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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ARTIST&PEOPLE

다비드 H. 브롤리에

  • 2019-01-04

스위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컬렉터 중 한 명인 다비드 H. 브롤리에. 그는 미술계 주요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인물이다. 독특한 의상과 파란 선글라스는 멀리서도 그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컬렉터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실제 직업은 영화 프로듀서와 가수, 배우. 그야말로 아티스트적 기질이 그득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지난 5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스위스와 접한 프랑스 도시 생루이(Saint-Louis)의 페르네-브랑카 재단 미술관(Fondation Fernet-Branca)에서 40년간 모은 현대미술 작품 전시를 열었다. 전시 제목은 ‘40년의 열정’. 이 인터뷰는 전시 제목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가 오랫동안 현대미술을 품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다룬다.

영화 프로듀서와 가수, 배우 등 아티스트적 기질을 지닌 컬렉터 다비드 브롤리에.

다비드 브롤리에의 전시는 일간지 <르몽드>를 비롯한 프랑스와 스위스의 대표적 미술 매체가 앞다퉈 다뤘다. 물론 양적인 면에선 그보다 대단한 컬렉터도 많다. 그토록 많은 언론이 그를 조명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바로 미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 때문일 것. 한데 그 열정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여행 마니아인 그가 마침 제네바의 자택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후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페인팅과 조각, 미술 서적으로 가득한 그의 아파트는 마치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 같았다.

40년간 컬렉션을 해왔다면 꽤 어릴 적부터 시작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저희 아버지는 고전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자주 갤러리에 가곤 했지만 현대미술 갤러리에는 가본 적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네바에서 가장 유명한 갤러리스트 피에르 위베르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폴란드 출신 작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작품을 하나 샀고, 위베르는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제게 프랑스 리옹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 장 필리프 오바넬의 회화를 선물로 주었죠. 그에게 그 행위가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평생을 컬렉터로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옹에 갔고, 그곳 출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컬렉팅 초기에 모은 작품을 이번 페르네-브랑카 재단 전시의 ‘아카이브 룸’ 섹션에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갤러리스트 피에르 위베르 덕에 당신의 컬렉션 역사가 시작된 거군요? 그런 셈이죠. 그는 제게 미래의 현대미술사에 남을 훌륭한 작가도 소개해줬습니다. 신디 셔먼이나 토마스 데만트, 가다 아메르, 바네사 비크로포트, 로버트 마펠토르프를 비롯해 막 떠오르던 작가들의 작품이 왜 중요한지 자주 들려주었죠.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쉽게 살 순 없었습니다. 그 시절 제 컬렉션은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가격이 낮은 젊은 작가의 작품을 할부로 구입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피에르 위베르가 소개해준 작가의 작품은 당시 몇천 달러에 불과했어요. 그 시절 피에르 위베르만큼이나 제게 중요한 사람이 제네바에서 아날릭스 포에버(Analix Forever) 갤러리를 운영한 바르바라 폴라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제가 컬렉션을 시작한 시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니얼 아샴의 ‘Pyrite Cracked Face’.
2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를 비롯한 유럽의 대표적 미술 매체가 앞다퉈 다룬 다비드 브롤리에의 <40년의 열정>전 전경.

두 사람은 지금의 당신 컬렉션을 이룩한 훌륭한 조력자로 보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작품을 구입할 때 자문을 구하고 이를 많이 참고하시는 편인가요? 다른 이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듣지만, 결국 제 자신의 감을 믿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 아직 주목받지 못할 때 작품을 사는 걸 좋아하죠. 그럴 땐 제 취향과 본능을 따르는 편이에요. 젊은 작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감도 나름 있다고 자부하고요. 일례로 지금은 스타가 된 가다 아메르의 경우 무명 시절에 그린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제 소장품 중 어떤 작품이 현재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시장 가격의 상승률이 아니니까요. 저는 작가와 작품을 향한 제 안의 열정을 중요시합니다. 그들이 제 컬렉션에 포함되었다는 건 바로 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죠. 가령 바네사 비크로포트의 작품은 현재 가격이 낮은 편이지만, 저는 그녀의 가장 희귀한 폴라로이드 시리즈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컬렉션은 주식시장의 블루칩과 같은 작품만 사들이는 돈 많은 컬렉터들의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페르네-브랑카 재단 미술관에서 소장품 전시를 하게 된 계기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시 제목이 ‘40년의 열정’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 저는 현대미술에 대한 열정과 컬렉터로서 작가들과 맺어온 진지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르몽드>와 미술 잡지 < ama >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다룬 기사가 이 전시의 취지를 아주 잘 소개하고 있죠. 일례로 <레제코(Les Echos)>라는 잡지의 기자 주디트 베나무-위에는 전시를 보고 “다비드 브롤리에는 마음으로 컬렉팅한다”고 썼더군요. 그 기사를 읽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저는 지금은 구하기 힘든, 현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데, 이쯤에서 그것을 보다 많은 이와 공유하고 싶어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전시 기획자 베로니크 일르로가 말한 “컬렉터의 눈으로 보는 컬렉션의 비전”이란 표현이 이 전시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봅니다.

