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로운 태국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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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9

호사로운 태국

올 한 해도 숨 가쁘게 달린 나를 위해 방콕과 푸껫으로 떠났다. 오롯이 휴식을 위해 그곳에서 보낸 시간.

페닌슐라 방콕의 수영장.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여행에 대한 이상한 강박이 있다. ‘나의 여행에 휴식은 없다’가 그것. 평소 생활에 여유가 없어서일까? 매번 ‘기왕 떠나는 김에 많이 보고 오자’라는 일념으로 미술관, 카페, 편집숍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누비고 다녔다. 하루에 3만 보를 채우고 여유를 느끼지 못한 채 호텔 침대에 쓰러지곤 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은 매우 낯설었다. 편도 5시간 40분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나라, 같은 아시아지만 생김새와 문화가 사뭇 다른 나라, 관광지보단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한 나라. 나의 기존 여행 방식과 결이 맞지 않아 어색했고, 그 기분으로 페닌슐라 방콕(The Peninsula Bangkok)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호텔 스태프가 환한 미소와 함께 꽃 장신구를 건네주었다. “비행으로 피로가 쌓인 고객을 위해 숙면에 좋은 플라워 핸드 가렛을 직원들이 손수 만들어요.” 어디서나 쉽게 꽃을 볼 수 있는 태국이지만 정성이 깃든 플라워 핸드 가렛은 태국과 나 사이에 있던 어색함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전 객실이 하버 뷰인 페닌슐라 방콕. 객실 문을 열자 짜오프라야강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탁 트인 전망에 빠져 있던 것도 잠시, 노크와 함께 담당 스태프가 들어와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그제야 ‘Dear, Ms Lee’로 시작하는 웰컴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자필로 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에 담긴 섬세한 배려에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태국 여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1 태국 왕실 일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사네 잔. 로열 타이 믹스드 애피타이저는 작은 크기로 한 입에 쏙 넣기 좋다.
2 평화로운 페닌슐라 방콕은 분주한 도심 속 휴양지 같다.
3 어느 각도에서나 짜오프라야강이 보이는 페닌슐라 방콕의 ‘디럭스 스위트룸’. 늦은 밤, 소파에 앉아 야경을 감상하기 좋다.

‘미식의 도시’라 불리는 방콕은 얼마 전 <2018 미슐랭 가이드 방콕>을 출간했다. 그중 태국 왕족도 감동했다는 ‘사네 잔(Saneh Jaan)’에서 첫 저녁을 먹었다. 고대 태국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사네 잔은 양질의 음식을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어 태국 고위 인사들이 애용하는 레스토랑이다. 태국 음식은 향이 강하다는 선입견이 무색할 만큼 이방인의 입에도 거부감 없이 잘 맞는다. 본토가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 즐비한 가운데 단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로열 타이 믹스드 애피타이저(Royal Thai Mixed Appetizers)’다. 흔히 “음식은 눈으로 한 번, 입으로 두 번 먹는다”고 하던데 태국 전통핑거 푸드를 화려한 3단 트레이에 산수화처럼 플레이팅한 이 메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만큼 외관이 화려했기 때문. 푸짐한 식사도 즐겼겠다, 부른 배를 다독이며 호텔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눕자 머리맡에 둔 플라워 핸드 가렛의 향기가 풍겨왔다. 이렇게 근심 걱정 없는 밤을 보낸 게 얼마 만인지 생각하다 이내 포근한 침구에 싸여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조식 뷔페에서 신선한 과일을 양껏 먹은 뒤 마사지를 받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사지, 태국 여행의 꽃 아닌가! 그만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데, 고심 끝에 택한 건 태국의 스파 브랜드 디바나(divana)가 운영하는 ‘디 웰니스 메드 스파(Dii Wellness Med Spa)’. 메디컬 컨셉 스파로 태국의 젊은 상류층이 주로 찾는다. 이날 받은 ‘아로마틱 테라피(Aromatic Therapy)’는 족욕과 전신 마사지로 구성돼 있다. 장미꽃잎을 띄운 물에 발을 담그자 테라피스트가 고운 소금으로 부드럽게 스크럽을 해주었다. 연이은 마사지는 좋다 못해 황홀함 그 자체.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정확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게다가 마사지에 사용한 ‘시그너처’는 오직 디 웰니스 메드 스파를 위해 특별히 배합한 오일이다. 왠지 더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섬이 많은 태국, 그중에서도 푸껫에는 초호화 리조트가 즐비하다. 방콕에서 휴식의 묘미를 맛본 터라 푸껫에선 더 격조 높은 휴가를 보내고자 리조트 두 곳에 묵었다. 먼저, 푸껫의 3대 리조트 중 하나로 꼽히는 ‘스리판와(Sri Panwa Phuket Luxury Pool Villa Hotel)’. 3개의 레스토랑, 루프톱 바, 수영장, 스파, 테니스장 등을 갖춘 하나의 소왕국 같은 이곳의 루프톱 바 ‘바바(Baba)’는 특히 자랑거리다. 네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디서나 아름다운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다. 바바는 저녁 5시부터 8시까지만 운영한다. 푸껫에서 제일가는 루프톱 바를 원한다면 2~3개월 전 예약은 필수다(오른쪽 끝자리가 가장 인기 있다니 참고하자). 바바를 마지막으로 시설을 둘러본 뒤, 짐도 풀지 않고 곧장 프라이빗 수영장에 입수했다. 올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견딘 보상일까? 태국의 날씨는 그 명성만큼 덥지 않았다. 이 날씨에 서울에 있었다면 분명 짜증이 났을 테지만 마음이 여유로웠기에 덥다기보단 간지러운 산들바람 덕에 되레 시원했다. 몸을 기분 좋게 감싸는 따스한 물과 서늘한 바람, ‘왜 이제까지 태국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4, 5 푸껫의 3대 리조트로 불리는 스리판와.
6 푸껫의 맑은 바다를 만끽하고 싶다면 요트 투어를 신청하자. 운이 좋으면 돌고래도 만날 수 있다.

