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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FEATURE

뮤지엄 운명이 내 손안에

  • 2018-11-22

1센트 동전부터 천문학적인 금액까지, 뮤지엄 운영에 힘을 보태는 개인 도네이션의 세계 속으로.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수년 전 런던의 한 뮤지엄에서 “당신의 도네이션 덕분에 이 작품을 구매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붙어 있는 작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뮤지엄이 무료 입장 제도를 운영하는 런던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뮤지엄을 들락거리면서도 평소엔 기부금 박스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동전과 지폐로 가득한 박스 안의 돈을 모아 고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는 ‘솔깃한’ 안내판을 본 이후로는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모금함에 꼭 넣곤 했다. 그동안 슈퍼리치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받아 전시장을 넓히거나 컬렉션을 꾸린 사례는 많이 접했지만, 고작 어린 학생이던 에디터가 미술관 컬렉션에 도움을 주고, 그 작품을 뮤지엄에서 실제로 볼 수 있다는 데에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꼈다.
그런가 하면 여기, “우리는 당신 같은 친구의 관대한 기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뮤지엄이 있다. 뉴올리언스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뮤지엄(The National WWII Museum)은 연방 기금을 받지 못해 기부금과 입회금에 의존해 운영 비용을 충당한다. 그만큼 체계적으로 다양한 기부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그들의 가족과 친구 등이 기부한 작은 유니폼 버튼부터 대형 군용 항공기까지 크고 작은 유물을 가증받아 컬렉션을 보충한다. 특히 개인적 편지나 일기, 사진 자료는 뮤지엄 컬렉션에 큰 힘이 된다. 개인 물품에는 저마다 추억이 어려 있어 기증을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원본이 아닌 복사본을 기증받기도 한다. 또한 홈페이지에서 ‘오늘 기부’라는 버튼을 한 번만 클릭하면 바다 건너에 사는 사람도 카드 결제를 통해 소액부터 거액까지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다. 오래된 자동차나 트럭, SUV 같은 차량을 기증할 수 있는 뮤지엄만의 독특한 기부 프로그램을 마련, 이 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엄에 자동차를 기부하면 추후 차량을 구매할 때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뮤지엄이 대개 로비나 티켓 부스 등 눈에 띄는 곳에 기부금 박스를 두고 웹사이트에서는 쉽게 기부링크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해도 개인의 기부를 장려하고 동기를 부여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뮤지엄은 다양한 형태로 기부금 제도를 운영하고, 혜택을 제공하고, 기부금 사용 내역을 대중에게 공개해 그안에 ‘개인’을 포함하는 형태로 공공과 거리감을 좁혀나가면서 기부금 사례를 늘려나간다. 수십억 원을 기부한 갑부의 이름을 딴 뮤지엄 안에 대중이 작게나마 힘을 보탠 작품이나 오브제가 굳건히 자리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크든 작든 한 개인의 기부가 한데 모여 같이 뮤지엄을 만들고, 문화 예술을 꽃피우는 것이다.




1 지난 11월 첼시 FC 오너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런던 임피리얼 전쟁 박물관에 많은 액수의 기부금을 냈다.
2 기부금과 입회금으로 운영 비용을 충당하는 뉴올리언스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뮤지엄.

한편 뉴욕의 뮤지엄을 찾는 관광객이나 예술 애호가 라면 매주 혹은 매달 이뤄지는 도네이션 데이 스케줄을 꿰고 있을 것이다. 뮤지엄마다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를 정해놓고, 그 시간에 찾은 방문객은 정해진 입장료가 아니라 원하는 금액만 내고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이 최소 금액을 지정해두기도 하지만, 1달러만 지불하고 입장이 가능한 곳도 많다. 특별전을 제외하곤 항상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런던과 달리 뉴욕의 뮤지엄은 입장료가 비싸 도네이션 데이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뮤지엄 주변 도로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런 뉴욕의 여러 도네이션 데이는 뮤지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처음엔 뮤지엄이나 기업이 개인의 문화생활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뉴욕 뮤지엄의 도네이션 데이를 찾아다니다 보면 오히려 평소보다 적은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도네이션’이라는 단어 하나로 마치 미술관에 기부금을 내고 운영에 힘을 보태는 듯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는 것. 그래서 오히려 기부금을 내고 입장하는 도네이션 데이에 더 많은 관람객이 모이고 더 많은 입장 수익을 올리는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한다.


3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관람객들. 2016년 드림웍스의 설립자 데이비드 게펜이 MoMA에 기부한 금액은 1000억 원에 이른다.

이와는 반대로 기부 입장 제도를 축소하고 뉴욕 시민을 제외한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례도 있다. 그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하루를 도네이션 데이로 지정하는 여느 뮤지엄과 달리 상시 기부 입장 제도를 운영했다. 대니얼 H.와이즈 회장이 “전 세계 대형 뮤지엄 중 유일하게 전적으로 기부에 의존하며 대부분의 운영 자금을 정부의 지원 없이 해결했다”고 밝힌 것처럼, 워낙 기부금 의존도가 높아 결과적으로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개인 도네이션이 뮤지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내는 결과도 놀랍지만, 그동안 뮤지엄에 영향을 미친 ‘큰손’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월, 억만장자 케네스 그리핀이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노튼 뮤지엄에 20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기부했는데, 당시 77년 동안 웨스트팜비치 지역 뮤지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금 도네이션이었다고. 11월엔 첼시 FC 오너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런던 임피리얼 전쟁 박물관(Imperial War Museum)에 기부금을 냈다. 액수는 비밀에 부쳤지만, 2021년 오픈을 앞두고 있는 ‘뉴 홀로코스트 갤러리(New Holocaust Galleries)’에 쓰일 예정이다.
개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천문학적 액수를 기부한 사례도 있다. 2016년, 드림웍스의 설립자 데이비드 게펜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기부한 금액은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다. 그 이듬해엔 억만장자 컬렉터이자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븐 코언과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가 MoMA에 5000만 달러(약 500억 원)를 기부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도 레너드 블러바트닉이라는 부호의 기부금이 전체 운영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 한 명이 기부금 박스에 넣은 작은 동전부터 세계경제를 이끄는 부호들의 개별 기부금까지, 이렇게 한 개인의 도네이션은 다양한 뮤지엄의 문화유산을 지켜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지원하는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개인 기부가 활발한 실정이지만 지금도 전 세계의 많은 문화 예술 기관은 적극적으로 개인 후원자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기업이나 국가적 차원의 기부 사례 외에 개인 기부자의 작지만 큰 힘에 주목해야 할 때다. 당신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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