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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ARTIST&PEOPLE

두 거장

  • 2018-11-30

갑자기 건축가? 지금까지 ‘파인 아트’ 작가를 소개해온 월드 아티스트 칼럼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 게 사실. 하지만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의 첫 한국 방문을 놓칠 수 없었다.

왼쪽부터_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은 1950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스위스 건축가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 이들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함께 건축을 공부했고 1978년 건축사사무소 헤어초크 & 드 뫼롱을 오픈했다. 프리츠커상, 스털링상, 루베트킨상 등 저명한 건축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축가 듀오는 스위스 건축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마드리드에 갔을 때 일이다. 친구 중 한 명이 마드리드에서 건축을 전공했는데 도시를 방문한 나에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데려간 장소는 ‘카익사포룸 마드리드(CaixaForum Madrid)’. 간단히 설명하면 마드리드의 낡은 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한 문화 공간이다. 그는 카익사포룸 마드리드의 꼭대기만 간신히 보이는 먼발치서부터 건물의 경이로움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건축을 ‘미술’의 한 범주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문외한이었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찬사가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마주한 카익사포룸 마드리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두 채의 서로 다른 건물을 위아래로 이어 붙여 스페인 전통과 현대의 건축양식을 조합했고, 건물 한 면은 식물로 뒤덮어 문명과 자연의 만남을 꾀했다. 합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인 존재들이 한 건물에 모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여기에 하나 더, 건물 뒤쪽은 땅에 붙어 있지만 앞쪽은 낮은 기둥에 의지한 채 하늘로 떠 있어 독특한 외모의 종지부를 찍었다. 피카소가 입체파 작품을 처음 공개했을 때 같은 20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이러했을까? 그때부터였다. 건축이 예술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






런던의 테이트 모던.

서론이 길었다. 왜 카익사포룸 마드리드에 대해 구구절절 말했느냐 하면 그 건축가가 자크 헤어초크(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은 건축가 듀오이기 전에 친구였다. 일곱 살에 처음 만나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고 같은 대학 건축과에 진학해 자연스레 건축사사무소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을 설립했다. 이들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National Stadium, The Main Stadium for the 2008 Olympic Games),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등 미술관과 경기장 그리고 대형 건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손댈 때마다 대작을 탄생시키는 이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건축가, 아니 예술가 사이에서 헤어초크와 드 뫼롱을 모른다는 건 ‘상식 부재’다.
지난 10월, 두 건축가가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건축 시안 발표를 위해 처음 한국에 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헤어초크와 드 뫼롱. 그들은 인사도 채 나누기 전에 ‘틀에 박힌 질문이 아닌 창의적인 질문을 달라’고 요구했다. 예상치 못한 요청에 다소 긴장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그들은 매사에 솔직했을 뿐이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은 ‘No’라는 단어로 일관하는 등 대답을 거창하게 꾸며내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 단호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걸까? ‘거장’이라는 단어 외에는 둘을 설명할 길이 없다. 거장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 그들과의 만남을 <아트나우> 독자와 공유한다.











엘프 필하모니 함부르크.

첫 서울 방문입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자크 헤어초크(이하 자크)/ ‘도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울은 비교적 역사가 짧죠. 특히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이 들어서는 강남은 서울의 중심부로 부상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개인적으로 압구정의 도산대로가 흥미롭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건물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문화, 예술, 건축을 아우르는 도시 프로젝트입니다. 잘 세운 건축물 하나는 도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죠. 그래서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전 주변 환경을 검토하곤 하는데 도산대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지점이 있더군요.

한국 사람인 제 입장에서 도산대로는 단지 서울의 큰길 중 하나일 뿐인데, 어떤 점이 흥미로웠는지 궁금합니다. 자크/ 도산대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각양각색’이에요. 대로를 따라 현대적 건물이 쭉 늘어서 있는데, 무엇 하나 닮은 구석이 없어요. 아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여 있거나 통유리로 외관을 두른 건물, 반대로 낡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도 섞여 있더군요. 사용한 건축자재, 컬러 그리고 건물의 파사드까지 비슷한 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른 구획법과 건축법을 적용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도시가 주는 영감이 없어서 아쉬웠죠.






1 화력 발전소에서 미술관이 된 테이트 모던.
2 홍콩에 있는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 아츠.

