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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8 LIFESTYLE

FAMILY AFFAIRS

  • 2018-10-02

와인 산업에서 가족 경영은 ‘모범적’이며 ‘바람직’한 사례다. 가족의 와인이 세계인을 위한 와인으로. 한 가족의 역사와 전통이 다시 한 세대를 넘어서길 바라는 업계의 바람을 전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와인의 사회적 지위는 몹시 열악했다. 와인분야의 경력 역시 전문성이나 수입 면에서 한두 단계 낮은 취급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WSET 국제와인소믈리에 자격증을 발행하는 데 관여하는 필자는 요즘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느낀다. 최근 고액연봉을 받는 직업을 버리고 와인업계에서 꿈을 좇는 이들을 목격하는 일이 상당히 많아진 것. 더불어 오늘날 와인이 선풍적 유행을 주도하며 생긴 부수적 효과 중 가장 흐뭇한 점은 와인 생산자의 자녀가 기꺼이 부모의 발자취를 따를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1 600년 넘게 가족 경영을 고수해온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 명가, 안티노리의 26대 손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과 그의 세 딸로 최근 장녀 알비에라가 신임 오너로 취임했다.
2 나파밸리의 톱 컬트 와이너리 셰이퍼 빈야드는 아버지 존과 아들 더그의 합작품이다. 2003년 로버트 파커에게 세계의 가장 위대한 와이너리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3 피오 체사레는 1881년 설립 이래 피에몬테 와인의 선구자라 불리는 가족 경영 생산자다. 윗줄 가운데가 현재 5대 오너인 보파 피오, 아랫줄 가운데가 4대 오너였던 그의 어머니 로지 피오다.
4 명실상부한 알자스 와인 아이콘, 위겔. 현재 위겔은 12대와 13대가 함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자 클럽 ‘Primum Familiae Vini’의 멤버로 활약 중이다.
5 세계적인 금융 재벌 가문인 로스차일드. 샤토 무통 로트칠드의 명성과 품질을 일군 필립 드 로트칠드 남작의 뒤를 이어 그의 무남독녀 필리핀 남작부인과 두 아들이 가문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 와인 산업은 가족 경영을 특징으로 한다. 소수의 거대 기업이 점점 몸집을 늘려가며 상당히 많은 분야의 상거래를 독점하고 있지만 (맥주와 위스키 쪽만 봐도 그러하다), 와인은 용케 그런 기업 합병에 저항해왔다. 다만 오래전부터 효율성을 따져온 호주는 열외로 치겠다. 펜폴즈가 대표하는 트레저리 와인 이스테이트와 하디스에 중점을 둔 애컬레이드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형국으로, 가족 중심의 호주 와인 생산자는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마케팅을 위해서도 남다른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규제가 과도한 미국도 가장 큰 유통업체인 서던 글레이저가 시장을 독점해 가족 소유의 소규모 와인 생산자는 소매점의 진열대를 차지하기조차 어렵다는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주요 고객의 주소록과 인터넷 쇼핑을 활용한 직접 판매 방식을 독려했고, 역설적으로 훨씬 큰 이윤을 가져다주었지만 특정 지역의 경우 배송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와인 생산과 판매에서 다국적 대기업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일반 상거래 분야와 달리 와인업계에서는 눈부신 가문의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유서 깊은 런던상인조합 소속으로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도 꿋꿋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디스틸러스사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대기업은 현재에 중점을 두는 반면 가족 기업은 장기적 미래를 생각한다’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토론회 참석자는 주로 위스키 분야 종사자였다. 발제자는 가족 경영 와인업체 베리 브로스 & 러드(Berry Bros & Rudd)의 회장 리지 러드, 이에 맞서 과거 IDV에서 상호를 바꾼 다국적 기업 디아지오의 위스키 파트 책임자 콜린 고든이 반대 의견을 내며 토론을 이끌었다.
리지 회장은 일반 상장 기업 CEO의 재임 기간이 평균 4~6년인 반면 가족 기업은 평균 25~28년임을 언급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리지의 아버지 존 러드는 베리사의 임원으로 72년이나 재직했지만, 무려 92세의 나이에도 계속 실무를 고집한다는 루머가 있으니. 하지만 오랜 재임 기간 동안 맺는 사적 관계는 나름 이득이 있다. 리지 회장은 베리사가 몇몇 부르고뉴 포도원과는 35년간이나 거래를 지속해왔다고 피력했다. 일반 기업에서 그런 신의를 유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콜린 고든은 대기업이 소규모 가족 경영 회사보다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변덕스러운 유행의 변화(가령 진이 갑자기 그토록 인기가 높아질 줄 누가 짐작이라도 했던가?)에 대처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기업은 지정학적으로도 광범위하게 분포해 지역적 위기상황 방어에 유연하며, 전반적으로 현금화 능력과 기술 개발 역량이 뛰어나다는 의견을 펼쳤다. 그는 근본적으로 IDV가 상장 기업의 일반적 태생 요건인 적대적 합병을 막고자 탄생했고, 1980년대에 전성기를 이끈 베일리스 아이리시 크림, 말리부, erm, 피아도르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토론회 직전에 실시한 투표 결과, 참석자 다수가 가족 기업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토론회 말미에 실시한 투표에서도 콜린 고든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주류 상거래 전문가인 재무 애널리스트 트리스탄 밴 스트렌의 재치 있는 지원사격에 힘입어 득표 차이가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같은 결과가 나왔다. 스트렌의 슬로건은 “주류업계의 풍경은 2세대 가업 구성원의 메마른 시신으로 어지럽혀졌다”였다. 이는 특히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품 기업 LVMH와 아르테미스 도멘(Arte´mis Domaines), 프랑스의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의 와인에 대한 관심이 코트도르 지역의 땅값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등시켰으니 가족 소유의 포도원을 팔라는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6 12세기 시토 수도회의 와인 저장고로 시작해 1808년 첫 포도를 수확한, 프랑스에서 여섯번째로 가장 오래된 샴페인하우스 드라피에. 드라피에의 6세대부터 8세대까지 함께한 가족사진과 이들이 가장 자신 있게 선보이는 드라피에 카르테 도르 브뤼(Carte d’Or Brut NV) 샴페인.
7 와인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신념을 담은 로트칠드 가문의 역작. 샤토 무통 로트칠드.
8 셰이퍼의 원 포인트 파이브 카베르네 소비뇽 2012. 스택스 립 지역의 전형성인 부드러운 타닌과 풍부한 과일 향을 지닌 와인.
9 모든 바롤로의 기준이 되는 와인. 네비올로의 품격이라 할 수 있는 피오 체사레의 바롤로.

