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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8 FEATURE

좋은 사람의 맛있는 요리

  • 2018-06-25

프렌치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서승호 셰프와 이방원 셰프를 만났다. 서승호는 이방원을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셰프’라고, 이방원은 서승호를 두고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른 아침, 반가운 얼굴을 만나러 세종시로 향했다. 저수지를 지나 회색빛 건물 한 귀퉁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건물 앞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 손에는 풀을, 다른 손에는 드로잉 북을 들고 취재진을 맞이한 그가 국내 1세대 프렌치 셰프 서승호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요리를 시작했다. 1999년 초 ‘라미띠에(L’amitie´)’와 제과점 ‘데세르(Dessert)’를 오픈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국내 최초로 원 테이블 레스토랑 ‘레스토랑 서승호(Restaurant SUHSEUNGHO)’를 운영했다. 그 결과, 현재는 ‘서승호’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가 많은 사랑을 받던 레스토랑 서승호를 접고 갑작스레 세종시에 온 지 햇수로 6년이다. 그가 나고 자란 집과 가까운 곳에 새로이 둥지를 튼 데에는 이유가 있다. 레스토랑이 있던 건물의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힘겹게 일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온 그는 6년 동안 바삐 움직였다. 건물을 짓고 정원을 일궈 식자재를 재배하고, 수확한 채소를 연구해 요리로 탄생시켰다. 그리고 작년 춘분, 그의 요리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의 기대에 힘입어 소수의 예약제 레스토랑 시옷·서승호(Siot & SUHSEUNGHO)를 정식으로 오픈했다.
세종시까지 가야 하지만, 서울에서도 그가 손맛을 전수한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제자인 김준형 셰프가 이끄는 ‘시옷·청담’과, 이방원 셰프가 운영하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프렌치 레스토랑 ‘파씨오네’다. 그중에서도 서 셰프가 아끼는 후배로 손꼽는 이 셰프와는 유독 인연이 남다르다. 이 셰프가 요리사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스무 살 겨울방학에 우연히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다. 당시 너무 재미있어서 돈을 안 받아도 평생 일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학교 졸업 후 식품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결국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해 사표를 던지고 요리 학원에 다녔다. 작은 일식당을 거쳐, 스물네 살 무렵 고향인 전주의 코아 호텔(현 코아 리베라 호텔)에 입사해 정착했다. 안정적 직장이었지만 마음속의 아쉬움은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서울에 가서 양식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질 즈음, 그의 인생에 기회가 찾아왔다. 서승호 셰프를 만난 것이다.




시옷·서승호의 서승호.




세종시에 있는 시옷·서승호의 내외부.

이방원 아는 선배가 서울에 있는 선배를 소개해준다더군요. 누군지 묻지도 않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죠. 그때 저를 마중 나온 분이 서 셰프님이에요. 셰프님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전주에서 일할 때 요리 잡지에서 서 셰프님과 레스토랑 라미띠에에 대한 기사를 봤거든요. 그때도 왠지 모르게 끌렸는데, 소개받기로 한 이가 바로 서 셰프님이라니 마치 운명 같았죠. 당시 라미띠에에서 바로 일할 줄 알았는데, 같이일하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서승호 대단한 일이지. 우리 식당에서 일하고 싶어 1년이나 기다리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오는 모습에 신뢰가 갔어. 1999년, 라미띠에를 오픈하고 첫 달에 네다섯 팀이 올 정도로 어려웠거든. 그땐 지금처럼 레스토랑을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3개월쯤 지나니 한번 온 손님들이 또 다른 손님을 데려오더라고. 레스토랑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후배가 많아졌어. 이 셰프보다 오래 기다린 후배들도 있지.

이방원 저는 서 셰프님에게 배울 점이 많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당시 셰프님처럼 외국 유학을 갔다 와서 프렌치 요리를 정식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었어요. 셰프님과 라미띠에를 모델로 삼았죠. 그래서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었어요.

서승호 이 셰프가 나를 모델로 삼은 것처럼, 나도 프랑스에서 좋은 모델을 많이 봤거든. 음식이 맛있으면 문제없다 믿었고, 대한민국 인구가 몇인데 테이블 4개를 못 채우겠느냐는 확신도 있었지. 물론 쉽지 않았지만 당시 프랑스의 레스토랑을 그대로 옮긴 내 레스토랑이 하나의 새로운 모델이 됐나 봐. 부티크 레스토랑, 원 테이블, 예약 시스템, 맞춤형, 현지와 유사한 맛 등에서 한발 빨랐지. 누구나 기회는 있지만 다 시도하진 않잖아. 지금 생각하면 겁이 없었던 것 같아.

