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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LIFESTYLE

외딴집

  • 2018-09-12

삶을 담는 그릇인 ‘집’을 통해 다양한 사유를 표현하는 예술가들. 그들이 집에 담은 이야기는 물리적·정서적으로 우리 삶과 농밀하게 연결된다.

1 부산에서 이주 생활 프로젝트를 진행한 무라카미 사토시의 <집의 동사형> 전시.
2 정착을 의미하는 집과 이동 수단인 말이 함께 등장하는 류지선 작가의 ‘움직이는 집’ 시리즈 중 ‘글래스 하우스’.

건축가 이일훈은 말한다. “알고 먹는 음식이 더 맛있고, 알고 입는 옷을 더 멋지게 소화하면서도 막상 집에 대해서는 그 앎의 가치에 소홀하다. 왜 그럴까? 집이 지닌 이야기를 잊었기 때문이다.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집은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안식처가 아닌 피난처에 가깝다.” 본디 집이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 이웃에 대한 생각과 세상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는 삶의 집결체다. 일상의 기록이 쌓여가는 장소이며 마음이 머무는 정신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이 과시나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우리는 집을 ‘건물’로만 보고 소유하려 할 뿐,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집의 가치가 퇴색한 지금, 동시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표현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집의 의미를 묻고 그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우드그레인 표면에 그래픽 디자인을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 아티스트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는 다주택 소유 풍토에 일침을 가한다. 영국은 소수의 부유층이 여러 개의 주택을 소유해 거리 곳곳에 빈집이 많은 반면, 저소득층 사람들은 살 곳이 없어 거리에서 지내는 주택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몇 해 전 해변가 마을인 포크스톤을 방문했을 때 이상한 전단지를 봤어요. ‘당신의 집을 현금화하고 싶지 않나요?’라고 쓰여 있었죠. 자세히 읽어보니 집을 비싸게 팔아 다른 사람의 세컨드 하우스로 쓸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는 6개의 작은 집을 만들어 포크스톤 곳곳에 설치했다.
어떤 집은 숲이나 모래사장 위에 무심하게 놓여 있고 어떤 것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닌다. 실제 집의 3분의 1 크기지만 옐로, 오렌지, 핑크 등 네온 컬러와 검은색 윤곽선을 결합한 디자인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길을 걷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발견한 주민들은 한 번쯤 영국의 주택난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부산에도 수상한 집이 등장했다. 벽체, 창문, 지붕까지 갖춘 작은 모형 주택인데, 실제로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는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사토시의 <집의 동사형> 전시로, 부산현대미술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제작한 집을 이고 부산 곳곳을 걸어서 이동하며 한 장소에서 2~3일씩 거주하는 이색 퍼포먼스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며 고정된 공간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땅에는 벌레와 짐승도 사는데 사람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은 아닌지, 자동차와 자전거는 임시로 두는 장소가 있는데 왜 집을 임시로 두는 공간은 없는지.’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이주 생활’ 프로젝트는 4년간 세계 곳곳을 돌며 특정 지역과 위치에 고정된 공간의 개념을 초월해 유목적 공간으로서 집의 새로운 개념을 전파하고 있다.




3 나뭇조각에 친숙한 집을 그리는 지유라 작가의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4 구름 위를 떠다니는 집을 표현한 로랑 셰에르의 ‘플라잉 하우스’ 시리즈 중 ‘Pink’.

무라카미 사토시가 휴대용 집을 통해 이주 생활을 선택했다면, 회화 작가 류지선은 자의든 타의든 이상향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다니는 현대인의 삶을 풍자해 캔버스에 옮긴다. ‘움직이는 집’ 시리즈에는 정착을 의미하는 집과 이동 수단인 말이 함께 등장한다. 어딘가를 향해 정처 없이 걸어가는 말은 집을 짊어지고 있는데, 층층이 쌓인 집은 현대와 과거, 서양과 동양의 다양한 건축이 혼재된 독특한 형태다. “말은 고대부터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저는 말이 집을 짊어지게 함으로써 이주가 빈번한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그림들은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마냥 밝아 보이진 않는다. “컬러에 힘을 주어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대신 역설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살짝 감추었죠.
또 유화에 비해 평면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아크릴물감을 사용해 인위적이고 모조적인 현대사회의 특성을 나타냈어요.” 현대인의 삶을 유쾌한 반어법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생경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렇게 사회적 이슈를 재조명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집에 얽힌 꿈과 추억, 편안함과 안정감을 끄집어내는 이들도 있다. 나뭇조각에 동화처럼 친숙한 집을 그리는 지유라 작가. 목포 보리마당의 파란 대문 집, 무덤 위에 지은 부산 비석마을 집, 돌담 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제주도 집 등 작가는 여행을 다니며 만난 다채로운 집을 그린다. “집을 떠나 십 수년간 생활한 제게 집은 돌아갈 곳이자 가족이며 그리움이었어요. 또 집은 가장 자유롭고 솔직한 나만의 공간이죠.” 휴식과 안정, 즐거움이 있는 집은 그녀에게 행복 그 자체. 투박한 나무 위에 그린 섬세하고 사실적인 집은 화려하진 않아도 소담한 우리네 풍경이라 보는 이에게 따스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듯하다.
프랑스 아티스트 로랑 셰에르(Laurent Chehere)도 여행을 통해 ‘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곧 책으로도 출간되는 ‘플라잉 하우스’ 시리즈는 파리 외곽의 가난한 다국적 거주민의 집과 세계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융합한 결과물. 서정적 색감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은 모두 가는 줄에 묶인 풍선처럼, 구름 위를 떠다니는 연처럼 표현했다. 하늘에 띄울 집을 스케치한 후 지붕, 안테나, 벽, 창문 등 수백 가지 요소를 촬영한 이미지를 합성해 초현실적 집을 완성한 것. 어떤 집은 커튼과 화분으로 장식했고, 어떤 집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창밖으로 사람 다리가 튀어나와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면서 상징적이며 은유적이라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고향에서 쫓겨나 다른 세계로 향하는 집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쾌한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초대장 같기도 하다.
누구나 집이 없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삶의 안식처로서 ‘살기 좋은 집’보다는 ‘팔기 좋은 집’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인 현시점에 이런 예술가의 사유가 담긴 작품은 잊힌 집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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