극 중 배우가 삼성 휴대폰을 극찬하며 갖고 싶어 하는 장면이 나왔다. 등장인물은 ‘SAMSUNG’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인 휴대폰 상자를 받아 들고는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 <예스맨>에는 주인공이 인생을 바꾸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국어를 배운다. 이렇듯 세계 속 한국의 존재감이 나날이 성장하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드라마가 인기를 끈 사례도 있다.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국인 가족을 중심으로 한 캐나다의 연극 <김 씨네 편의점>은 범국민적으로 인기를 얻어, 넷플릭스에서 동명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연극과 드라마가 연이어 히트 행진을 이어갔으며, 과거 부정적으로 고착됐던 한국인의 이미지를 탈피해 가족 구성원이 갖가지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묘사됐다. 이렇게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세계에 한류 바람이 불어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시장에서 급격히 성장하며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할리우드의 인기 영화가 한국에서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리는 것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한몫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북미에 이어 두 번째로 이익을 냈으며, 현재 <보헤미안 랩소디>도 북미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티켓을 팔았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의 영화 시장이 성장했음을 방증하는데, 적은 인구수와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한국의 영화감독과 배우가 세계에 진출해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도 극 중 한국이미지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도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 아이. 조>와 <레드: 더 레전드>,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 7> 등을 통해 이름을 각인한 이병헌,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주피터 어센딩>의 배두나, <어벤져스 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등장한데 이어 <신비한 동물사전 2: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내기니’라는 핵심 인물을 맡은 수현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스토커>를 찍은 박찬욱 감독,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설국열차>와 <옥자>를 성공시킨 봉준호까지 걸출한 이름이 가득하다.
배우 존 조는 “보통 한국계 미국인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면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설정이 많다. 그런데 <서치>는 한국 가족을 자연스럽게 담았으며, 그 점이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배우와 감독의 영향력이 점차 상승하고 한국발 콘텐츠가 세계에 명성을 떨치면서 한국인으로서 거부감이 드는 설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전 세계에서 아시아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고민을 재미와 감동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찾고, 비아시아인은 자신의 미래와 관련지어 아시아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아시아 열풍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 내용이 영화나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면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나아가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 ‘김씨’나 ‘김치’가 등장할 때 눈살을 찌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각각 극 중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과 맛있는 음식으로 묘사될 테니 말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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