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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8 LIFESTYLE

EDITOR'S TASTE

  • 2018-06-27

절절 끓는 여름날에 끼얹는 기분 좋은 찬물. 뜨거운 태양에 맞서 싸우기 위한 편집부의 비장한 한잔

사케, 날것
술에도 계절이 있다면 내게 사케는 겨울 술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칠링한 사케 한잔! 그 한잔이 간절해지기 시작한 건 ‘나마자케(生酒)’를 만난 뒤부터다. 나마자케는 생주 즉, 발효 후 미세한 필터에 걸러 병입하는 방법으로 만든 효모가 살아 있는 사케를 말한다. 뛰어난 풍미에 제철 채소처럼 싱그럽고 신선한 맛을 흔히 화이트 와인에 비교한다. 기분 좋게 톡톡 터지는 탄산감과 은은한 단 향은 찌는 날을 위한 기분 좋은 위로다. 최근에는 사케에 취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평소 좋아하는 사케 ‘나베시마(鍋島)’의 양조장에 다녀온 게 계기다. 나베시마는 영국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WC) 2011’ 사케 부문에서 수백의 경쟁자를 제치고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사케다. 사가현 출신 나베시마 덕분에 ‘사간슈’(사가 지역 사케란 뜻)란 신조어도 유행 중. 지난봄의 끝자락, 술을 빚는 현장에서 맛본 사케가 준 얼얼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방울방울 터지는 기분 좋은 혀끝의 자극, 그리고 콧속 깊은 곳까지 선선해지는 오묘한 풍미를 더듬으려 자꾸 사케를 찾는다. 이 여름을 위한 낭만적인 세레나데가 될 나마자케, 올여름엔 너로 정했다. 에디터 전희란











자몽을 듬뿍 넣은 오미자비타민차 TEA Collective.

해갈의 맛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내 몸은 비타민을 찾는다. 매일 마시던 커피 대신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달큼하고 시큼한 마실 거리에 눈이 머문다. 입안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질 만큼 덥고 지친 날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때는 오미자차를 한잔 시켜놓고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투명한 유리컵에 오미자 원액을 깔고 얼음과 차가운 물을 부으면 물감이 퍼져나가듯 투명하고 예쁜 다홍색이 차오른다. 소녀의 뺨처럼 투명하고 불그레한 빛깔을 뽐내는 오미자차에는 눈으로 마시고, 코로 맡고, 입으로 음미하는 오감 만족의 재미가 담겼다. 햇빛을 투과하며 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색을 즐기다 이내 한 모금 들이켜면 싱그러운 오미자의 향과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시큼하고 달콤씁쓸한 맛에 이어 은은하게 밀려오는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의 재미란! 다 마신 잔 밑에 넉넉하게 깔려 있던 자몽의 과육을 남은 얼음과 함께 아그작아그작 씹다 보면 텁텁하고 지친 기운이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에디터 정유민











잉글랜드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 런던 미드 Gosnells.

일단 마셔봐
시작은 이랬다. 술 한잔에도 온몸이 빨개지는 체질 탓에 술을 즐기지 못하는 편인데, 주변엔 왜 이리 애주가가 많은지. 지난여름 어느 날, 애주가 친구는 날 위한 술이라며 처음 보는 맥주병을 양손에 들고 나타났다. “너 이거 좋아할 것 같아. 일단 마셔봐.” 음, 정말 좋아하게 됐다. 이 술은 맥주가 아니다. 8000년 이상 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인류 최초의 술이자 일명 ‘꿀술’로 불리는 미드(mead)다. 흰 배경에 꿀벌들로 벌집을 형상화해 ‘꿀술’ 이미지를 살린 라벨 디자인이 힌트라면 힌트. 영국인 토머스 고스넬(Tomas Gosnell)은 맥주의 인기로 차츰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잉글랜드 전통 방식의 미드를 살리고자 2013년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이렇게 탄생한 미드가 ‘고스넬스’다. 현재 고스넬스 미드는 영국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꾸준히 성장하는 중이며 그 덕에 유럽을 넘어 한국에서도 미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고스넬스 미드는 ‘런던 미드(London Mead)’,‘홉 미드(Hopped Mead)’, ‘시트라 시 미드(Citra Sea Mead)’,‘엘더 플라워 미드(Elder Flower Mead)’ 총 4종. 한국에는 오리지널 제품인 고스넬스 런던 미드만 수입되고 있다. 런던 미드는 혀끝을 자극하는 섬세한 기포, 달콤한 꿀과 꽃 향이 특징으로 입맛을 돋우는 산미가 꿀의 단맛으로 치우칠 수 있는 단점을 잡아줘 전체적 밸런스가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맥주의 평균 도수인 4~4.5%보다 살짝 높은 5.5%로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정도. 오늘 밤도 미드! 에디터 정진원











유기농 보리와 찹쌀 현미, 메주콩, 쥐눈이콩을 섞어 만든 미숫가루 TEA Collective.

갈증의 기억
손을 타고 자랐다. 할머니는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내게 밥을 지어 먹이셨다. 할머니 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2층 양옥이었다. 볕이 잘 드는 남향이었고 다홍빛 담엔 수북이 장미 넝쿨이 자랐다. 낡은 녹색 철문을 열면 좁은 마당이 나왔다. 가장자리엔 작은 화분이 도열해 있었고 왜인지 모르지만 구석에 낡은 목마가 있었다. 장마가 끝난 여름, 집에 돌아와 목마에 앉으면 할머니는 장에 모셔둔 크리스털 잔을 꺼내 미숫가루를 타서 내주셨다. 가루가 텁텁하다고 투정하는 손자를 위해 수십 번 젓고 꿀을 타곤 얼음을 띄워주셨다. 탄산음료가 아니라 구시렁거리면서도 그걸 남겨본 기억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그 한잔을 위해 안 좋은 무릎을 눌러가며 직접 재래시장과 방앗간을 찾았다고 한다. 더 이상 목마에 앉을 수 없게 됐을 때 내 발길도 끊겼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외가에 갔지만 대학 생활과 연애에 취해 인사만 겨우 하곤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13년 전 돌아가셨다. 여름의 코앞에서, 장미 넝쿨이 무성해지기 전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여전히 미숫가루를 좋아한다 말할 순 없지만 타는 갈증을 느낄 때면 당시 파편적 기억이 소환된다. 콩과 현미, 율무, 찹쌀, 들깨, 보리 등을 곱게 빻아 차가운 물에 휘휘 저어 마시는 담백한 한잔, 그게 내 여름날 해갈의 기억이다. 에디터 조재국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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