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DECEMBER. 2018 FEATURE

기왕 먹는 거, 맛있고! 즐겁게!

  • 2018-11-23

이용재는 스스로 미식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음식을 섬세히 표현하는 데 일가견 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평론가라는 직업이 ‘까칠함’의 대명사라 해도, 영화 <라따뚜이>의 안톤 이고만큼 냉철한 캐릭터는 없을 것이다. 이용재를 만나기 전 줄곧 안톤 이고가 떠올랐다. <한식의 품격>에서 “요즘 한식에는 품격이 없다”라며 비장한 화두를 던진 남자. 그것도 미슐랭의 한국 상륙으로 한식 붐이 일고 있을 때 말이다. 지난여름 출간한 <냉면의 품격>은 또 어떤가.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수십 년 전통의 평양냉면 노포들조차 그의 쓰고 매운 비평을 피하지 못했다. 셰프 박찬일은 이런 이용재를 두고 ‘당대 미식계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자 아웃사이더’라 칭했으니, 그 앞에 음식을 들고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마주 앉았다.
“본의 아니게 논쟁적인 인물이 됐어요.” 이용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미식 종주국인 프랑스에서는 매주 푸드 크리틱이 나와요. 그들에게 음식 비평은 아주 평범한 일이죠. 반면 한국은 음식을 논하는 문화가 아직 낯설어요.”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건축 비평을 전공한 덕분인지, 그는 가혹한 공개 크리틱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래서 일까? 음식으로 비평 분야를 옮긴 지 곧 10년이 되는데도 여전히 ‘모두 까기’ 아니냐는 누명을 쓰고 있다. 한데 직접 읽어보니 그의 저서는 소문과 달리 비판만 가득한 문제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방대한 음식 이론을 자신의 경험에 살뜰히 녹여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식 입문서’라는 평도 있다. 그는 요즘 좋아하는 음식을 깊게 파고드는 ‘먹학(먹거리 학습)’ 트렌드와 결을 같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음식을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곤 하는데, 사실 어려운 질문이에요. 이미 축적된 음식 이론이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나’와 음식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와인 공부라고 와인만, 커피 공부라고 커피만 마시는 식으로 정해진 답을 학습할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앞서 말한 <한식의 품격>은 촘촘한 논리로 우리 음식의 문제점을 짚어나가는 책이다. 이 기회에 한식의 경쟁력에 대한 그의 진솔한 생각을 들어봤다. “먼저 경쟁력의 목표점을 규정해야 합니다. 지금 한식의 세계화란 서양에서 입지를 굳히는 게 될 텐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해요. 예를 들어, 김치는 엄마의 손맛이나 조상의 지혜보다 젖산 발효의 상큼한 신맛과 배추의 질감, 고기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어필하는 게 낫죠.” 이어 부드럽고 푸근한 순두부, 건강과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나물을 경쟁력 있는 메뉴로 꼽았다. 단, 순두부는 너무 뜨겁지 않게, 나물은 올리브유로 무치는 방향으로 말이다. 굴지의 외식 메뉴이자 이미 세계시장에 진출한 치킨은 한식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모든 문화권에 튀김 음식이 발달했지만 치킨은 고추장, 케첩과 섞어 양념을 만들잖아요. 맛도 맛이지만 참 좋은 아이디어예요.” 연이어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려면 한식을 하나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퍼뜨릴 필요가 있어요. 저는 외국인이 서울에 한식당을 차려 망하지 않는 날이야말로 한식의 세계화가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섬세한 시각이 묻어나는 이용재. 이쯤 되면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놓쳐선 안 될 탁월한 지략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섬세한 시각이 미식의 기본 조건이냐 물었지만 곧바로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매번 음식을 분석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먹으면 전혀 즐겁지 않죠. 사실 저도 그렇게 잘 안 해요. 오히려 자연스럽게 먹을 때 떠오르는 것이 많아요. 음식을 즐기는 사람, 즉 향유자는 ‘즐기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반 향유자들이 음식을 분석하며 먹지 않아도 되게끔 저 같은 사람들이 일을 해야죠.(웃음)”




이용재가 쓴 <냉면의 품격>과 <미식대담>. 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음식도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용재는 직접 책을 쓰기도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바이블로 통하는 <실버 스푼>,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배지니(Julian Baggini)의 <철학이 있는 식탁> 등 여러 권을 국문으로 옮겼다. 책을 쓰는 것도 바쁠 텐데, 번역에도 열심인 이유는 따로 있지 않다. “앞으로 제 브랜드 파워를 높여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괜찮은 책을 배급하고 싶어요. 그 책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이 음식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면 좋겠죠.”
솔깃한 팁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가장 적은 비용으로 미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버터’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에시레(E´chir´e)’, ‘이즈니(Isigny)’, ‘프레지당(Pre ´sident)’ 그리고 독일, 미국, 영국, 동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버터를 수입하고 있어요. 버터 사기 좋은 계절이 겨울이거든요. 지방은 언제나 만족감을 주죠.(웃음) 게다가 버터는 여러 가지 매력을 지녔어요. 무염과 가염은 또 다르고 어떤 탄수화물과도 잘 어울리죠. 빵만 있어도 좋고, 심지어 ‘간장계란비빔밥’에 넣어도 좋잖아요? 내가 어떤 음식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것을 찾을 때, 버터를 한 숟갈 푹 떠서 밥에 비벼 먹기만 해도 ‘아, 이건 좋은데?’ 하는 반응이 올 거예요.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미식의 출발점이라 봅니다.” 이렇게 간단한 미식이라니, 예상보다 훨씬 쉽지 않은가?
호기심이 많은 이용재는 음식은 물론 악기와 게임, 심지어 ‘치간 칫솔’ 마니아다.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에는 각각 이유와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면밀하면서도 풍성했던 그의 달변을 모두 싣지 못해 아쉬울 따름. 대신 저서를 통해 이용재를 더 깊이 만나보길 권한다. ‘품격 시리즈’는 앞으로도 4~5권 더 집필할 계획이며, <외식의 품격>은 5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온다. 15년째 운영하는 블로그 (www.bluexmas.com)에도 그의 전방위 생활 경험이 녹아 있다. 특히 베이킹에 대한 기록에선 그만의 ‘라따뚜이’ 한 접시처럼 소소하고 정다운 음식 향유법을 엿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둘러봐도 좋겠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황은비(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