당신은 스위스인이지만 프랑스 미술계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오래전 그곳에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었죠. 그곳과 관련한 일화도 장황한 걸로 압니다. 1990년대에 파리에 별장으로 사용하는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층고가 6m에 달하는 곳이었죠. (그는 인터뷰 중 당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곳엔 신디 셔먼과 베른하르트 마르틴, 카데르 아티아, 무니르 파트미, 에르빈 부름, 실비 플뢰리, 왕두, 천전, 줄리앙 베네통, 바르텔레미 토구오, 파스칼 마르틴 타유, 자크 모노리 등의 작품이 가득 차 있었고, 많은 작가와 평론가, 큐레이터 그리고 전 세계에서 파리를 찾은 컬렉터가 드나들었죠. 그렇게 자연스레 프랑스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고,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컬렉터들이 주도해 만든 ADIAF(Association pour la Diffusion Internationale de l’Art Francais) 위원회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현재 프랑스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상인 ‘마르셀 뒤샹상(Prix Marcel Duchamp)’의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죠. 특히 마르셀 뒤샹상은 피악(FIAC) 기간에 퐁피두 센터에서 4명의 후보를 조명하는 전시와 함께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이 기간엔 전 세계 미술관 큐레이터와 컬렉터가 프랑스 작가들을 주목하죠. 그 때문에 이때 마르셀 뒤샹상을 통해 전도유망한 프랑스 작가들을 널리 소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마르셀 뒤샹상은 언젠가 스위스 작가가 받은 적도 있죠? 맞아요. 프랑스에서 주는 상이지만, 스위스 출신 작가 토마스 히르슈호른이 2000년에 이 상을 받았죠. 스위스 출신이지만 그가 프랑스에서도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은 스위스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상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ADIAF 회장 질 퓌슈가 제정한 이 상의 가장 큰 특징은 컬렉터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문화부를 비롯한 공공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개인들이 이뤄냈고, 현재까지 15회나 이어오며 영국의 터너상처럼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죠. 저는 이처럼 작가와 관람객, 작가와 미술 관계자, 작가와 미술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현대미술 대사로서 제 소장품을 미술관에 대여하고, 보다 많은 이에게 현대미술을 알리고 제가 발견한 예술을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마르셀 뒤샹상의 역대 수상자와 후보자들의 작품을 초청해 전시를 연 적이 있는데, 그 이면에 당신의 공헌이 있었군요?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 현대미술이 늘 흥미롭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에 만난 김수자 작가의 ‘세탁하는 여자’를 구입했고 지금은 그녀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김수자 작가 외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가까운 시일 안에 오길 바랍니다. 저를 한국에 초대해주세요.




3 다비드 H. 브롤리에는 <40년의 열정>전에서 오랫동안 현대미술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소개했다.
4 브라질 작가 퉁가(Tunga)의 ‘Heralds #4’.

많은 아트 페어에 다니시는 걸로 아는데, 아트 페어를 통해 작품 소장 외에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연간 5개 이상의 메이저 아트 페어를 방문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페어는 아트 바젤이라 생각하고요. 아트 페어를 다니며 많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컬렉터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그들의 소장품을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이 아트 페어에서 어떤 작품을 발견했는지, 어떤 작가를 주목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예술을 통해 하나의 대가족이 형성되는 느낌을 받죠.

사실 이 칼럼에서 제가 스위스 컬렉터를 만나는 건 처음입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현재 거주하는 제네바를 대표하는 제네바 현대미술관(MAMCO)의 프로그램과 발전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아주 중요한 미술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미술관에 작품도 기부하고 있죠. 최근엔 존 암리더의 역사적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한데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스위스에선 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해도 세금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혜택이 주어지든 말든 컬렉터라면 응당 공공 미술관을 서포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컬렉터가 이를 따르도록 모범을 보여야겠죠.

