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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SPECIAL

만날 수 없는 너

  • 2018-09-13

예술품, 사람의 눈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상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될까? 보존이냐 관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 보존을 위해 유리 보호막을 설치한 원각사지십층석탑.
2 클림트의 ‘키스’는 금박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 밖으로 이동할 수 없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은 국보 제2호 문화재다. 그러나 산성비, 조류 배설물로 손상을 입자 국가는 유리 보호막을 설치했다. 이는 석탑을 지키기에 충분하지만 작품 감상에 있어선 틀림없는 장애물이다. 문화재 관람과 보존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하는지 서술하시오.” 이는 에디터가 대학 시절 받은 시험 문제다. 당시에는 ‘작품은 향유를 통해 가치가 생기니 지금 볼 수 없다면 예술품으로서 의미를 잃는다’는 단순한 이유를 내세우며 ‘볼 권리가 먼저다’라는 답안을 자신 있게 제출했다. 점수도 나쁘지 않게 받은 터라 꽤 흡족하게 해당 학기를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격언이 딱 맞다. 논리가 없는 건 당연지사, 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니.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궁금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수한 역사적·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은 보존이 최우선이며 이를 위해 현재의 불편함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입장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한편으론 “우리도 후손인데 왜 그 대상에서 배제되는가”라는 관람객의 의견에도 공감이 간다. 사실 이는 원각사지십층석탑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재료 중에서도 손상 속도가 빠른 프레스코로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표면이 계속 떨어지는 탓에 극소수의 예약자만 관람할 수 있으며, 그의 다른 대표작 ‘모나리자’도 보존 문제로 1년 중 절반은 가품을 걸어둔다는 루머마저 도는 상황. 클림트의 ‘키스’도 금박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에서 반출이 불가하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는 관람 자체를 막았다. 보존을 위해 관람에 제한을 두는 작품이나 문화재가 곳곳에 널려 있기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손상은 걷잡을 수 없다는 보존 전문가들의 입장과 볼멘소리를 내는 관람객이 충돌하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여기서 누가 옳다고 확답을 하는 게 가능할까?




3 관람권과 보존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와 관련해 2014년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주인공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Cueva de Altamira)’. 기원전 3만5000년에 그린 그림은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스페인 정부는 세계인의 ‘볼 권리’를 위해 보존 처리 후 벽화를 전면 개방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많은 관람객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벽화가 손상된다는 우려를 끊임없이 제기했고, 결국 2002년 동굴은 전격 폐쇄됐다. 그러다 12년 후 스페인 정부가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관람객에게 다시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구 결과 관광객의 숨결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 훼손이니 다시 관람을 위해 개방하겠다는 게 그 이유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관람객 수를 일주일에 5명, 관람 시간은 37분으로 제한하고 지정된 복장을 준수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고고학자들은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공개하는 것은 문화유산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며 인류는 후손을 위해 벽화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주장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반된 두 입장. 현재 알타미라는 다시 폐쇄된 상태다.
현재 관람과 보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현실적 방안은 ‘관람료 인상’, ‘관람 인원 제한’ 그리고 ‘모사본 전시’다. 관람료 인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관람료를 책정해 문화재 진입 장벽을 높이고 늘어난 수입을 작품 보호 및 복원 자금에 보태자는 의도다. 관람 인원 제한은 말 그대로 통제 가능한 수준의 인원만 받겠다는 것. 주로 문화 유적지가 이 방법을 택하는데, 타지마할과 앙코르와트 그리고 마추픽추가 그 예다. 그중 갈수록 몰려드는 관람객 탓에 변색과 훼손이 심각해진 타지마할은 해외 관광객에 한해 기존 750루피였던 입장료를 1000루피로 인상했다. 여기에는 인도 정부가 문화재 관리비 명목으로 별도 부과하는 세금 500루피가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타지마할의 ‘인간 오염’ 문제는 끊이지 않았는지 올해 초 인도 고고학연구소(ASI)는 그동안 제한을 두지 않던 타지마할 방문객 수를 인도인만 하루 4만 명으로 한정하겠다는 방침을 추가로 발표했다. 나아가 입장 후 관람 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하는 것까지 검토 중이라고. 이 방법은 비용이나 관람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불편함이 따르지만 그래도 ‘원작’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알타미라 동굴벽화, 라스코 동굴벽화 그리고 최근 보존을 위해 덕수궁에서 모습을 감춘 ‘일월오악도’ 등 오래된 명화가 선택하는 방안은 모사본이다. 카피본을 전시해 원본을 지키면서 관람객에겐 관람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것인데, 알타미라 동굴벽화 모사본은 연간 35만 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할 만큼 반응이 좋다. 하지만 원작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든 건 여전하다.
세계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유네스코는 ‘관광객 수를 줄이는 것만이 유적을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란 정책을 고수하며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은 이를 관리 사항에 포함시키라고 제안한다. 문화재 관계자도 작품의 생명을 앗아가는 방식의 감상은 욕심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라면 인류가 남긴 유산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소망이 앞서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감상과 보존, 선뜻 어떤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손을 들어주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권리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4 ‘모나리자’ 앞에서 끊임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는 관람객들.

그렇다. 이 논의를 하기 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건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의 재정비다. 미술관과 유적지에서 관람객에게 만지지 말라는 등의 금지 행동을 권고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연간 600만 명이 찾는다는 ‘모나리자’는 관람객의 플래시 세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카메라 플래시의 불빛은 작품의 색감을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박물관은 경호원을 집중 배치하는 등 강력하게 제지하지만 ‘모나리자’ 앞에서 동시에 터지는 수많은 플래시를 막을 재간은 없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스스로 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플래시를 터뜨리며 관람할 권리를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작품 보존을 위해 가품을 전시한다는 ‘모나리자’와 관련한 루머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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