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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SPECIAL

예술 작품의 철거권은 누가 결정하나?

  • 2018-08-31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을 무단으로 파괴하고 철거하는 행위. 예술의 영속성을 제거하는 행위. ‘반달리즘’이라는 이름의 행위.

1 예술품을 손상시키는 반달리즘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필요하다.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독일 베를린시가 청계천 광장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 일부에 낙서한 사람이 예술을 빙자해 역사적 유물을 훼손한 것으로 모자라 떳떳하게 그 사진을 업데이트한 것. 알려져 있다시피 베를린 장벽의 서독 쪽 벽은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새긴 글과 그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동독 쪽 벽면은 시민의 접근을 제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문화적 가치가 높다. 많은 비난이 일자 그는 계정을 삭제했지만 웹상에서 일파만파 퍼져나가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문화·예술·공공·종교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한다. 고의로 혹은 무지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행위는 특정 문화에 반발한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달리즘은 5세기 초 유럽 민족 대이동 당시 게르만족의 일파이자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로마 지역에 침입, 약탈하고 파괴한 데서 유래했다. 추후 반달족은 재물 약탈에 치중했을 뿐, 로마 문화의 우수성은 인정했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반달리즘이라는 용어의 뜻은 이미 굳어버렸다. 베를린 장벽을 훼손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예술이라고 믿는 듯했다. 장벽에 휘갈긴 낙서마다 의미를 들어 설명했고, 모 사진작가와 뜻을 함께했다고도 밝혔다. 이런 반달리즘은 과연 정당한가? 예술 작품의 철거권은 누가 결정하는가? 작가일까? 관람객일까? 컬렉터일까?
한 개인의 무지가 만들어낸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동안 정부도 만만찮은 행보를 보였다. 올해 초, 부산 해운대구청이 해운대해수욕장에 있던 세계적 예술가 데니스 오펜하임의 조각 ‘꽃의 내부’를 일방적으로 철거, 폐기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2011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인 이 작품은 데니스 오펜하임이 2011년 세상을 떠나면서 유작이 됐고, 같은 해에 작가의 유족이 고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을 보러 해운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작품 곳곳에 녹이 슬고 2년 전 태풍 차바로 크게 파손되자, 별다른 보수 작업 없이 방치해온 작품을 해운대구청이 철거해버린 것. 문제는 해운대구청이 작품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와 부산 미술계는 물론, 심지어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한 작가의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적 아티스트에 대한 예우는커녕 작품의 유지와 보수, 예술의 가치와 저작권에 대한 이해 등 어느 것 하나 고려하지 않은 사례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고철로 버려질 줄 알았다면 세계적 예술가를 초청해 작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뿐 아니라 천안 독립기념관이 거대 청동 조각 ‘3·1정신상’을 흰색으로 칠한 사건도 있다. 원작자와 어떤 상의도 없이 브론즈로 만든 조각을 흰색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작품이 아니라 전시를 위한 제작물이니 도색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변명은 비난의 불씨를 지폈다.




2 미켈란젤로의 작품 ‘Pieta’.

앞서 언급한 베를린 장벽 훼손 사건이나 몇 년 전 한국을 들썩이게 한 숭례문 방화 사건 등 명백한 문화재 훼손 범죄를 제외하고 예술품 반달리즘 행위는 언제나 찬반 논란을 낳는다. 이화벽화마을 훼손 사건은 앞선 사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서울 이화동에서 소외 지역과 문화를 나누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화벽화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지역민과 어우러지는 공공 미술의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뒤인 2년 전, 이화벽화마을의 주민들이 계단에 타일을 이어 붙여 만든 꽃 그림을 회색 페인트로 덮었다. 계단 옆 벽면에 붉은색 글씨로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이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고도 썼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무단으로 작품을 지웠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웃 가구의 동의를 얻어 벽화를 덮었다는 말은 예술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앞선 사례처럼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엔 단순히 예술의 가치만을 들이댈 수 없다. 미술관에서 나와 거주 공간에 놓인 공공 미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역 주민은 벽화를 보러 찾아온 사람들의 소음과 낙서에 시달려야 했다. 수없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3 이화벽화마을 전경.
4 사람들의 요구로 결국 철거한 리처드 세라의 ‘Tilted Arc’.

벽화처럼 예술적·사회적 가치가 공존하는 공공 미술은 다양한 권리와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필요하다. 예술을 파괴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는 것처럼 누군가의 삶과 일상을 침해할 권리도 마찬가지로 없다.
예술의 역사에서 반달리즘 사례는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만큼 많다. 미켈란젤로의 명작 ‘Pieta’(1499년)도 피해를 입었다. 1972년 기독교의 오순절 당시, 헝가리 출신의 호주 지질학자 라슬로 토스(Laszlo Toth)는 “내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지저스다!”라고 외치며 망치로 ‘Pieta’를 내리찍었다. 그렇게 열다섯 번이나 내리쳤고, 마리아의 코와 팔꿈치가 깨졌다. 작품은 추후 복원됐지만 자신을 신이라고 믿은 그는 이 사건으로 2년 동안 이탈리아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뿐,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안드레이스 세라노(Andres Serrano)의 사진 ‘Piss Christ’(1987년)는 예수의 십자가상을 소변에 넣은 것이 논란이 돼 반달리즘의 표본이 됐다.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가 흑인 성모마리아 그림에 코끼리 배설물을 바른 ‘The Holy Virgin Mary’(1996년)도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또 2014년엔 파리 방돔 광장에 있던 폴 매카시의 녹색 설치물 ‘Tree’(2014년)가 훼손됐다.




5 반달리즘의 피해를 입은 애니시 커푸어의 ‘Dirty Corner’.

이 조형물을 보고 자위 기구를 연상한 사람들이 작품의 와이어를 잘라낸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있던 애니시 커푸어의 ‘Dirty Corner’ (2011년)도 일부 사람들의 표적이 됐다. 여성의 성기를 닮은 설치물이 신성한 궁전에 놓였다며 반발하던 무리가 작품에 노란색 페인트를 던졌고, 작품은 곧바로 복원됐다. 하지만 작품이 흰색 낙서로 뒤덮이며 다시 훼손됐을 때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복원하지 않았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1년 미국 연방조달청의 의뢰로 제작한 리처드 세라의 대규모 조각 작품 ‘Tilted Arc’가 뉴욕 맨해튼 연방 청사 앞에 설치됐다. 하지만 이 작품은 8년 뒤인 1989년에 철거됐다. 작품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연방 청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보행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엔 작품을 다른 장소로 이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작가는 “작품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건 작품 파괴와 마찬가지”라며 반발했다. 철거 캠페인과 청문회, 찬반 논쟁, TV 토론, 법정 다툼이 무려 8년간 지속된 이 사건은 결국 창작과 표현의 자유보다는 생활의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철거의 수순을 밟았다.
예술과 반달리즘은 예술 표현의 자유, 예술에 대한 인식 부재와 무지 등 많은 것이 한데 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물론 문화유산과 예술품 훼손 사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과연 예술의 가치만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야 마땅한지, 반대로 예술품을 마음대로 파괴해도 되는지 양쪽 다 고민해볼 문제다. 예술을 훼손하는 행위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문화 교육을 통한 이해, 정부 차원의 진지한 노력, 깊이 있는 논의 등이 적절히 수반돼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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