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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FEATURE

식물도 가족이 되나요?

  • 2018-11-28

집 안에서 기르는 동물한테 ‘애완’이란 말 대신 ‘반려’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요샌 식물로까지 전이되고 있다.

1, 2 일본 드라마 <최고의 이혼>배우들과 아내보다 식물에 혼을 쏟는 남자 주인공 하마사키.
3 영화 역사상 반려식물이 가장 존재감 있게 등장한 <레옹>.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해 방영한 일본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남자 주인공 하마사키는 아내와 데이트 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 인물이다. 집에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직장에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어색하며, 동물원을 다니며 귀여운 동물 사진을 모으고 그것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취미인 전형적인 초식남이다.
그는 식물을 기르는 데도 열성적이다. 아내에게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정서적 안정과 조용한 힐링의 시간을 식물에서 얻기 때문이다. 그는 극 중 손가락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식물에 혼을 쏟는다. 그에게 식물이란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감동이자 공명이며, 심신의 온전한 휴식, 그리고 강 같은 평화다(할렐루야). 하지만 하마사키가 애지중지하는 식물은 극 후반 아내 유카에 의해 거의 박살이 난다. 아내보다 식물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일순간 무릎을 탁 쳤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한 인간에게 가정에서의 괴로운 시간을 잊게 하고, 직장에서 생긴 스트레스까지 해소해주는 마법의 힘을 식물이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처음 본 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고, 그때부터 줄곧 집 안에서 식물을 키웠다. 처음엔 집에 두면 그냥 보기에 좋을 것 같아서, 오직 나를 위한 이유로 데려왔다. 먼저 조경 덕후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며 선이 예쁜 찔레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잎은 형편없지만 가지의 조형성 하나는 끝내주는 자귀나무를 들여놓았다. ‘야자’라는 이름과 촐싹거리는 잎이 귀여워 홍콩야자를 데려온 적도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작은 바위 밑에서 이끼도 키웠다. 지금은 길이가 20cm나 되는 괴마옥을 협탁 위에 두고 있다. 아, 내가 계속 식물을 키우는 이유? 그것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아직 미혼이라 부부싸움으로 괴로울 일은 없지만, 이따금 그것의 얼굴과 표정이 주는 위로가 삶에서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반려동물’과도 비슷하다. 인간과 반려동물이 서로에게 위로 받듯이, 식물도 서로의 관심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한다.
이런 이유로 요샌 ‘반려식물’이란 말도 자주 들린다. 식물에게 물을 주며 헛헛하거나 건조한 도시 생활을 견디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집 안에서 기르는 동물한테 ‘애완’이란 말 대신 ‘반려’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젠 이것이 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유대에 대한 공감대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다. 화단에 식물을 키우거나 난을 가꾸는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나 예전부터 쉽게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식물을 키우는 행위보다 ‘반려식물’이라 부를 만큼 식물의 순기능에 더욱 주목하는 사람들의 심리. 식물에게나마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추천하는 공기 정화 식물 1위인 아레카야자.
5 1년째 에디터의 집에서 자라고 있는 괴마옥.

요샌 살짝 시들해졌지만, 한때 선인장과 다육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긴 건조한 기후에 강해 대충 물만 줘도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이라니, 초보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척박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체내에 물을 품고 있다니, 뭔가 인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같지 않나. “그러니까 너도 살아” 뭐 이런 식의….
심지어 다육이는 증식 방법도 간단해 금세 식구를 늘릴 수 있다. 모양은 또 얼마나 다채롭나.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흠이라면 통풍이 안 되고 햇볕이 없으면 잘 못 살고, 겨울에 너무 춥게 내버려두면 얼어 죽기 쉽다는 것. 하지만 이 정도 ‘최소한’의 관리도 해주지 않는다면 식물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이란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공기 정화 식물만큼 도시 생활자에게 유익한 식물도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밀폐된 우주선 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견해 지구인 모두에게 추천하는 50여 종의 식물. 흔히 ‘황야자’라고도 불리는 아레카야자가 그 1위인데, 이 호리호리하게 울창한 나무는 실내가 건조하면 수분을 공기 속에 내뿜는 습도 조절 능력이 뛰어나 ‘천연 가습기’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니는 화분 속 식물 아글라오네마는 NASA가 추천하는 공기 정화 식물 38위다. 총질을 해대는 생사의 순간에도 화분 하나를 꼭 끼고 있던 유랑자 레옹은 연인이던 마틸다에게 이 화분을 남기고 죽는다. 영화 역사상 존재감이 가장 큰 식물이라, 예전엔 이걸 구하기가 제법 어려웠지만 지금은 쉽게 살 수 있다. 50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몬스테라라는 열대성 관엽식물도 인기 있다. 잎맥 사이에 뚫린 타원형 구멍 때문에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지난 몇 년 식물이 인테리어 오브제로 부상한 이후 셀프 인테리어족에게 유독 인기 있는 식물이 바로 이 몬스테라다. 아예 마음의 병을 앓는 도시인에게 약 대신 ‘식물을 처방’해준다는 컨셉으로 창업한 브랜드도 있다. 바로 ‘느린 약국’이라는 뜻의 ‘슬로우파마씨’. 이들은 비커나 유리병에 식물을 기르는 풍토를 조성한 전력이 있다. 처음엔 SNS를 통해 식물을 판매하다 지금은 온라인 몰을 열어 독특한 식물 아이템을 판매한다. 이들처럼 식물을 창의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참 멋진 일 아닌가.
물론 창의적이지 않다고 주저할 것 없다. 식물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어, 목이 마른 것 같네. 금방 물 줄게”, “우와, 금세 키가 컸구나, 조만간 큰 집으로 옮겨줄게” 같은 마음. 이런 마음의 힘으로 조금씩 수고를 늘려가며 발견하는 위로와 행복이 바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유가 아닐까. 요즘 우리 사회도 식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동물이 애완의 대상에서 ‘반려’의 존재로 승격된 것처럼, 식물도 관상의 대상에서 반려의 존재로 그 지위와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지금 당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식물은 무엇인가.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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