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JANUARY. 2019 FEATURES

Life, 제2라운드를 사는 사람들

  • 2018-12-27

삶을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급선회해 성공적 삶을 그리고 있는 다섯 남자와의 대화.

호스피털리티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 이웅희(H2O 대표)
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코넬대 호텔 경영학과 졸업 후 모건스탠리에서 약 5년 동안 한국 및 동남아시아 기업의 자본 시장 자문 업무를 했습니다. 직전에 몸담은 투자 회사 자비스에서는 스타트업 투자 업무를 하다 2015년 세 개의 법인(H2O 호스포, H2O 하우스케어, 와홈)으로 이루어진 ‘H2O 호스피탈리티’를 창업했습니다. H2O 호스포는 일본에서 호텔, 료칸, VR 등의 온라인 운영을 전담하고, H2O 하우스케어는 이들의 오프라인 운영 담당, 와홈은 한국에서 셰어 하우스나 사무실, 가정집 등의 청소 및 관리, 운영을 합니다.

20대 후반에 모건스탠리의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모건스탠리에서의 5년 동안은 사실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5년 뒤에도 이 일을 하고 싶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답은 주저 없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MBA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모건스탠리에서 처음 절 뽑아준 PI 아시아 대표 가브리엘의 제안으로 자비스라는 스타트업 투자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많은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는데, 그들의 열정과 성장 과정을 보면서 저도 욕심이 났습니다. 1년이 지난 뒤 가브리엘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창업을 하고 싶다! 감사하게도 가브리엘은 제 회사의 첫 투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전에 하던 자문과 투자 일, 그리고 창업 후의 일이 꽤 달라 보이는데요. 호텔 경영학과 전공이 H2O를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분명히 도움이 되었는데, 다만 그 방향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현재 저희가 부동산을 운영하는 방식은 학교에서 배운 방식과는 정반대 구조입니다. 호텔 산업은 크게 보면 부동산 관리와 일맥상통하는데, 에어비앤비가 전 세계적 호스피털리티 시장에 큰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면서 호텔 운영이 반드시 ‘빌딩’ 운영이 아닌 분산된 ‘방’을 운영하는 개념으로 바뀌었지요. 전통적 호텔 운영 체계로는 관리가 어려운 방 운영의 틈새를 노려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시작이 일본이었나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인바운드 관광객이 늘고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재방문율도 높은 편이고요. 그런데 일본의 숙박시설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호텔을 짓기 위해서는 거대한 자본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무턱대고 숙박 시설을 늘리지 않고 기존 시설에 라이선스를 발급해 숙박 시설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2018년 6월부터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자비스에서 스타트업 투자 경험이 H2O 창업의 밑거름이 된 셈인가요? 사실 투자자 위치에 있을 땐 창업이 쉬워 보였습니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고, 겁 없이 뛰어들었지요. 겪어보니 벤처 투자와 실제 창업은 전혀 다릅니다. 창업을 준비하고자 하는 분에게는 ‘실제로 도전해봐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행복을 꿈꾸며 모건스탠리를 퇴사했다고 하셨는데, 현재 행복하신가요? 모건스탠리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보다 힘든 부분은 몇만 배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스스로 단단해졌다는 것입니다. 농담으로 바퀴벌레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요.(웃음) 회사가 성장하고 흑자 구조로 전환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을 고심하는 <노블레스 맨>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벤처 투자 회사에 있을 때는 창업을 서슴없이 추천했지만, 직접 창업해본 입장에선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전이 확실하고 투자 없이도 최소 2년 정도 자생적으로 현금 흐름 창출이 될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아트 세상과 만난 엔지니어, 지성욱(미디어앤아트 대표)
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공대 졸업 후 삼성그룹에서 4년 동안 엔지니어 생활을 했습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더 이상 공식이나 계산으로 진행되는 업무가 아닌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다날과 KT그룹에서 콘텐츠 업무를 경험하고, 2010년 브랜드 사업 및 매니지먼트와 드라마 제작을 하는 아이오케이를 창업했습니다. 4년 전에는 ‘미디어앤아트’란 회사를 설립해 <반고흐 인사이드>, <앨리스: 인투 더 래빗 홀> 등 독창적 미디어 아트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처음 창업한 회사가 스타 배우 소속사라 매니지먼트 분야로의 확장도 가능했을 텐데, 미디어 전시 분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드라마나 영화는 제작사가 콘텐츠 권리를 소유하기 어렵지만, 전시는 제작사가 권리를 갖고 콘텐츠 기획부터 런칭까지 자체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혹적이었습니다. 또 미디어아트 분야는 기술과 예술의 만남, 즉 융합이 중요한데 IT 기술 기반이 우수한 한국은 기획력만 훌륭하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브랜드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동일한 작품 이름으로 계속 발전시켜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전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일로 전환할 때, 용기는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세상을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만난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나아갈 때 큰 용기를 얻습니다.