태국 부호의 제일가는 취미는 요트다. 그들의 호사스러운 여가 생활이 궁금하던 차, 푸껫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프라이빗 요트 투어가 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필요한 개인 준비물은 오직 수영복뿐. 음식과 스노클링 장비는 모두 요트에 구비돼 있다. 요트가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다의 색은 에메랄드에서 코발트블루로 변했고, 바다는 물고기의 날렵한 움직임이 또렷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갑판에 누워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기던 중 한 스태프가 “Come here!”라고 외쳤다. 스노클링 준비가 끝났나 싶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돌고래가 떼 지어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그 광경이 참으로 신기했다. 이어진 스노클링도 마찬가지. 물고기와 함께 바다를 유영하며 그들의 생태계를 엿보는 스노클링은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반나절 남짓의 짧은 요트 투어가 아쉽다면, 요트 컨셉으로 지은 ‘카타 록스(Kata Rocks)’에서 그 여운을 이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오픈해 신식 시설을 갖춘 것도 매력적이지만 이 리조트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될 스폿은 바로 인피니티 풀. 선베드까지 얄팍하게 차오른 물, 수영장과 바다의 경계를 없앤 듯한 설계는 당장이라도 퐁당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사실 카타 록스는 푸껫에서도 약간 외진 지역에 있다. 리조트에 들어서면서 ‘밖으로 나가기 힘들겠다’며 걱정했지만, 수영장에 들어가고 난 뒤 ‘나갈 필요 없겠는데?’로 마음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달아 물놀이를 한 탓일까. 먹고 쉬기를 반복했음에도 근육통이 오기 시작해 다시금 마사지가 떠올랐다. 이번에 찾은 곳은 태국의 왕실 스파 ‘오아시스 스파(Oasis Spa)’로 2시간에 걸쳐 전신을 훑는 ‘킹 오브 아시아(King of Asia)’를 받았다. 발에서 시작해 하체, 척추 그리고 양손 끝에 테라피스트의 손길이 닿는다. 태국의 여러 허브를 담은 ‘허벌 컴프레서’로 배를 지그시 눌러주는데, 그 순간 신체 안쪽까지 따스함이 퍼진다.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마사지 숍답게 사용하는 아로마 오일의 퀄리티도 남다르다. 마사지가 끝난 후에도 몸에 배어 있는 오일 향이 심신의 릴랙싱을 돕는다니, 샤워는 미뤄두고 그 향과 분위기를 룸으로 가져가길 권한다.




7 푸껫에 5개의 지점이 있는 오아시스 스파. 그중 에디터가 방문한 곳은 ‘터콰이즈 코브 스파(Turquoise Cove Spa)’다.
8 바다만큼 맑은 물이 가득한 카타 록스의 인피티니 풀. 공용 수영장임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9 푸껫의 숨은 핫 플레이스, 짐플렉스에 방문하면 독특한 샷을 마실 수 있다. 샷과 색소를 섞었기에 끝맛은 달달하다.

우연히도 푸껫의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토요일 밤을 그냥 지나치기 아쉽네요”라고 하자 “올드타운에 있는 짐플렉스(Z1mplex Mixology Laboratory)에 가보세요. 요즘 가장 핫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맨해튼 한복판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네온사인과 깔끔한 타일로 인테리어를 한 이 바는 오로지 ‘샷’만 취급한다. 평범한 보드카나 위스키가 아니다. 바텐더가 스포이트로 색소를 방울방울 떨어트려 술 위에 컬러층을 만들어낸 독특한 샷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유럽인과 태국 힙스터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짐플렉스를 선점하고 싶다면 피크 시간인 오후 7시 방문은 피하자. 인기가 워낙 높아 이미 만석이다.
고백하자면 태국에 가기 전, “태국 어때?”라는 질문을 숱하게 하고 다녔다. 태국을 여행한 대부분의 지인이 ‘Must visit place’로 꼽은 나라. 이제 나도 이 호의 넘치는 리뷰에 동참하려 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호사스러운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와보니 알겠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태국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걸. 보면서도 보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태국에 있음에도 태국은 오고 싶은 나라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취재 협조 태국정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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