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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6

EDITOR’S VIEW

2019년을 시작하기 앞서 마주한 두 가지 이슈에 대한 피처 에디터의 시각.

노포를 내버려둬
“을지로가 그렇게 핫하다면서요?”
생각지 못한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을지로가 진정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구나 싶었다. 5년 전 장충동 잡지사로 출퇴근하면서 왕왕 들르던 을지로 3가 골목 안 만선호프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이 월드컵 못지않은 열기를 띤다. 만선호프 일대 맥줏집은 주로 인근 인쇄소, 출력소의 근로자가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며 고된 하루를 위로하던 곳이었다.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서울패션위크 뒤풀이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우악스럽게 노가리를 씹는 진풍경도 자주 눈에 띈다. 이름난 노포 옆 쓰러져가는 건물 2, 3층에는 후미진 골목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만든 근사한 카페, 와인 바, 레스토랑, 크래프트 펍 불빛이 번쩍인다.
노포가 이토록 사랑받은 적이 있었나? 5년 전 만선호프에 다닐 때만 해도 “아재나 가는 곳에 왜 가느냐”며 핀잔 듣던 나였다. 2018년 12월 기준 인스타그램에 ‘노포’를 검색하면 4만1000건이 넘는 포스팅이 쏟아진다. 주로 간판이나 음식이지만, 노포를 포토 월 삼은 힙스터의 사진도 종종 볼 수 있다. 스타필드 식음 매장을 담당하는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최근 미식계의 최대 이슈가 주요 고급 오피스 빌딩 내 노포 입점이라고 언급했다. 손꼽히는 노포 맛집을 빌딩에 입점시키면 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단지 맛 때문이라면 노포의 맛을 흉내 내거나 노포 출신 주방장을 섭외하면 될 것을(실제로 전에 많이 했던 방식이다), 굳이 특정 노포를 입점하는 데 사투를 벌이는 건 전에 없던 노포의 폭발적 인기 때문일 것이다.
노포(늙을 老, 가게 鋪)는 오래된 가게를 이르는 일본식 한자어다(2017년 노포를 대체할 말로 시민 공모한 ‘오래가게’라는 말을 서울시에서 홍보 중인데, 영 반응이 좋지 않다). 한때 일본 매체에서 오래된 가게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며 노포의 인기를 조명했다. 젊은이들이 오래된 가게를 찾아다니는 것이 멋진 일로 비쳐졌다. 그 바통은 한국이 이어받았다. 일찌감치 한국에서 노포 마니아로 소문난 박찬일 셰프는 4년 전 펴낸 노포 기행서 <백년 식당>의 인기에 힘입어 2018년 <노포의 장사법>이란 책을 발간했다.
문제는 노포의 ‘폭발적’ 인기에 있다. 박찬일 셰프는 <노포의 장사법>에서 ‘살아남는 집은 맛은 기본이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한결같음’이라 했는데, 전에 없던 폭발적 인기로 한결같음을 잃고 마는 곳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가게가 인기에 취해버린 까닭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노포를 단골로 삼는 이들에게는 암묵적 룰이 있다. 주인이 정한 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 노포에서 손님이 왕이란 말은 금기어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버텨온 이들에게는 그만의 방식과 템포가 있는데, 이 암묵적 룰을 미처 깨닫지 못한 손님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을 때의 결과는 뻔하다. 한결같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비난거리가 되니까. tvN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전통 아바이순대는 방송 이후 물밀 듯 밀려온 손님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몇 달 전 도쿄 아오야마 지하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40년 동안 한자리에서 함박스테이크를 제공해온 작은 경양식 노포. 도쿄의 청담동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동네에서 좌석이 10석 남짓인 이 작은 가게가 어떻게 40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모든 좌석이 주방을 향하도록 된 이 오픈 키친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 요리하는 두 남자(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와 30대 중반쯤 된 남자)의 작은 움직임까지 전부 관망할 수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내가 레스토랑의 룰을 알 리 만무했지만, 옆자리의 손님들을 보고 곧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구도 크게 떠들거나 요란 떨지 않았고, 다소 늦은 서빙에도 컴플레인하지 않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스테이크를 굽고,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데미글라스 소스를 성실히 젓는 동안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40년 동안 이곳에서는 매일 이 풍경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도 오늘처럼 그렇게 묵묵히 주방을 응원했을 것이다. 누적된 시간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방법이란 어쩌면, 노포를 자신의 ‘힙력’을 드러내는 포토 월로 삼는 대신 그들이 자신의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말없이 응원하는 일이 아닐까. 가게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_ 전희란