다른 전시와 차별화되는 미디어앤아트만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키워드에는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동시대 트렌드나 관심사에 치중하기보다는 시대와 분야를 관통해 반복되는 키워드를 보려고 합니다. 전시 주제나 방식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람객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사람’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인생 이모작을 고심하는 <노블레스 맨>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 만큼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도 제각각이겠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이모작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너무 빨리 뛰어들 필요도 없지만, 너무 늦어지면 그만큼 힘들겠지요. 자신의 역량을 잘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생각만으로 그치기보다 한 발자국씩 꾸준히 나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행 서점을 연 마케터, 김민구(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더 모놀로그 하우스 대표)

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전에는 외국계 대기업 홍보대행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서 마케터이자 기획자, 그리고 여행자들의 사색 공간을 표방하는 공간 ‘더 모놀로그 하우스’에서 바리스타부터 책과 물건 큐레이션 등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입한 스마트 자전거 헬멧의 팝업 스토어 매니저,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작업에도 매진 중입니다.

젊은 나이에 광고 대행사를 차리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외국계 홍보 회사의 국내 지사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각 분야의 명성 있는 기업 홍보와 마케팅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점점 고객을 성공시키기 위한 홍보보다 보여주기식 홍보, 책상에 앉아서 하는 마케팅 업무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회사에 소속되어 홍보 업무를 하면 앞으로 평생 틀에 갇힌 일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던 어느 날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어요. “Stay Hungry, Stay Foolish”. 그가 남긴 명언이 뇌리를 스쳤고, 다음 날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 등록증을 낸 뒤 눈여겨보던 사무실을 덜컥 계약했습니다.

그렇게 차린 회사가 꽤 승승장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쩌다 여행자를 위한 서점을 차리게 되었나요? 사업이 6년 차에 접어들고 어느덧 회사도 성장했는데, 마음은 텅 빈 것 같았습니다. 내면을 돌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고 질주하던 액셀을 잠시 멈추기로 했지요.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더 모놀로그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매일 아침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양질의 여행 책을 추천하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공간. 이 공간을 만들며 알게 된 원목 가구 장인, 여행 인문학 작가들과 다양한 소통을 하며 앞으로 팝업 스토어 등 재미있는 문화 행사와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광고대행사 대표로서 많은 브랜드나 회사 홍보에 대해 고민하셨겠지만, 서점에서 고객을 가까이 부딪치며 느끼는 감회가 궁금합니다. 서점이나 카페라는 명확한 간판도 없는 더 모놀로그 하우스에는 우연히 찾아오는 고객이 대부분입니다. 생각지 못한 인연과 무궁무진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요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아침마다 커피 머신을 데우고 따끈따끈한 신간을 정리하면서 ‘오늘은 또 누굴 만나 소통할까?’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하죠. 광고를 하면서는 경험 할 수 없던 행복입니다.






치즈 메이커가 된 수의사, 민진우(슬로우치즈 대표)

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후 약 7년간 서울과 수도권에서 임상수의사 생활을 했습니다. 4개월 전부터는 모차렐라 바 ‘슬로우치즈’를 운영하며 매일 치즈를 만들고 있습니다.

치즈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 해외에 살면서 비교적 빨리 ‘진짜 치즈’란 걸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살다 8년 전 런던 버러 마켓에서 콩테 치즈를 먹고 반해 다양한 치즈를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지로 치즈 여행을 다닐 만큼 마니아라고 알고 있습니다. 맛을 탐닉하는 것과 메이커가 되는 일은 엄연히 다를 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치즈에 매료되면 치즈를 만들어보기 시작하는데, 이 중 대다수가 중간에 포기합니다. 한 가지 치즈를 만드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치즈 메이킹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작한 저는 오히려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치즈 산업이 해외 여러 나라와 비교해 많이 뒤처진 점도 계기가 되었고요.

