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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3

Past Modernism

재활용(recycling)을 넘어 새 활용(upcycling)으로, 복고 감성의 제품을 ‘힙’하게 소비하는 장르는 비단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 대구 지역에서도 과거 영광을 누린 제조 공장, 병원 건물, 상가, 창고 등의 낡고 오래된 공간이 현대적인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빌리웍스의 메인 홀.

1963년에 지은 부산의 대표 와이어 제조 공장 고려제강이 2016년에 F1963이라는 문화 공장으로 재탄생해 문을 열었을 때, 낡고 오래된 공간이 새로운 소비재로 향유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폐공장의 원형을 살린 테라로사 카페에서 짙은 로스팅 향을 맡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 천장까지 닿은 책장에서 빼낸 예스24 헌책 한 권은 단순한 커피와 책이 아니었다. 공간의 특이성과 맞물려 커피와 책 그 이상의 경험을 소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국 리버풀의 옛 부둣가가 거대한 문화 단지로 개발되었을 때나 미국 뉴욕 맨해튼을 관통하는 오래된 화물 철로가 아름다운 공원으로, 옛 공장들을 터서 식료품을 판매하는 마켓으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분명 다른 경험이다.수십 년 전 번영한 무역항의 활기나 철도 산업의 전성기가 내 나라의 역사가 아닌 이상 한두 번의 방문과 경험으로는 온전히 변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전복하며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을 때의 짜릿한 충격은 내가 발 붙이고 사는 곳 가까이에서 이루어졌을 때 더욱 공감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지극히 소비적인 장르로 분류되는 패션에서 친환경과 합리성을 이유로 재활용과 새 활용의 복고 감성 제품을 ‘핫’한 소비재로 등장시킨 것과는 또 다르게, 도심의 낡고 오래된 공간을 탈바꿈시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에 가깝다.






< Ryan Yoon > 개인전을 전시 중인 빌리웍스.

산업구조의 변화, 땅값의 상승, 구도심의 쇠퇴 등이 낡고 오래된 공간을 낳았고 이들이 도심의 흉물로 전락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내가 발 붙이고 사는 도시를 보수하고 재생시키는 일은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연히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공간을 현대적 용도로 바꾸는 것은 아예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이 든다. 낡고 오래된 것을 보수하고,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용도에 맞게 변형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공간의 역사와 가치를 다시금 경험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부여하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숙제를 과감하게 단행한 F1963이 부산에 있다면, 최근 대구에선 빌리웍스가 공간 재생의 좋은 예로 부각되고 있다. 빌리웍스가 자리한 북구 고성북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최초의 공단 지역이었다. 문을 닫거나 도시 외곽으로 이전한 제조 공장이 늘어나면서 점점 슬럼화되어 유동 인구가 적었던 곳이다. 빌리웍스는 이곳에 철강 공장 창고와 폐교회 부지, 3층 옥상 공간까지 활용해 대구 지역 카페 중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복합 공간을 꾸몄다. 카페 중앙 천장에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가 돋보이는 빌리웍스는 곳곳에 옛 부지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와이어 공장의 흔적을 활용한 F1963의 카페 테라로사.

‘안전제일’ 글씨를 새긴 호이스트 크레인, 공장 철문 4개를 붙여 만든 거대한 셰어 테이블, 교회 부지였음을 가늠케 하는 자모실과 낡은 화장실 등등. 철제와 노출 콘크리트, 벽돌과 타일, 파이프와 원목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 & 빈티지 스타일로 꾸며 폐공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건물 외형 또한 원형을 살려 지역성을 잘 드러낸다. 문화 예술 복합 공간으로서 빌리웍스는 ‘우리는 예술을 만나는 공간에 대한 도전을 즐긴다’는 슬로건을 걸고, 주기적으로 미술 전시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다양한 문화예술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한편, 부산 초량의 브라운 핸즈 백제점은 도심 속 근대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다. 카페는 1922년 부산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백제병원 건물(등록문화재 제647호)의 역사와 가치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부산 최초 근대병원의 흔적을 영민하게 잘 활용한 브라운핸즈 백제점.

병원 폐업 후 1932년부터 중국집, 일본군 장교 숙소, 예식장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나 건물의 본래 역사는 여전히 부산 최초의 서양식 개인 병원이었다는 점이 부각되는 곳이다. 출입문과 창문, 벽면의 타일과 흙 등 이전의 형태를 재현해 근대건축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빈티지 라이프스타일 가구와 조명을 만드는 브라운 핸즈 디자인 회사는 최근 도심의 오래되고 낡은 부지를 활용해 카페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백제점 이전에는 서울 도곡동의 자동차 정비소, 마산의 버스 차고지 등을 브라운 핸즈 카페로 만들어 이슈가 되었다.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낡고 오래된 공간을 감각적으로 활용하는 예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저성장, 땅값 상승, 건설 경기 침체 등의 다양한 사회현상으로 인해 공간의 재활용과 새 활용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근·현대화의 흔적이 많이 남은 지역 곳곳에서 이런 작은 바람이 일고 있다.






부산 최초 근대병원의 흔적을 영민하게 잘 활용한 브라운핸즈 백제점.

일제강점기 적산 가옥을 개조해 만든 부산의 카페 초량 1941, 26년 전 대교레포츠로 문을 연 실내 수영장 풀(pool)을 고스란히 살린 부산의 카페 젬스톤, 100년 넘은 동네 한옥집을 그대로 활용한 부산 한옥라운지 청사포역, 식품업체 저장 창고를 활용한 대구의 강산맥주와 간판업체 창고를 카페로 만든 파리엔테스 등. 오래된 시간의 가치와 경험을 문화 예술적 즐길 거리로 바꾼 공간 재생은 노후된 도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된다. 옛 한국은행 부산 본부가 ‘2018 부산비엔날레’를 거쳐 어떻게 가치 있는 문화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대구 빌리웍스의 루프톱에서 내려다본 맞은편의 폐공장이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지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이처럼 과거의 영광이 능동적 현대를 만나 미래의 비전으로 재생되는 즐거운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에디터 손지혜
사진 공정현   문의 부산 F1963 테라로사(051-756-1963), 부산 브라운 핸즈 백제점(051-464-0332), 대구 빌리웍스(053-35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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