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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CITY NOW

겨울 궁전의 힘

  • 2019-01-14

러시아 문화 부흥을 이끈 예르미타시 뮤지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이 있는 곳.

근·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신관.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감각적인 영화 <러시아 방주(Russian Ark)>엔 러시아의 문화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르미타시 뮤지엄(Hermitage Museum)이 등장한다. 95분짜리 영화가 원 테이크로 이어진다는 점도 신기했지만, 배경으로 등장한 그 아름다운 박물관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겨울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본관.

당시 박물관 측은 영화 촬영을 단 하루만 허락했고, 특히 겨울이라 해가 짧은 터라 촬영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러시아 방주>의 시놉시스는 예르미타시 뮤지엄을 이렇게 묘사했다. “러시아인에게는 영혼의 방주 같은 곳이며 러시아 역사의 소우주”라고. 지난가을, ‘러시아 역사의 소우주’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인 예르미타시 뮤지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르미타시 뮤지엄 신관에서 꼭 봐야할 작품 중 하나인 앙리 마티스의 ‘The Dance’.

매해 3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는 박물관의 높은 인기를 증명하듯 오픈 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입장하는 데만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우선 작품을 다 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수가 무려 300만 점에 달할 뿐 아니라, 본관만 해도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전시 작품을 딱 1분씩만 관람해도 전체를 둘러보려면 11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다.






본관의 플랑드르 페인팅 컬렉션도 인기다.

예르미타시 뮤지엄이 개관한 1700년대 중반, 러시아의 귀족 문화는 서유럽 귀족의 문화적 소양과 품격에 비해 후진적이었다. 당시 유럽 귀족 사회에선 예술 작품을 구매해 개인 화랑을 꾸리는 문화가 유행했지만, 같은 시기 러시아엔 개인 화랑은커녕 박물관조차 찾기 어려웠다.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러시아에 문화 부흥기를 선사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만든 데는 겨울 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예르미타시 뮤지엄의 역할이 컸다. 당시 왕족이 겨울휴가를 보낸 곳이라 겨울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박물관 본관은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 재임 시기에 바르톨로메오 프란시스코 라스트렐리(Bartolomeo Francesco Rastrelli)가 바로크 양식을 표방해 초안을 설계했다.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의 예술품을 수집해 전시하고, 이후 차곡차곡 작품을 모으며 컬렉션을 확장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지금처럼 일반 대중에게 열린 박물관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혁명 이후 귀족에게 몰수한 작품을 모아놓는 장소로 쓰여 프랑스어로 ‘은신처, 은둔처’를 뜻하는 ‘hermitage’에서 유래한 예르미타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겨울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요르단 계단’.

어마어마한 소장품 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이집트 유물, 앤티크 오브제, 선사시대 예술, 보석과 장식미술, 그리스·로마·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걸작, 독일·스위스·영국·프랑스의 예술과 동양의 보물, 신고전주의·낭만주의·인상파 작품까지 컬렉션이 커버하는 장르와 시대의 폭이 상상 이상으로 넓고 풍부하다. 물론 러시아 예술도 있다. 컬렉션과 전시의 폭이 넓은데도 주로 약탈 예술품으로 소장품 수를 늘린 몇몇 박물관처럼 다른 국가의 문화재를 약탈하진 않았다는 것이 예르미타시 뮤지엄의 자랑거리다. 물론 약탈 문화재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럽과 비교하면 적다. 구소련 시절엔 경제 위기로 외화가 부족해 소장품을 외국에 판 적도 있지만, 경기가 회복되자 곧바로 다시 소장품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블록버스터급 유럽 미술가의 작품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의 ‘Stolen Kiss’도 겨울 궁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

서유럽 전시실만 해도 무려 100개가 넘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작품 등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유럽의 마스터피스가 즐비하다. 본관과 마주 보고 있는 신관은 유럽 근·현대미술의 온상이다. 르누아르,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 인상주의부터 큐비즘에 이르는 근·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상설전뿐 아니라 기획전도 풍성하다. 내년 1월 13일까지 < The Age of Rembrandt and Vermeer >전과 < Imperial Capitals: St. Petersburg - Vienna. Masterpieces of Museum Collections > 등의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라파엘로의 ‘Madonna Connestabile’(1502-1504년).

2012년 러시아를 방문한 영국의 배우 대니얼 래드클리프(Daniel Radcliffe)는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뮤지엄을 꼽았다. 그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6시간을 머물렀지만 부족했다. 적어도 이틀은 관람해야 할 것(I was impressed by the Hermitage! It’s just an amazing place. I think I spent six hours there, but it’s not enough, you need at least two days)”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올겨울엔 황제처럼 겨울 궁전으로 휴가를 떠나보면 어떨까? 예르미타시 뮤지엄은 지난 10월 초 한국과 가까운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따끈따끈한 분관을 오픈했으니 이곳을 찾아가도 좋겠다. 어느 지점을 방문하든, 뮤지엄의 어느 전시실에 들어서든, 취향 불문 누구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거라고 자신한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백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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