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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LIFESTYLE

AI Painter

  • 2018-11-29

창조성이 인간의 전유물일까? 인공지능이 반기를 들었다.

1 마이크 타이카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을 통해 선보인 ‘비현실 초상화’.
2 뉴욕 크리스티 옥션 사상 처음으로 경매에 오른 인공지능 그림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1층 전시장 가운데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여자의 초상화 몇 점이 걸렸다. 물에 번진 듯 묘하게 일그러진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그림. 한데 놀라운 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완성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시애틀에서 활동하는 작가 마이크 타이카(Mike Tyka)는 인공지능에게 사진 공유 플랫폼인 플리커(Flickr)의 얼굴 사진 수천 점을 학습시켜 비현실적인 초상화를 만들어냈다.
최근 인공지능의 능력은 미술 작품처럼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해온 예술 분야까지 확장되었다. 음성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집 안 가전제품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며, 인공지능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운전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창의성, 감성, 예술성만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발전은 보란 듯 그 믿음을 깬다.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인공지능은 기존 컴퓨터 프로그램과 달리 놀라운 학습 능력을 갖추었다. 즉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하고 자신의 능력을 강화한 후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원하는 답을 도출하는 것. 우리는 이를 딥 러닝이라 부르며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 역시 이 진보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는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이라 이름 붙인 시스템이다. 오픈AI의 수석연구원 이언 굿펠로가 개발한 GAN은 2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작품을 창조한다. 하나는 인간의 명령어인 텍스트에서 이미지를 생성하고, 다른 하나는 그 이미지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 이런 체계적 시스템 덕분에 인공지능으로 그린 그림 대부분이 GAN 알고리즘을 사용했다고 할 정도로 가장 보편화되었다. 최근 뉴욕 크리스티 옥션 사상 처음으로 경매에 오른 인공지능 그림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 역시 GAN을 활용한 예.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 연구원 등으로 구성한 프로젝트 팀 오비어스(Obvious)는 14~20세기 초상화 1만5000점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결과 기존 초상화와는 전혀 다른 화풍의 작품을 완성했다. 형체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는 뭉개진 모습과 검은 불길에 휩싸인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좌중을 압도한다. 이 그림이 과연 창조적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들은 “우리는 작품 자체보다 우리의 작업을 통해 창조하는 논쟁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인공지능 연구원 로비 배럿(Robbie Barrat)도 GAN을 활용한 누드화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그림 수천 점을 학습시킨 후 이를 기반으로 직접 누드화를 그려보라고 지시한 것. 그 결과물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는데, 사람의 신체임을 알아볼 순 있으나 상(像)이 불분명해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 아래 “보통 인공지능은 인간을 갈퀴손과 팔다리가 무작위로 달린 살덩어리로 그려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뭉개진 그림은 인간의 이면에 감춰진 욕망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3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연구팀과 렘브란트 미술관의 협업으로 탄생한 ‘더 넥스트 렘브란트’. 인공지능이 그리고 3D 프린팅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4 구글이 개발한 딥드림을 활용하면 실제 풍경 사진을 몽환적인 그림으로 바꿀 수 있다.
5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별이 빛나는 밤에’ 스타일로 바꾼 딥드림의 그림.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6년에 공개한 렘브란트 초상화 한 점으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연구팀과 렘브란트 미술관의 협업으로 탄생한 ‘더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렘브란트가 그린 3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분석하고 그의 그림 스타일을 학습시킨 후 40대 남자의 초상화, 모자를 쓰고 얼굴을 오른쪽으로 약간 돌린 형태로 그리라고 명령한 것. 인공지능 컴퓨터는 이를 수행하면서 3D 프린팅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3D 프린터로 출력했으나 유화처럼 붓질과 색채, 비례와 음영 등 렘브란트의 화풍이 그대로 살아 있는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를 기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드로잉봇으로 불리는 새로운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AttnGAN(Attentional GAN)이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받은 이 시스템은 그림 정보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읽고 스스로 사고한 후 그림을 그리는 보다 발전된 형태다. 머지않아 소설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데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화풍을 그대로 이식한 인공지능 시스템도 있다. 구글이 공개한 딥드림(Deep Dream)이 그것. 수많은 데이터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한 뒤 사물을 구분하는 사람의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해 기존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그림을 도출해낸다. 주어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뭉크의 ‘절규’처럼 어두운 색채에 뒤틀린 형태의 마을을 그리기도 하고, 반 고흐의 강렬하고 세밀한 붓 터치를 모사하기도 한다. 몽환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딥드림의 작품은 지난 2016년 샌프란시스코 경매를 통해 총 29점이 9만7000달러에 판매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영국의 화가이자 프로그램 개발자 헤럴드 코언이 개발한 아론(Aaron)은 한 차원 높은 기술이다. 아론을 설치한 컴퓨터와 기계 장비는 실제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기존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르다. 헤럴드 코언은 아론에 사진 정보가 아닌 사물과 인간의 신체 구조에 관한 정보를 주입하면서 스스로 색과 모양을 선택해 그림을 창작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아론이 그린 초상화는 인간의 육체를 왜곡해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한 에곤 실레의 작품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현재 인공지능이 그린 작품은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예술로 인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직 인간의 창조물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수준일 뿐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물론 컴퓨터 시스템을 명화를 남긴 과거의 화가들과 비교할 순 없다. 한데 그 그림에서 미적 감흥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개입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분명 전에 없던 창조물을 만들며 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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