프랑스의 상속법 덕분에 다수의 가족 구성원 소유로 포도원을 유지할 수 있고, 가족 중 실제로 한두 사람만 포도원에 거주하고 일하며 돌보는 경우라도 장기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풀리니-몽라셰 와인을 선보이는 도멘 르플레브의 경우 주주로 있는 친인척의 수가 수십 명에 달할 정도. 부르고뉴 와인의 영혼과 전통에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러한 드러나지 않은 동업자가 얼마 되지 않는 연간 수익 대신 거액의 판매 분담금에 혹할수도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인수·합병은 구조적으로 더욱 어려워진다. 지난 4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카바 코도르뉴 포도원이 미국 투자 펀드인 칼라일 그룹의 인수·합병을 거절했을 때 이 기업의 소유주가 216명에 달하는 친인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가족 기업을 팔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 무엇보다 승계가 중요해진다.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 명문가 뫼르소의 도멘 데 콩트 라퐁은 도미니크 라퐁의 뒤를 이을 경영자 결정을 앞두고 있다. 차세대 주자 5명이 지원했는데, 최선의 후보자 둘을 선택하기 위해 일련의 인재 선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필자는 와인 산업이 임직원을 계속 갈아치우는 기업보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방식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쪽이다. 이런 추세가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잰시스 로빈슨
영국 출신의 세계적 와인평론가. 주요 저서로는 8번째 에디션까지 출간한 이 있으며, 이외에도 칼럼 기고, 강연, 시음 행사 등 다양한 와인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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