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회화의 모색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ARTIST&PEOPLE
  • 2018-11-29

이상적 회화의 모색

독일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는 작가 샌정은 이전에 “이상적 회화의 모색은 미술사 안에서 여전히 사려 깊게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큰 산과도 같은 미술 세계에서 회화의 본질을 모색하고 자신의 미술을 끊임없이 객관화하는 그는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고 선 도전자의 모습이었다.

전시장에서 샌정 작가. 2017년 벨기에.

안녕하세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지내며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최근 쾰른에 있는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이외에 근황이 궁금합니다. 대체로 단조로운 일상이에요. 간소한 리듬 안에서 생활하지만 많은 시간을 회화의 영역을 고민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미완성 작품을 천천히 응시하며 여전히 어려운 페인팅의 의미를 짚어보고, 오후에는 그날 시도해볼 수 있는 붓 터치를 통해 다시 회화의 세계로 한 걸음 접근합니다. 저녁에는 책을 읽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범한 시간이 이어집니다. 어제는 이른 오후에 잠시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샀어요. 1920년대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화가에게 보낸 글이죠.




1 Untitled, Oil on Canvas, 50×40cm, 2018
2 지난 9월 7일부터 11월 4일까지 초이앤라거 갤러리 쾰른에서 샌정 작가의 개인전 가 열렸다.

2003년 금호미술관, 2004년 아트스페이스 풀, 갤러리정미소에서 연달아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당시 학생이던 저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며 매우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유학 후 한국에서 개최한 첫 사진 개인전은 어땠나요? 2001년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를 졸업하고 2년 뒤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작가로서 첫 개인전인 2000년 독일 다니엘-헨리 칸바일러 하우스(Daniel-Henry Kahnweiler Haus) 전시는 회화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 계기였어요. 지난 미술사에서 함께 호흡한 인물, 다니엘 칸바일러의 공간에 전시된 제 작품을 마주한 느낌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었죠. 이후 서울에서 진행한 전시를 돌이켜보면 금호미술관 개인전은 같은 해인 2003년 독일 바덴 뮤지엄 전시에서 선보인 캔버스 작품의 연장선에서 작업한 것이었습니다. 이듬해에 갤러리정미소와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개인전에선 전시장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전시가 끝난 후 지우는 월 페인팅 작품을 선보였죠. 같은 해에 독일 뮌스터에서도 벽화를 제작했습니다.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식으로 경험하는 붓질은 고대부터 회화 역사에 남아 있는 동일한 형식에 잠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앞으로도 상황이 된다면 제 추상적 작품 세계를 벽화로 그리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3 Untitled, Oil on Canvas, 240×200cm, 2008
4 Untitled, Oil on Canvas, 190×170cm, 2018
5 Untitled, Oil on Canvas, 190×170cm, 2018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동시대 미술을 정의하고, 지난 시기부터 현재까지 현대미술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선생님은 1987년 고낙범, 노경애, 명혜경, 이불, 정승, 최정화, 홍성민 등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젊은 20대 작가 7명이 결성한 소그룹 ‘뮤지움’ 멤버였습니다. 뮤지움이 활동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영향력은 지금도 상당합니다. 당시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그 시절 뮤지움은 막연하게나마 어떤 의미 있는 움직임을 한 그룹의 전시에 담고자 한 것 같습니다. 사실 꽤 시간이 흘러서 당시 그룹을 만든 계기나 당위성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결여된 그때의 저는 수동적으로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그룹전의 타이틀이 존재했음에도 특정 전시 방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시대정신은 그룹전에 어느 정도 내재했거나 묻어났을 거예요. 따라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 그룹전의 시작은 소속 작가들 스스로 ‘기존의 미술은 무엇이며 현존하는 미술은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시화하는 발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뮤지움은 “비정치적, 탈이데올로기, 탈장르를 실천한 신세대 그룹의 선두주자로서 실험적 기획전을 통해 모더니즘 미학, 박물관의 권위, 미술사의 전통에 공격을 가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구현해낸 신세대 미술의 시작이 아니라 한국적 모더니즘 미술의 마지막 한숨”으로 보고 오히려 이를 계기로 모더니즘적 담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룹 활동에 대한 생각과 유학을 결심하게 된 지점에 관련이 있는지요?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룹전을 통해 풋풋한 시도를 경험한 후 책을 통해 알게 된 다른 나라의 미술 흐름을 구체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길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고민하지도, 작업을 이어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룹 뮤지움은 긍정적 의미에서의 혼돈 속에서 자신과 바깥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마땅히 도래해야 한다고 보는 것들을 작품에 담으려 한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후 수년간 창작에 대한 개인적 소명을 느끼지 못한 저는 거의 붓을 놓고 지내다, 1990년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서양화과 재학 시절 순수한 감성으로 접한 철학 입문서를 통해 알게 된 독일어권 사상가들과 독일 표현주의의 투박하고 강한 시각예술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부 시절에도 언젠가 독일의 정서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나아가 독일에서 추구하는 아트 스쿨의 상아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6 Untitled, Oil on Canvas, 50×40cm, 2018
7 Untitled, Oil on Canvas, 54×40cm, 2017
8 Untitled, Oil on Canvas 60×70cm, 2018

