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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SPECIAL

아아, 탄생하라: 작품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2018-08-31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떠나보내야 할 때를 알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그것에 대하여.

1 김병호 작가는 아이디어를 도면화한 후 발주, 그것이 제대로 돌아오면 작품의 ‘완성’을 떠올린다고 한다. 완성 전 단계인 그의 작품 ‘Seventy Two Silent Propagations’(위)와 ‘Silent Colloid’(아래).

오랫동안 짧은 글을 써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소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글엔 주제도, 제목도 없다. 의식의 흐름을 나열한 것이니 수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 종종 거대한 뻥을 투척하기도 했으니 소설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하튼 그것은 누구에겐 하찮을 것일 수 있으나 내겐 어엿한 작품이다. 최근 나는 내 작품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에도 나의 삶처럼 운명이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 근래 글을 쓸 땐 절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시작한다. 매 순간 내 글이 주어진 상황에 반응해 자연스레 완성되게 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글에 내 운명을 엮어 어딘가에 있을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한 일이 발생한다. 어느 순간 눈앞에 ‘완성’이라고 여겨지는 글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그 글은 내게 ‘발견’과도 같다.
그럼 미술가들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여기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모든 작가가 자로 잰 듯 정확한 시점에 작품을 손에서 ‘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작업은 작가의 착상에 의해 시작, 그것에 노동을 더해 완성된다. 하지만 이 완성이라는 개념을 맞이하는 과정은 대개 지난하다. 생각보다 많은 작가가 작품의 완성에 이르는 길목에서 고난 행군을 펼친다. 심지어 미국 미술계엔 “예술의 절반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란 말까지 존재한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언제, 어떻게, 어떤 감각에 의해 작품을 완성해 손에서 떠나보낼까?
금속을 재료로 조각 작업을 해온 김병호 작가는 생각보다 심플한 답을 내놓는다. “도면에 맞게 조각의 각 부분을 발주하고, 그것이 제대로 만들어져 돌아오면 전체적 그림이 그려져 쉽게 ‘완성’을 떠올릴 수 있죠”. 작품의 아이디어가 도면에 온전히 드러나는 그의 작업은 사실 공정만 잘 이루어지면 아무런 문제 없이 마무리되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착상을 도면화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그의 작업엔 ‘완성’을 좌지우지하는 어떤 감성적 포인트도 개입하지 않는다.





2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5~15년이 걸린다는 로나 폰딕의 ‘Wallaby’.
3 작품의 완성을 출산에 비유하는 모나 쿤의 ‘Reflecting’.

빙하나 호수, 천장, 포도 등을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온 김하나 작가는 조금 다른 의견을 들려준다. 그녀가 작품의 완성을 결정하는 지점은 작업 그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다. “보통은 캔버스 구석구석을 조각내듯 살피며 스스로 질문합니다. 솔직히 너무 지겨워 그것을 그만두려는 건지, 아니면 더는 손댈 데가 없어서 끝내려는 것인지 말이죠. 만약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 작품을 완성합니다.” 한편, 절단된 신체 일부를 형상화하는 미국 조각가 로나 폰딕(Rona Pondick)은 작품의 완성 여부를 결정하는 그 ‘느낌적 느낌’과 친해진 적이 결코 없다. 작품 하나를 완성해 떠나보내는 데 최소 5년에서 15년까지 걸린다는 그는 지금도 작업실 한편에 15개쯤 되는 미완성 작품을 두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한 작업에 너무 오래 에너지를 쏟다 보면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 그걸 보는 게 괴로워집니다. 그럴 경우 저는 6개월에서 1년쯤 작업을 쉬죠. 그 후에야 다시 뭔가를 하기 시작합니다.” 가는 선으로 시공간을 그리는 추상화가 마크 셰인크먼(Mark Sheinkman)의 답변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신선하다. “일단 작업실 밖으로 작품이 떠나면 그것이 완성됐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팔리지 않아 다시 돌아오면 생각을 고쳐먹죠. 제게 돌아온 작품에 이따금 큰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라도 다시 그것이 작업실을 떠나면 깨끗이 잊죠.” 미국과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모나 쿤(Mona Kuhn)은 작품의 완성을 출산에 비유한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 때,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 할 때, 바깥세상에 나가 그것이 독립적 삶을 살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저는 작업이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생각의 전이에 따라 추상 작업을 해온 에밀리오 페레스(Emilio Perez)는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그 느낌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작품과의 대화에서 만약 좋은 느낌을 받는다면 그 끝도 자연스럽게 온다고 믿습니다. 저도 늘 그래왔고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것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이라는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4 에밀리오 페레스의 작업실. 그는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완성’의 느낌을 찾는다.

이처럼 작가들이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느끼는 지점은 각양각색이다. 또 여기에 쓰진 않았지만, 그것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미술관의 전시 기획자가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여길 때 완성된 것일 수도 있으며, 작업의 완성도가 컬렉터의 기준을 충족시킬 때 갤러리의 큐레이터에 의해 그것이 결정되기도 한다. 또 이 글의 서두에 쓴 것처럼 어느 순간 눈앞에 ‘완성’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의 형태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덧붙여 작가 자신이 그 작품에 싫증이 나 끝내는 것 또한 작품의 완성이다. 끝으로 작품을 이쯤에서 끝내도 되는지, 아니면 더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나 전하고자 한다. 바로 ‘미니스커트 이론’이다. 중요한 부분을 커버할 만큼만 길이가 길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길이가 짧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상한 비유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적절한 비유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실체화하는 것이기에 뭔가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만 그것을 드러내면 되고, 감상자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만 긴장감이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을 모두 겪은 작품은 비로소 세상에 나가 독립적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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