작품 기부에 대한 세금 혜택이 전혀 없는 스위스와 달리 프랑스에는 문화 지원 관련 법이 비교적 잘 정립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두 나라를 자주 오가며 실제로 어떤 차이를 느끼시는지요? 프랑스는 문화 융성에 관한 한 오래전부터 매우 효과적인 정책과 네트워크를 유지해온 나라입니다. 프랑스 외무부는 해외 각지에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그 네트워크를 잘 관리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프랑스는 문화적 야심이 큰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스위스는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문화적 네트워크의 규모도 작죠. 하지만 모순되게도 프랑스 작가보다 스위스 작가가 국제 미술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그건 스위스의 기관들이 보다 정기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자국의 작가를 지원하기 때문일 겁니다. 프랑스처럼 소장품이 방대하고 훌륭한 미술관이 많은 나라의 기관은 다소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습니다. 각 기관의 이미지에 더 집중하죠. 반면 스위스의 기관은 의견을 모아 작가 위주의 프로모션을 벌이는 경향이 짙습니다.

컬렉션은 물론 국가의 미술 시스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컬렉션을 시작하고자 하는 젊은 컬렉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동시대의 예술을 잘 살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싫다’ 또는 ‘좋다’고 말하는 건 모두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다만 ‘이건 똥 같다’거나 ‘나도 그릴 수 있겠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컬렉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대미술이 항상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론 지나치게 개념적이죠. 하지만 그런 작품이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면 일단 질문을 했으면 좋겠어요. 갤러리에서 큐레이터에게 작품에 대해 묻고, 작가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지 묻고 그 답을 경청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는 실제로도 이런 얘길 자주 합니다. 그러다 간혹 작은 작품을 샀다는 지인을 만나면 아주 기쁘죠. ‘컬렉팅’이라는 병을 제가 전염시킨 듯해서요.




프랑스 출신 젊은 작가 마를렌 모케의 ‘La Nature Totemique’.

Marlene Mocquet
일상의 사물과 동물을 의인화해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하는 마를렌 모케. 1979년생 젊은 작가로 2007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품의 표현 방식은 상징주의에서 출발해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등으로 다양하며 그 기법 또한 드로잉부터 액션 페인팅, 조각, 최신 만화 이미지 차용 등 개성이 넘친다.







5 미국의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살의 ‘Curtain Down’.
6 젊은 컬렉터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모로코 출신 작가 무니르 파트미의 ‘Maximum Sensation’.

David Salle
대중문화와 포르노그래피, 인류학 등에서 추출한 다층적이고 분석 불가능한 이미지의 파편을 표현하는 데이비드 살. 그의 회화 작품에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중첩이며, 대중문화에서의 이미지 차용도 빈번하다. 2013년 리안갤러리 서울의 개관전을 통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7 아프리카 서부 공화국 베냉 출신의 작가 로뮈알드 아주메(Romuald Hazoume)의 ‘Crazy Horse’.
8 yBa의 멤버 중 한 명인 맷 콜리쇼(Mat Collishaw)의 ‘Waterfall’.
9 호주 원주민 출신으로 원주민에 대한 편견, 인종과 성에 대한 탄압 등을 소재로 작업하는 트레이시 모팻의 ‘Something More #3’.

Tracey Moffatt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하며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아티스트 트레이시 모팻. 그간 비디오 아트와 사진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인종차별과 계급, 식민지의 상처를 다뤄왔다. 작품은 서술적 구조를 기반으로 고급미술과 대중문화 그리고 민속미술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리스 판더모르텔의 ‘Rock’n Roll Station’.

Joris van de Moortel
벨기에 출신으로 뮤지션 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요리스 판더모르텔. 한국 나이로 올해 36세의 젊은 작가로 뮤지션으로 활동할 땐 하모니카와 기타, 베이스를 연주한다. 미술 작업은 대부분 음악과 관련된 것으로 네온사인과 스피커 부품, 기타 줄을 재료로 삼는다. 공연과 연주에서 느낀 감정을 현대미술로 옮기는 독특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Sunhee Choi(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   사진 제공 다비드 H. 브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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