좀 더 진지하게 선생님의 작품을 마주한 계기는 2008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이었습니다. 당시 작품들은 지금의 추상적이고 표면의 에너지가 좀 더 분명한 작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수채화에 가까울 만큼 엷고 지워진 듯한 당시의 채색 작업과 현재 작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2006년 런던 첼시 칼리지에서 MA 과정을 공부하면서 회화의 외적 형식을 넘어 미술 세계의 가치 영역을 제대로 흡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습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올드 마스터스의 작품을 자주 보았고, 구상과 비구상의 영역을 병행 실습하는 등 두 방향을 다른 각도에서 능동적으로 체험하려고 애썼죠. 오랫동안 관심을 둔 고대 신화부터 문학과 음악을 포함한 예술의 노스탤지어적 감성을 구상과 반추상의 형식으로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성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상의 반추상적 재해석을 거쳐 캔버스에 미니멀한 형태와 추상적 붓 터치, 기하학적 대상, 절제된 색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작품들이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무드를 조율했다면, 최근의 작품은 단순한 사각의 색면과 기본 도형을 통해 감성의 중립성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볼 수 있어요.

한 평론가는 올해 상반기에 열린 개인전 리뷰에서 “작품의 완성을 어느 지점에서 판단할지 궁금해진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지점에서 작품의 완성을 확신하나요? 단지 그림을 그리는 데 들인 물리적 시간이 작품을 완성하진 않습니다. ‘미완성 작품을 향해 반복되는 관조’, 이것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직접적이지 않아 쉽게 놓치게 되는 작품 속에서의 미묘함과 절묘함, ‘subtlety’의 문제입니다. 작품이 의미 있게 완성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진행 중인(in progress) 상태의 시간입니다. 투명하게 혹은 불투명하게 부딪치면서 균형을 잡은 실험적 시도는 여러 직관의 앞뒤에서 조금씩 완성의 방향으로 나아가죠. 결과적으로 한 작품이 완성되는 지점을 결정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한 작가의 한계점이라 부를 수 있는, 제가 이해하는 회화적 가치의 끝점에서 ‘이것은 또 하나의 세계다’라는 생각이 머물 때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주로 사용한, 무채색 바탕 위에 얹은 유채색은 어떻게 선택한 색인가요? 작품에서 색이 배제된 회색 톤, 즉 무채색에 가까운 배경은 동양 회화 정신에 기초한 여백의 성격을 내포합니다. 이런 빈 공간감 위에 보이는 색은 어떤 특정의 것을 상징하진 않습니다. 갈색은 갈색이고 녹색은 녹색이라는 색채 그 자체로 자리하는 거죠. 제가 기대하는 건 작품에 쓴 색이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덜 선명하게 표현되어 궁극적으로 제가 이해하는 미학적 접근 방법론이 내재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성과 이성이 이미 태고에 만들어낸 별자리처럼 화면 속에서 부여된 의미만 있을 뿐이죠.




초이앤라거 갤러리 쾰른에서 열린 개인전 전경.

이채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과 배경 위에 그린 무엇 사이의 거리감 혹은 깊이감이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작품이 입체적이고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보여요. 그렇게 보인다면 적어도 작품에 담은 일정한 무게가 전달된 것 아닐까요? 제 작품에 내재된 견고한 부분과 그보다 덜 단단한 형태로 표현한, 그리고 더러는 형태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의미적 애매함에서도 그런 깊이를 감지할 수 있겠죠. 화폭에서의 평면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평면과는 성격이 달라야 합니다. 회화의 평면은 사유 공간의 성격을 내재하고, 그리는 자가 상상하는 차원을 사뭇 달리하는 기반이죠. 어릴 적 막연히 바라보던 창공의 아득한 깊이나, ‘까만색은 밤하늘이고 무수한 하얀 빛은 별이었다’는 평범한 기억이 자아낸 설렘은 지금도 여전히 제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이라는 영역과 제 캔버스에서 다른 공간적 의미로 자리합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견딜 만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단지 본질 저편에 놓인 우리의 의지와 표상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그나마 이해해보려는 숭고한 의지 중 하나가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붓질의 누적, 단순한 색과 모호한 형태, 더 모호한 글자 등을 볼 때 앞으로 선생님의 회화에 대한 모색은 어떤 길을 향할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향후 선생님의 작품을 상상해보신다면 어떻습니까? 먼저 화가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계(the world)는 회화라는 장르에 생각이 이르게 하고, 회화는 숙명처럼 그 세계를 열어 보인다”고요. 작품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회화는 이젤 앞에서의 오랜 진화와 혁명을 통해 완성된다고 봅니다. 그 때문에 미래에 제가 펼쳐 보일 작품의 성향을 짐작하기란 저 역시 쉽지 않아요. 앞으로 ‘작품에서 회화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객관화할 것인가’라는 큰 물음 앞에서, 화면에 자리하는 형상과 팔레트 위의 색 그리고 캔버스와 붓을 통해 열리리라 기대되는 새로움 안에서 제가 정의하는 현대 회화를 선보일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간소화될 수도 있고, 내용적으로는 간접적 표현 요소를 추가하면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적 난해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샌정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와 영국 첼시 칼리지 아트 앤 디자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다수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2000년 독일의 다니엘-헨리 칸바일러 하우스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 개인전, 국제갤러리 개인전을 개최하고 리버풀 비엔날레 국제 도시관 단체전, 아트선재센터 단체전 등에 참여했다. 올해 쾰른에 위치한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9년 독일 하겐의 오스트하우스 뮤지엄 개인전, 2020년 서울 OCI미술관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류정화(전시 기획자)   사진 제공 샌정, 초이앤라거 갤러리 쾰른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