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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CITY NOW

독일이 현대미술에 유독 강한 이유

  • 2018-09-03

동시대 독일 현대미술의 저력이 타오르는 지점, 룬트강을 둘러봤다

바이센제 미술대학의 룬트강 현장.

현대미술을 논할 때 독일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국가다. 독일의 현대미술은 지난 한 해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예술 만세(viva arte viva)’를 외친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국가관과 국제관에 주어지는 2개의 황금사자상을 휩쓸었고, 내부적으론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와 10년 주기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연달아 열어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붙들었다. 이처럼 현대미술계에서 보이는 독일의 파워는 ‘어디서 기인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물론 여기엔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 예술 교육 시스템, 예술가 지원 제도 등 다양한 답변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동시대 독일 현대미술의 실질적 시작점인 독일의 미술대학(kunsthochschule, kunstakademie)과 다음 세대의 미술을 이끌 작가들의 무대 룬트강(Rundgang)을 꼽는다.
매년 7월, 독일의 미술대학들은 축제 분위기로 물든다. 연중 가장 큰 행사 룬트강이 열리기 때문이다. 룬트강은 독일어로 ‘순회’라는 뜻. 말 그대로 대학을 한 바퀴 둘러보는 걸 의미한다. 룬트강 기간엔 누구든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또 학과마다 준비한 전시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쓰는 각종 미술 도구와 작업실 등을 제약 없이 살필 수 있다.






베를린 예술대학교 본관 안뜰에서 작품 관람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룬트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학교마다 그 시기와 기원도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한 학기가 끝나고, 교수들이 학생의 작업을 평가하기 위해 학교를 한 바퀴 돌며 그들의 작업실에 들어가 채점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이후 1년에 한 번 공개 전시를 하는 모습으로 발전했다. 더 나아가 새 매체의 등장과 동시대 전시 형태의 확장에 힘입어 퍼포먼스와 연계 워크숍, 가이드 투어, 토크 프로그램, 애프터파티 등을 곁들인 현재의 룬트강에 이르렀다.
지난 7월 14일과 15일, 20일부터 22일까지 베를린 소재 국립 미술대학인 바이센제 미술대학(Weißensee Kunsthochschule)과 베를린 예술대학교(Universitat der Kunste Berlin)에서도 룬트강이 열렸다. 먼저 진행한 바이센제 미술대학(이하 바이센제)의 경우 룬트강을 중심으로 두 계열 학부(회화·조소, 디자인)의 졸업 전시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함께 선보였다. 베를린 북동부의 다소 한적한 동네에 있는 바이센제 본건물에선 페인팅과 조소, 사진, 무대의상 디자인, 패션 디자인, 제품 디자인, 공간 전략,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학생의 다양한 작업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었다. 공통된 전시 주제가 있다기보단 학과마다 그리고 학생마다 자유롭게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전시’라는 하나의 공통 결과물로 묶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부에서 옅게 드러낸 다양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일례로 독일을 넘어 유럽 사회가 겪는 난민 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조소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하거나,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페인팅을 새로운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했다.






룬트강 개최를 알리는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한 건물과 미디어하우스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또 디지털화 현상을 미술과 디자인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도 돋보였는데, 이는 상호 교류라는 작업 방식을 통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했다. 단순히 볼거리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먹거리와 음료를 전시와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건물의 뒷마당 한편에선 DJ와 밴드의 공연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나이와 성별 그리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지역 축제의 장이었다.
한편 독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베를린 예술대학교는 총 열 곳에서 룬트강을 진행했다. 미술뿐 아니라 건축과 현대무용, 음악, 연극, 영상·영화, 이론, 미술·음악 치료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만큼 볼거리도 다양했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붐빈 곳은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본관 건물과 ‘미디어하우스’라고 불리는 영상 및 디자인학과 건물 두 곳. 본관 건물에선 주로 페인팅과 조소, 퍼포먼스, 건축학과의 작품이 관람객을 마주했다. 메인 로비에는 졸업생 혹은 ‘마이스터슐러(meisterschuler)’라고 불리는 대학원 이상 이수 과정 학생들의 작품이 자리 잡았다. 이곳을 지나칠 땐 아이웨이웨이와 모니카 본비치니 등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혹은 교수)가 이끄는 반(klasse)의 작업실도 볼 수 있었다.






룬트강 개최를 알리는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한 건물과 미디어하우스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내부엔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가 교수진으로 포진하고 있어서인지, 교수의 성향이 학생들의 작품에서도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개개인의 관심사가 뚜렷했다. 특히 성과 성차별 그리고 성 정체성에 관한 생각을 전면에 혹은 은유적으로 페인팅과 설치 작품의 형태로 드러낸 작업이 많이 보였다. 독일에서 베를린 예술대학교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것을 감안할 때 아이러니한 모습이었지만, 이를 통해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상기시키며,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본관에 이어 미디어하우스에선 추상적 주제를 실험적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와 자체적으로 꾸린 상영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더욱이 행사 기간에 영화 이론에 관한 워크숍과 상영회도 함께 진행해 풍성함을 더했다. 이곳에선 본관에서 접하기 힘든 미디어 아트를 만날 수 있었다. 백남준의 ‘TV 부처’를 참고한 작품이 눈에 띄었는데, 그의 작품에 오늘날의 기술력을 덧씌운 모습은 지난 세기의 예술 작품이 현대에 어떻게 재탄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독일의 여름을 뜨겁게 달군 룬트강은 단순히 학생들의 작품만 선보이는 시공간이 아니다. 지난 학기 심혈을 기울인 작업과 치열한 고뇌의 흔적이 곳곳에 가득하다. 결과물은 아직 설익고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논쟁점이 가득하지만, 시간과 함께 축적되어 오늘날 독일 현대미술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 사진 이정훈(베를린 자유 대학교 동양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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