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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CITY NOW

협업, 미술관을 구원하다

  • 2019-01-02

런던의 미술관이 경영난을 타개하고자 브랜드와 손을 잡았다.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미술관 운영 방식.

내셔널 갤러리와 사보이어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Savoir Felix with Giovanni Gherardo di’.

최근 10년간 영국 미술관과 박물관의 보조금이 약 13% 감소했다. 비영리 기관이 대부분인 미술관의 경영 면에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연일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며 치솟는 미술품의 가격 덕에 소장품 수집에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입장료를 다시 받기 시작하거나 운영 시간을 줄이는 등 각자 나름의 위기 탈출 방안을 모색하는 중에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과 내셔널 갤러리가 제시한 방법은 새로운 귀감이 될 만하다. 브랜드와의 협업이 그것. 이는 부족한 예산을 메워 위기를 벗어나 동시에 미술관 영역을 확장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중 ‘디자인과 홍보 비용의 절감’, ‘시장 규모 확장’ 그리고 ‘매출 증대’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우선 홍보. 브랜드와 함께 전시를 꾸리면 미술관과 브랜드 양측에서 전시를 광고하기에 미술관은 적은 비용으로 홍보하면서 더 많은 관람객을 모을 수 있다. 시장 규모 확장, 매출 증대는 조금 더 장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당장 눈에 보이는 ‘순수익 증대’도 중요하지만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상업 전략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새로운 경영 방법을 모색하는 미술관이 늘어난 요즘, 이미 검증된 수익 창출 노하우를 다이렉트로 전수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덕분에 저비용 고효율로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동시에 기관의 인지도를 강화하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 한편, 브랜드는 미술관의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디자인 소스를 얻을 수 있으며, 유서 깊은 미술관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브랜드의 고급화를 실현할 수 있다. 미술관과 브랜드의 만남, 여러모로 윈윈(win-win)이다.






V&A와 코코 디 마가 함께 출시한 란제리 라인.

V&A, 패션 브랜드와 조우하다
166년 전통의 V&A는 세계 최대 장식미술, 공예, 디자인 박물관으로 이들의 컬렉션은 여전히 젊은 영국 디자이너에게 ‘완벽한 영감의 원천’으로 회자된다.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현재의 디자인을 창조하는 V&A. 그렇기에 영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며 미술관 운영에 도움을 받고, 영국의 전통 가치를 재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영국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2013년, V&A는 드레스 패션 브랜드 ‘코스트(Coast)’와 ‘벨가운 이브닝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드레스는 V&A가 2012년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전시 < Ballgowns: British Glamour since 1950 >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고전적 실루엣과 디테일을 현대의 기술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2015년에는 좀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영국 럭셔리 란제리 브랜드 ‘코코 디 마(Coco de Mar)’와 함께했다. 특히 ‘시그너처(Signature)’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제품은 영국 디자인의 정수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창안한 패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시그너처의 깊고 짙은 톤의 레드, 바이올렛, 루비 라인은 영국 특유의 분위기를 녹여내 코코 디 마는 물론 V&A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한다. 이외에도 영국의 패션 브랜드 ‘오아시스(Oasis)’와 ‘클락스(Clarks)’가 컬래버레이션 바통을 이어받아 창의적 디자인 제품을 선보였다.






얀 판 더 카펠라의 ‘항구의 돛단배들’을 활용한 사보이어

단발성으로 그친 작업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협업을 이어가는 브랜드도 있다. 오거닉 패션 브랜드로 알려진 ‘피플 트리(People Tree)’를 예로 들 수 있는데, 2017년 가을에 첫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발표한 덕에 2018년까지 그 인연을 이어갔다. 올해는 영국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와 찰스 보이시(Charles Voysey)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후문. 게다가 모든 제품을 100% 유기농 면으로 제작해 브랜드의 정체성도 잃지 않았다.
V&A의 협업 대상은 패션 브랜드에 그치지 않는다. 2017년에는 가구 브랜드 ‘메이드(Made)’와 제휴해 ‘합판’을 주재료로 삼은 전시 < Plywood: Material of the Modern World >를 선보였다. 2010년, 런던을 베이스로 런칭한 디자인 가구 브랜드 메이드는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이라는 장점을 두루 갖춰 최근 영국 디자인 시장에서 독보적 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디자인, 생산을 공정한 방법으로 진행해 인지도를 키워온 메이드는 이번 V&A와의 협업을 통해 비교적 저평가돼온 디자인 안목을 뽐냈다. 원하는 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합판의 장점을 살려 생활용품을 제작했는데, 둥근 모서리와 각진 모서리를 아우른 사각 프레임과 원형 프레임의 거울, 자유로운 곡선으로 마감한 옷걸이와 연필꽂이 등은 품절 행진을 이어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내셔널 갤러리와 화이트 스터프가 협업한 스카프와 파우치.

시대의 흐름을 읽는 내셔널 갤러리
13세기부터 1900년대까지 2300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모네, 고흐 등 그야말로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즐비하다. 그러나 고고한 이들도 시대의 변화를 무시할 순 없었다. 올해 5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화이트 스터프(White Stuff)’와 함께 스커트, 스카프를 비롯해 컬래버레이션 제품 11점을 공개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과 ‘길게 자란 풀과 나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원피스, 스커트, 스카프같은 패션 아이템뿐 아니라 머그잔과 파우치 등 생활 소품을 만들었다. 거장의 작품을 옮겨온 만큼 적절한 생략으로 모던한 실루엣을 구현해 균형을 잡았다.
한편, 또 다른 파트너 ‘사보이어(Savior)’와의 협업은 새로운 차원의 럭셔리 문화를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05년 사보이어 호텔에서 시작한 사보이어는 윈스턴 처칠, 작곡가 푸치니, 메릴린 먼로 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들이 사랑한 침대로 알려진 브랜드다. 이들은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클로드 모네의 ‘석양’, 피오렌티노 게라르도의 ‘사랑과 순결의 격투’ 등 총 4점의 작품을 침대 프레임에 입혀 아트와 가구의 만남을 주선했다. 또한 사보이어는 프리미엄 베딩 브랜드에 걸맞게 스페셜 오더나 디자인 컨설팅도 가능하다. 세계 최고 품질과 서비스 그리고 아트의 협업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 아닐까?
전통적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은 그 자리에서 관람객을 마냥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들도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는 법. V&A와 내셔널 갤러리처럼 그간 취해온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 급변하는 환경에 발맞추고자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관람객의 요구 사항에 귀 기울이고 있다. 예술 기관과 브랜드의 파트너십은 미술 작품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루트이며, 동시에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고전을 현재로 가져와 그 가치를 다시금 되살리는 시도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   사진 제공 V&A, 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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