디젤 아웃은 온당할까?
이제 디젤 차량은 베를린을 달릴 수 없다. 독일 행정법원은 최근 올해 6월부터 시내 10개 구간에서 디젤 차량의 운행 금지 조치를 명령했다. 규제 대상은 유로1(유럽연합이 도입한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규제 기준. 1992년 유로1을 시작으로 현재 2014년 발표한 유로6가 기준이다)에서 유로5 적합 차량으로, 유로5 모델의 경우 불과 5년 전까지(2014년)의 기준이었다. 당시 출시된 차량은 아직 새파란 현역이다. 독일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는 2024년부터 디젤 차량에 대한 도시 진입 금지안을 가결했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영국 등이 이 결정에 합세했다. 이건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 정부도 주차료, 혼잡통행료 감면 등 혜택을 주던 클린 디젤 정책의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수백 곳에서 화력발전소를 가동 중인 중국조차 지난해 기준 미달 차량 553개 모델(주로 디젤 모델)에 대한 생산 중단 조치를 취했다. 이제 디젤 아웃은 전 세계의 구호가 됐다. 환경 규제에 따른 내연기관 엔진의 종말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시곗바늘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업계가 뒤집어졌다. 사실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주력 메뉴는 디젤엔진이었다.
19세기 후반 세상에 나온 디젤엔진은 매력적이었다. 석유 채굴과 정제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 반면, 디젤은 가솔린을 증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로 비교적 쌌다. 디젤엔진의 높은 마력과 열효율, 뛰어난 내구성도 비용 절감에 탁월했다. 그러나 불완전연소로 배출되는 시커먼 매연이 문제였다. 극악의 비주얼로 디젤엔진은 생활 영역으론 편입되지 못했다. 대신 산업용 특장차나 화물 운송 차량에 주로 사용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더티 디젤’은 ‘클린 디젤’로 변신했다. 검은 매연은 사라지고 환경오염의 주범이란 오명을 벗었다. 친환경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세금 감면 혜택도 얻었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획기적 기술 발전으로 가능했다.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저감 장치가 개발되고 초고압으로 연료를 분사하는 CRDI(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연료 효율과 마력이 높아졌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디젤을 대중이 마다할 리 없었다. 특히 자체 환경 기준을 마련한 유럽(디젤엔진에 대한 유럽의 자부심은 대단했다)과 경유가 가솔린 대비 85% 저렴한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11년 유럽의 디젤 점유율은 46%에 달했고, 2014년 한국에 수입되는 전체 차량의 68.8%가 디젤엔진이었다. 끝 모르고 치솟던 디젤 시대는 불과 20년을 채우지 못했다. 2014년에 터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배기가스 조작 사태) 이후 열풍은 동력을 잃었다. 논란은 BMW와 아우디 등 다른 대형 브랜드로 불이 옮겨붙었다(BMW 일부 차량엔 실제로 불이 났다). 상황이 급변하자 브랜드들도 디젤엔진 손절매 시점을 당기고 있다. 이미 볼보와 피아트 등은 2020년을 전후해 디젤 신차 생산 중단을 발표했고, 연간 1000만 대 이상 차를 판매하는 토요타 역시 BMW의 디젤엔진 도입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향후 생존을 위해선 효자 노릇을 하던 디젤을 버릴 수밖에 없다. 전기모터와 하이브리드 도입이 늦은 브랜드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전기자동차 판매 순으로만 줄을 세운다면 토요타, 그리고 현대가 뒤를 잇는다.
사실 디젤엔진은 억울한 면이 있다.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를 생성하는 것은 맞지만, 온난화 주범이라 불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엔진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 연료 효율이 뛰어나기에 석유 추출도 늦출 수 있다. 미세먼지 없는 세상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전기자동차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지만, 현재 전기에너지 대부분을 원자력과 화력발전으로 얻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조삼모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친환경 에너지로 일컫는 풍력이나 수력은 건설 조건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태양광 패널도 제조 과정에서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데다 토양 오염을 일으켜 환경 파괴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타이어 분진은 전기자동차든 디젤 차량이든 똑같이 발생한다. 미세먼지는 복합적 사유로 탄생했다. 20세기 산업화를 돌파하며 축적된 후유증이므로 한 가지만 원인으로 꼽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디젤엔진의 점진적 아웃을 지지한다(그러나 여론에서 말하는 것보다 디젤엔진의 퇴출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미세먼지가 불특정 다수의 복합적 이유로 발생한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 사실 대기오염의 원죄를 디젤에 덤터기 씌운 듯 보이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환경 단체와 국가들은 여러 정책을 복합적으로 추진 중이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와 친환경 에너지 채굴 방법 개발, 선박용 증류 황 함량 기준 강화와 가정용 저녹스(底NOx) 보일러 보급 확대 등 산업과 생활 다방면에서 애쓰고 있다. 나 역시 디젤 차량을 탄다. 급작스러운 반전에 당혹스럽지만, 점진적 디젤 아웃에는 동의한다. 일단 미세먼지 때문에 내가 죽겠고, 떨어지는 차량 중고가보다 다음 세대에게 또렷한 서울의 풍경을 남겨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_ 조재국

 

에디터 <노블레스 맨>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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