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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CITY NOW

베를린이 비싸서 못살겠다는 이들의 대안

  • 2018-11-27

베를린에서 차로 2시간. 버려진 방직공장을 통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라이프치히의 슈피너라이.

갤러리로 사용하는 슈피너라이의 12번 건물.

최근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성장한 베를린은 그 화려한 겉모습 너머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자본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전히 런던이나 뉴욕, 파리보다는 저렴하게 예술 생산과 소비 활동이 가능하지만, 이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와 예술계 종사자에게 급격히 자본화되어가는 도시 모습은 먼발치에서 마주한 풍경이 아니라, 눈앞에 직면한 생존 문제다. 도시 내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물리적 한계점을 맞이한 시점에 이들은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도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라이프치히는 자본의 어두운 그늘이 아직 드리우지 않은, 그렇기에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품은 베를린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작센주의 대표 도시로 꼽히는 라이프치히는 중부 유럽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중세부터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은 바흐와 멘델스존, 바그너 같은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하고,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피폐해졌고, 이후 맞이한 냉전 시대에 동독의 국가 중심 정책 실패와 한계로 그 오랜 명성은 빛이 바랬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는 라이프치히 출신 예술가들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히 라이프치히 미술대학(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을 중심으로 한 회화 화파와 그들의 화풍에서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라이프치히의 회화는 독일 통일을 기점으로 이전 세대인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er Schule)와 새로운 물결의 영향을 받은 신라이프치히 화파(Neue Leipziger Schule)로 구분된다. 네오 라우흐(Neo Rauch), 팀 아이텔(Tim Eitel), 틸로 바움게르텔(Tilo Baumgartel)을 선두로 한 신라이프치히 화파는 통일 후 혼란하고 불안정한 미래상을 특유의 색채와 우울하지만 낭만적인 감성으로 그려내 세계 미술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인 라이프치히 또한 베를린을 이을 차세대 예술 도시로 거듭나 지난 세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중부 유럽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여 년 전 건물을 그대로 쓰는 슈피너라이 내·외부.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라이프치히의 예술을 이끌어가는 핵심축은 크게 두 곳이다. 라이프치히 미술대학(HGB Leipzig)과 문화 예술 복합 단지 슈피너라이(Spinnerlei). 미술대학에서 차세대 주자들과 그들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면, 슈피너라이에서는 현재진행형인 라이프치히의 예술 현장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도심의 서쪽 외곽에 있는 슈피너라이는 1884년부터 130여 년 동안 면 방직공장(Leipziger Baumwollspinnerei)이었다. 전체 부지 약 10만m2에 24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때 많게는 4000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이곳에서 생활하며 일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통일 이후 방직 산업이 급속히 쇠퇴하며 공장은 문을 닫았다. 거대한 방직 기계가 끊임없이 돌아가던 공간은 산업적 가치를 잃어버렸고 폐허로 전락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2001년 한 민간사업가와 시·정부의 협력으로 슈피너라이는 문화 예술 복합 단지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던 예술가들이 비어 있는 건물에 들어와 개인 작업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라이프치히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 네오 라우흐도 이곳에 개인 작업실을 차린 초창기 멤버 중 한 명. 더불어 그가 전속 작가로 속한 갤러리 아이겐+아트(Galerie Eigen +Art)도 2005년 슈피너라이로 터를 옮겼다. 덕분에 버려질 위기에 처한 옛 방직공장은 라이프치히 회화가 독일 회화사의 중요한 화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한편 세계적으로 라이프치히 화파가 주목받으면서 자연스레 수많은 예술 애호가가 이 도시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슈피너라이는 이들 사이에서 금세 입소문을 타며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예술 공간이 되었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불러들였다. 현재 다양한 국적의 작가 100여 명이 이곳에 터를 잡고 활동 중이다.






공장 부지 한가운데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옛 기찻길이 남아 있다.

또 11개에 이르는 상업 갤러리가 이들과 함께 상생하며 슈피너라이의 상업적 가능성을 직접 증명한다. 작가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함께 작품 제작과 설치에 필요한 재료를 쉽게 조달하고 가공할 수 있는 화방과 공방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그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영화 제작사, 무용 및 연극 단체, 공연장 그리고 IT 스타트업까지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결합과 새로운 기술력을 더한 예술의 변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모습.
슈피너라이에는 상업 공간과 작업실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전시 공간 할레 14(Halle 14)와 베르크샤우(Werkschau)가 있다. 할레 14는 전시와 행사를 기획하는 동시에 슈피너라이에 입주한 작가들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로 누구나 할레 14의 중앙 홀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에서 관련 전시 도록과 작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고. 한편 할레 12(Halle 12)로 분류되는 베르크샤우에선 정기적으로 외부 기획 전시도 선보인다. 최근에는 < Oriental Peach Valley >전을 통해 베이징 798 예술특구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오늘날 중국 현대미술의 위상과 동서양 교류의 예술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내부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예술 활동에 필수적인 새로운 자극과 영감 그리고 교류의 장을 끊임없이 제공하고자 하는 모습은 슈피너라이와 이를 지원하는 라이프치히시 당국이 예술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존중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버려진 건물이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사례는 이미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대부분은 임대료 상승을 피하지 못해 기존의 정체성과 특성이 무너지면서 문을 닫거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됐다. 그렇기에 혹시나 슈피너라이도 앞선 사례처럼 그 쓰임새와 정체성이 변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그러나 사적 자본이 무자비하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시와 정부 당국의 적절한 규제와 지속적 공적 자금 투입이 뒷받침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예술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와 태도를 유지한다면 아직 70%밖에 개발되지 못한 슈피너라이는 지금보다 몇 단계 더 성장해 이상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사진 이정훈(베를린 자유대학교 동양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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