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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8 LIFESTYLE

Gin Craze

  • 2018-08-09

작은 증류소에서 만든 크래프트 진은 요즘 가장 뜨거운 술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진이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주류업계의 찬란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해리스 진. 이 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시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증류소의 지역성을 살려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 다시마를 넣어 맛을 더했다.

요즘 크래프트 비어에 이어 크래프트 진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익히 접해온 고든스, 봄베이 사파이어, 핸드릭스, 탱커레이와는 무엇이 다른 걸까. 화이트 스피릿 전문점 화이트 바(White Bar) 장동은 대표는 크래프트 진의 명확한 정의는 없다고 답했다. “크래프트 진을 따로 구분하기엔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기존 대량생산품과 달리 개성이 듬뿍 담긴 진이라 할 수 있죠.” 장동은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앱을 하나 실행했다. 세계의 모든 진을 브랜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앱, 진벤토리. “진벤토리에 등록된 진 브랜드는 5039개에 달하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4000개에 못 미쳤어요. 진은 주니퍼베리(노간주나무 열매), 안젤리카 뿌리, 코리앤더 열매 그리고 감초 성분이 들어간 37.5도 이상의 증류주를 총칭해요. 핵심 재료는 주니퍼베리예요. 증류주에 주니퍼베리와 그 외 재료를 담거나, 담가서 다시 증류하거나, 주니퍼베리의 진액을 섞는 등 주니퍼베리만 넣으면 얼마든지 다른 재료로 변주가 가능해 증류소의 강한 개성을 뽐낼수 있죠. 위스키와 달리 숙성 없이 일주일 정도면 손쉽게 만들 수 있고요. 여러모로 확장 가능성이 큰 술인 만큼 다채롭게 개발되고 있어요.”
진의 부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조는 예네버르(jenever), 영어권에서는 제네베르(genever)라 불리는 네덜란드 술이다. 이 술은 본래 해열과 이뇨 작용이 탁월한 주니퍼베리를 알코올에 넣어 증류시킨 약이었다. 그 맛이 당시 즐겨 마시던 몰트 와인보다 나았고, 이를 16세기부터 술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진의 원조는 네덜란드지만 그 열병은 영국이 가장 심하게 겪었다. 1689년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의 비호 아래 영국 왕위에 올랐다. 왕은 답례로 프랑스산 와인과 브랜디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네덜란드 특산품인 진을 자국에 널리 보급했다. 진은 동전 하나로 값싸게 취하는 술이었다. ‘슬픔을 해소하는 술’, ‘빈자의 술’, ‘위안자’ 등 여러 가지 낭만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서민의 애환을 달랬고, 곧 영국인의 삶을 파고드는 독으로 변했다. 과음으로 급사한 이도 있었고, 진을 사 마시기 위해 자기 아이를 죽인 여인은 영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진은 ‘모성의 몰락’, ‘악마의 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쓰기에 이르렀다. 이에 맞서 영국은 세금 인상을 단행하는 동시에 도수가 낮은 맥주의 세금을 없앴고, 진은 결국 맥주에 국민 술의 왕관을 내줬다. 하지만 금주법을 시행한 1920년대에 미국에서 진은 다시 부활했다. 숙성시킬 필요가 없고 불법으로 제조하기에 비교적 용이했기 때문. 이러한 연유로 ‘진은 네덜란드가 만들고 영국이 꽃피우고 미국에서 영광을 얻었다’라는 말이 생겼다.
보드카에 밀려 주춤한 시기도 있지만 1987년 봄베이 사파이어가 등장한 이후 헨드릭스와 다른 후발주자가 여럿 등장하며 진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바에 불어닥친 올드 스타일 클래식 칵테일의 유행은 진의 부흥에 속력을 더했다. 그 틈에 크래프트 비어 문화가 정착한 미국은 증류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2004년 설립한 ‘하우스 스피리츠 디스틸러리(House Spirits Distillery)’가 대표적이다. 진의 종주국 영국은 이에 자극을 받았다. 2009년 십스미스(Sipsmith)가 200년 만에 최초로 소규모 증류 허가를 받아내며 크래프트 증류소가 영국 전역에 퍼져갔다. 비교적 만들기 쉬운 만큼 빠르게 확산됐고, 로컬 식자재를 첨가하거나 보태니컬(진의 원료로 쓰이는 모든 식물성 재료)의 숙성 방식과 증류 방식의 차별화 등을 통해 각 지역과 증류소의 개성을 더한 진이 탄생했다. 유통업자 혹은 바 운영자 입장에서는 크래프트 진을 바탕으로 훨씬 다채로운 칵테일을 개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바 고유의 캐릭터를 얻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깊어가는 진의 문화가 반갑다. 런던 노팅힐에는 세계최초로 진을 테마로 한 호텔 ‘더 디스틸러리(The Distillery)’가 생겼을 정도. 진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와 소규모 크래프트 증류소가 호텔내에 있어 크래프트 진을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도 가능하다.
크래프트 진은 현재 영국을 넘어 스페인, 프랑스, 일본, 태국 등 국가를 불문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 중이다. 지금까지 등록된 5039개의 진은 병부터 라벨, 향, 맛까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진을 위스키처럼 스트레이트로 두어 모금 마시며 음미한 후 얼음을 넣어 온더록스로 즐겨보세요. 거기에 토닉과 가니시를 조금씩 첨가해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믹스하며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지 직접 느껴보길 권해요. 몰랐던 진의 세계에 한 발짝 가까워질 거예요.” 앞으로 더 다양하고 심오하게 발전할 크래프트 진의 세계를 탐험하며 각자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 문화를 누구보다 진하게 음미하길 바란다.




1 배치 원 최초로 진에 베르가모트 향을 입혔다. 한 입 머금으면 입안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한 향의 향연이 펼쳐진다.
2 십스미스 정통 런던 드라이로 나무랄 데 없는 균형미, 뚜렷한 풍미가 일품이며 칵테일 종류를 막론하고 베이스로 제격이다.
3 로쿠 진 벚꽃, 유자 껍질, 전차, 산초, 벚꽃잎, 옥로차 등 6가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서 일본어로 6을 뜻하는 ‘로쿠’라 이름 붙였다. 찻잎과 꽃잎을 함께 사용해 향이 탁월하다. 꿀처럼 달콤함이 느껴지는 향은 은은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연상시킨다.
4 진 마레 스페인산으로 아르베키나 올리브, 로즈메리, 타임, 바질 등의 허브와 시트러스를 사용하는 진 마레는 약간 색다르면서도 매혹적인 맛이 난다. 로즈메리 잔가지나 라임 웨지, 굵게 빻은 후추 등의 가니시를 곁들여도 색다른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5 문샷 진 주니퍼베리와 코리앤더, 레몬 필과 캐모마일꽃, 카르다몸과 시나몬, 안젤리카 등을 지상에서 20km 떨어진 저기압의 대기권에서 숙성시켜 만든 진. 카시아와 블랙페퍼의 풍미, 레몬 셔벗을 연상시키는 오렌지와 레몬 필의 프레시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진토닉이나 진플립 등 칵테일로 마셔도 좋다.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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