치즈 메이커로 완전히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치즈를 만드는 방식이나 풀어나가는 방법 모두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직접 만든 모차렐라, 부라타 치즈 맛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했고요. ‘지금이 아니면 시작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단을 내렸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치즈 여행이 있었나요? 2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일이에요. 어느 날 아침 숙소 옆 ‘카세이피초(Caseificio, 치즈를 만들어 파는 곳)’에서 갓 만든 모차렐라를 처음 맛봤죠. 충격이었어요. 치즈깨나 먹어봤다고 자부한 제게도 갓 만든 모차렐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어요. 그때부터 모차렐라 만들기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행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지요.

스스로 치즈 덕후라고 생각하시나요?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동의하시는지. 8년 전부터 매년 유럽으로 떠나 가지각색의 수많은 치즈를 잔뜩 사와 맛을 비교하며 꼼꼼히 필기했고, 귀국해서는 여러 방법으로 치즈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일본, 네팔, 동남아시아에 갈 때도 늘 관심사는 치즈였지요. 이런 치즈 덕후가 또 있을까요? 덕후가 세상을 바꾸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이모작을 고심하는 <노블레스 맨>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주변의 조언 등을 토대로 결정에 확신이 있다면 옮겨보기를 추천합니다. 100% 본인의 결정이라면 후회 없이 후련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인생 삼, 사모작도 고려 중인가요? 특별히 규정하진 않고 자유롭게 제 생각과 경험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레고 공인 작가로 발돋움한 개발자, 김성욱(하비앤토이 대표)

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휴대폰 사업부에서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2000년부터 레고 취미를 본격적으로 살린 국내 최고 레고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를 운영하며 레고 브릭을 활용한 창작품 제작을 부업으로 진행하다가, 제작 의뢰가 많아지면서 2010년 전문적으로 레고 모형을 제작하는 ‘하비앤토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018년 초에는 레고 본사로부터 전 세계 단 16명뿐인 레고 공인 작가로 인정받았습니다.

레고에 다시 푹 빠지게 된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어릴 적 좋아했던 레고를 성인이 된 어느 날 백화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엔 이미 온라인 게임이 폭발적 인기였기에 성인은 물론 아이들조차 레고 같은 장난감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된 제가 일상에서 레고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지요. 그 하루가 지금의 저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회만 된다면 좋아하는 일을 꼭 업으로 삼길,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타인이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과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에는 업무 능률과 결과물의 퀄리티, 동일 업무량 대비 피로도 차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작업 과정만으로 즐거우니까요. 좋아하기에 과정에서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도 불쑥불쑥 떠오릅니다.

아직도 레고를 보면 가슴이 뛰시나요? 물론입니다. 다만 18년 동안 레고를 만지면서 가슴이 뛰는 대상이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레고 수집에 치중하던 초기에는 새로 출시되는 제품을 볼 때마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뛰었지만, 지금은 레고 브릭을 활용한 작품 제작에 관심이 많아 작품에 도움이 될 만한 레고 부품이 등장하면 마음이 설레곤 합니다.

최근 가장 즐거웠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요즘은 하비앤토이 자체 전시회를 위한 첫 작품 ‘스타워즈 트렌치런 디오라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10년간 주로 제작 납품을 하며 쌓은 수많은 노하우를 이 작품에 쏟아내는 중인데, 그 과정이 참 짜릿합니다. 작품 제작 중 상황극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해 SNS에 업로드 하면서 또 다른 재미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인생 이모작을 고심하는 <노블레스 맨>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직업의 다양성이 미비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뛰어들기보다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창업을 준비한다면 우선 부업으로 출발해 실무 지식을 쌓으면서 해당 시장의 규모, 틈새시장의 유무, 신규 시장 창출 가능성, 경쟁업체 존재 및 진입 장벽 수준 등을 고려해 시점을 적절히 조율할 것을 권합니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일러스트 최익견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