이방원 결국 1년의 기다림 끝에 같이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셰프님은 남과 다른 맛을 내는 데 탁월하잖아요. 독특한 컬러가 있죠. 일하면서 그동안의 고민이 확 풀렸어요. 요리의 포인트나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그 전까지는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셰프님은 후배나 제자에게 아낌없이 가르쳐주고 기회도 많이 주잖아요.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저도 덕분에 제 요리 철학을 정립했고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죠.

서승호 이 셰프처럼 배우려는 자세만 있으면 다 가르쳐주지. 내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독립한 후배들에게 처음 2년은 아무것도 바꾸지 말고 배운 대로 하라고 조언해. 거래처도 그대로 쓰라고 말이야. 그렇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 한 단계씩 시도해나가면 돼. 하지만 바로 다 바꿔버려 조화가 안 돼. 내가 알려준 대로 따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 이 셰프는 뭐든 영리하게 받아들였어. 우리는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맛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야. 맛에 관한 한 우리 둘 다 쌓아온 게 무너지진 않을 거야. 손끝에서 나오는 맛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몰라. 이 셰프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거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맛을 내는 데 재능이 없으면 안 돼. 요리하는 것보다 영업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있잖아. 무엇보다 이 셰프의 요리는 맛있어.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자신이 만드는 요리에 애정을 갖고 장난치지 않는 것, 재료와 조리법, 위생이 정직해야 돼. 후배나 제자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도 다 따르지 않는데, 이 셰프는 오히려 나보다 잘 지키니까 고맙지. 경력과 재능이 있어서 그만큼 올라가는 속도가 빨랐겠지만, 인정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파씨오네의 이방원.

이방원 저는 셰프님이 내고자 하는 맛의 포인트를 알았어요. 레스토랑에 해가 되고 싶지 않았죠.

서승호 이 셰프는 내가 원하는 걸 따라올 수 있는 후배야. 우리가 지금 떨어져 있어도 생각이나 자세가 비슷하잖아. 내 곧은 성격을 따라줘서 고마워. 처음엔 누구나 열정이 있지만 점점 변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이셰프는 환상을 빨리 버리고 정석을 따랐고, 절실함과 성취도가 남달랐어. 우리 둘 다 지금도 주방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잖아. 우리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예의지. 나는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아예 레스토랑 문을 닫아. 우리처럼 지금도 현장에서 직접 뛰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많지 않지. 그런 점에서 후배지만 이 셰프를 인정해.

이방원 2년 6개월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며 서 셰프님에게 배운 거죠. 저도 되도록 레스토랑을 비우지 않아요. 항상 제가 맛보고 마지막에 손길을 더하죠. 레시피만으로 음식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을 안 하면 왠지 미안해요. 스태프나 후배들에게 기회는 주되 모든 책임은 제가 지죠. 그 점 말고도 셰프님의 업적이 또 있어요. 주방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던 요리사를 레스토랑 홀로 나오게 했잖아요. 손님에게 인사도 하고요. 그만큼 만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거죠.

서승호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음식에 프라이드를 가져야 해. 난 여전히 하루에 4~5팀만 받아. 내가 우리나라 프렌치 레스토랑 음식값을 높인 주범이지. 하지만 가격에 대한 의문은 셰프인 내가 맛으로 풀어주는 거야. 사치와 가치를 구분해야 해. 나는 그런 점이 대중에게 어필했다고 생각해. 가격대가 높으면 사람들의 기대치도 커지고, 그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겠다는 책임감도 커지지.

이방원 저는 가격대가 높아지면 그만큼 부담스러워요. 아직 두려움이 있어요. 파리에도 한 끼에 50만 원짜리, 2만5000원짜리 레스토랑이 있잖아요. 저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고 손님이 부담 없이 편하게 들르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요. 저한테는 그게 맞아요. 서 셰프님처럼 소수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그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게 부럽기도 해요. 아쉽지만 모든 걸 취할 수는 없으니까요.

서승호 다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 거지. 그렇게 인연을 쌓아가면 돼. 식당에서 밥도 먹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가지.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정원도 둘러보면서 말이야. 내 식당에 오는 손님이 식사 외에 다른 것도 담아 가면 좋겠어. 가끔 내가 키운 콩이나 명이나물을 나눠주기도 해.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또 스토리가 생기고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 이셰프도 지금의 방식대로 이야기가 생기고 누군가의 모델이 될 거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두 사람의 눈빛에서 서로를 향한 애정이 드러났다. 주고받는 말 한마디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도 세종시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이방원, 그런 후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서승호 셰프의 만남을 지켜보는 에디터의 마음도 온기로 가득 찼다. 인터뷰가 끝났는데도 도무지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음식이라면 맛을 보지 않고도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시간을 내 두 셰프의 레스토랑에 꼭 다시 가고 싶다.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   장소 협조 시옷·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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