그렇다면 첫 한국 프로젝트인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설계는 어떻게 탄생한 거죠? 말씀하신 대로 건축이란 단순히 하나의 건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시 프로젝트’인데, 도시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다는 말씀이 의외라서요. 게다가 지난 건축들에 비해 다소 단조롭기도 하고요. 외관엔 콘크리트만 사용했고 창문도 거의 없죠. 미니멀리즘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자크/ 도산대로가 굉장히 상업적이라고 느꼈어요. 한데 송은문화재단은 비상업적이죠. 그래서 컨셉을 ‘다른 건물과의 차별화’로 잡고 미니멀리즘을 택했습니다. 반대로 묻고 싶어요. 당신은 화려한 네온사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일 소재가 더 파워풀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죠.
피에르 드 뫼롱(이하 피에르)/ 건축은 ‘business of restriction’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한국의 토지사용제한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했어요. 물론 제약이 없다면 좋겠죠. 하지만 법은 어디에나 있고 어길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최고의 조형을 창출하는 게 저희의 임무예요.
자크/ 맞아요. 법적 제약이 불편하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을 많이 받지만 ‘더 했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무엇을 더 해봐야 나아질 것 같지 않거든요.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할까요. 또 법적인 문제 등 제약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야 미학적 가치를 찾을 수 있죠. 이번 신사옥 설계도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요.






새 둥지를 닮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도산대로가 꽤 화려한 만큼 일각에선 되레 ‘미니멀리즘’이 일관성을 해친다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도산대로에는 굉장히 다양한 건축물이 있어요. 그런 성격을 생각하면 일관성을 해친다고 볼 수 없죠. 오히려 미니멀리즘이 그곳에 퀄리티를 더한다고 봐요.

요즘은 드물지만 예전엔 아이웨이웨이를 포함해 여러 예술가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어요. 이번에는 따로 협업을 하지 않으셨죠? 자크/ 네. 현대미술가와 함께하는 건 흥미롭지만 저희에겐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에요. 특히 미술관은 더하죠.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공간이기에 그들이 직접 관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예술가의 참여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향후 한국 작가와 만나고 싶긴 해요. 좋은 기회가 닿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협업에 임하려 합니다.






밀라노의 펠트리넬리 포르타 볼타 빌딩.

현대미술에 흥미가 있다면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도 있겠네요? 자크/ 특정 인물을 언급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모든 사람이 특별하죠. 많은 작가를 두루 좋아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예술가를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로 인해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야가 좁아지기도 합니다. 무엇을 해도 그 작가와 연관 짓더라고요. 비슷한 맥락으로 ‘누구에게 영감을 받았다’, ‘누구를 모토로 삼는다’라는 말도 하지 않아요. 자칫 위험한 발언으로 번질 수 있어서요. 게다가 특정 이름을 말하면 꼭 자극적인 기사 헤드라인을 쓰는 데 이용하던데요? ‘자크 헤어초크, 000의 열혈팬’ 같은 식으로.(웃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여쭤볼게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텐데 그중 인상 깊은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피에르/ 단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클라이언트죠. 그들이 직접 의견을 내야 서로 신뢰가 쌓이고 그래야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어요. 특히 건축은 특정 부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철학과 사명감, 의지를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지난 프로젝트는 재생 건축과 신축,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전자에는 테이트 모던과 카익사포룸 마드리드, 후자에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과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이 포함되죠. 재활용과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것의 차이가 있을 듯한데 둘의 접근법은 어떻게 다른가요? 피에르/ 저희가 그 두 프로젝트에 달리 접근할 거라는 가정하에 질문한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물론 겉으로 보기엔 다르다 싶을 수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바라보죠. 주변 환경을 면밀히 분석해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와 해답을 고민해요. 차이가 있다면, 재생 건축의 경우 기존 건물을 기술적으로 검토한다는 것 정도? 어떤 건축이든 ‘공간’을 만든다는 동일한 목적을 공유하기에 도시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다르게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예요.






3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건축 조감도.
4 재생 건축 중 하나인 카익사포룸 마드리드.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여러 동양 국가를 방문했죠. 서양 문화를 배경으로 생활하고 작업해온 사람으로서 건축적으로 동서양의 차이가 존재하나요? 피에르/ 서양은 역사가 깃든 옛 건물을 보존하려 하는 반면, 동양은 건물이 오래되면 허물고 새로 짓더군요. 베이징, 도쿄, 서울만 봐도 기존의 오래된 건물을 쉽게 철거하는 것 같습니다.
자크/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요즘은 동양에서도 옛것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어요. 어제 서울 도심 한복판을 걸었는데 길에 유리 바닥이 깔려 있더라고요. 신기해서 유심히 보니 그 아래 유물이 빼곡했죠. 전통과 현대를 둘 다 살리고자 한 모습이 특이했어요. 한참을 바라봤어요.
피에르/ 동서양 중 어느 하나가 틀리다는 건 아니에요. 무조건 옛것이 좋고 새것은 안 좋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퀄리티가 낮은 건물은 굳이 보존할 필요가 없죠.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두 분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피에르/ 지속 가능한 건물? 당장 몇 년이 아니라 100년 이상 사는 건축물이죠. 그리고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게 좋은 건축 아닐까요?
자크/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죠. 시대는 물론이고 사용자의 일상, 감정, 느낌까지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미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기능 역시 무시할 수 없죠. 예술이 심미성을 추구한다면 건축은 여기에 더해 실용성까지 바라보죠. 좋은 건축이란 아름다움과 기능을 아우른 것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윤주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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