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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LIFESTYLE

스마트 공예

  • 2018-03-19

빠른 속도와 단순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에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그래서 가장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는 공예가 지금 변화의 국면을 맞았다.

1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리 조각품을 소개하는 잭 스톰스의 ‘Magik Chroma Cube Crystal Glass Sculpture’.
2 3D 프린터로 제작한 안성만 작가의 화기 시리즈.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화제가 된 영상이 하나 있다. 자극적이거나 코믹한 콘텐츠는 아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한 도예가가 천천히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이다. 그의 차분한 손놀림 그리고 작은 칼로 도자기의 점토층을 깎을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명상하듯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주었다. 도예의 매력으로 ‘힐링’ 키워드를 내세워 전 세계 수많은 인스타그램 이용자의 마음을 흔든 이 콘텐츠의 주인공은 일본의 도예가 하루야 아베(Abe Haruya)다. 그는 전통적 도예 작업 과정을 디지털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대중을 매혹시켰다. 결국 100K(10만 명)가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며 SNS 스타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유리공예가 잭 스톰스(Jack Storms)는 유튜브 채널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로 일반 유리를 절단하고 연마한 뒤 광학기기용 유리, 납유리 등과 결합해 유리 조각품을 완성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 영상을 찍어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한다. 다양한 색채를 품은 유리 조각품을 360도 회전하면서 보여주기 때문에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을 한층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과연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도예가 전하는 소박한 감동과 유리공예의 아름다운 빛깔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을까?
손으로 사유하고 손으로 형상을 빚는 공예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변화를 겪고 있다. 위의 두 사람처럼 미디어를 활용하는 공예가도 등장했으나, 현대 스마트 공예는 신기술을 접목한 제작을 위주로 발전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국내외에서는 3D 프린터와 CNC 가공 기술(기기에 수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가공하는 기술), 레이저 커팅 기법 등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공예가의 노고에 손을 보태고 있다. “알고 보면 공예는 여타 예술 장르와 달리 실용성을 전제로 합니다. 공예 자체는 각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기술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술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죠. 즉 공예는 도자기, 옻칠처럼 그 시대 가장 진보적인 기술과 예술가가 만나는 장르입니다. 그러니 디지털 기술 역시 공예품을 만드는 도구 중 하나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공예 전시를 기획한 박경린 큐레이터의 말이다. 그녀는 “3~4년 전만 해도 이런 기술을 도입한 것 자체가 화제였죠. 하지만 지금은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이를 활용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하는 추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CNC 가공 기술에 집중하다 지금은 3D 프린터를 다루는 일에 매료된 안성만 작가. “정밀한 가공이 필요한 도자기를 개발하는 데 일반적 공예 기술은 한계가 많았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 확률이 낮아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했죠. 그래서 다른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CNC 가공 기술을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CNC 기기는 고가의 장비였고, 미숙한 사용법으로 인한 잦은 고장도 문제였다. 그러던 찰나 비교적 비용이 저렴하고 3D 프로그램으로 모델링만 가능하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3D 프린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옹기토에도 제격. 자연스럽고 투박한 질감의 옹기토는 일반적 도자기 제조 기술로는 둥근 형태밖에 만들 수 없지만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사각 형태의 옹기 항아리도 만들 수 있다.




3 반듯하게 재단한 선과 면으로 조형적 형태미를 강조한 정용진 작가의 ‘작은 면을 가진 기물’ 시리즈.
4 CNC 가공 기술을 접목해 완성한 조용원 작가의 ‘와일드 웨이브’.
5 블루투스 스피커 표면에 오묘한 빛깔의 자개를 이어 붙인 최선호 작가의 ‘유니버스 스피커’.
6 테셀레이션의 아름다움을 SLS 방식 3D 프린터로 완성한 정령재 작가의 ‘테셀레이션’ 스툴.

이 마법의 프린터는 금속 조형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작은 면을 가진 기물’ 시리즈로 디지털 기술이 창작 도구 중 하나임을 증명해낸 정용진 작가. 금속의 우아하고 고운 빛을 품은 기물은 반듯하게 재단한 선과 면으로 구성해 조형적 형태미를 자랑한다. 준비 단계에서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팅 같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고, 제작 과정에서 전통적 용접 기술이나 최신 장비를 활용한 마이크로 용접 기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철재 특유의 재질을 살리기 위해 수작업으로 표면을 마감해 기술의 한계를 넘고 공예의 본질적 가치인 손맛도 함께 녹여낸다.
“3D 프린터를 처음 접했을 때 컴퓨터상의 수치로 이루어진 데이터가 입체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수공예의 돌파구라고 느꼈죠.” 기술적 유희를 즐기는 정령재 작가는 도형을 반복적으로 배치해 평면 혹은 공간을 완전히 메우는 방식인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의 아름다움을
SLS 방식 3D 프린터로 완성한다. 그가 선택한 SLS 방식은 나일론 파우더를 얇게 도포한 다음 레이저로 원하는 부분만 녹이고 굳히기를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것. 정밀한 작업이 가능해 섬세한 문양과 입체적 미감을 표현할 수 있다.
‘나무는 의도한 대로 조각하는 피조물이 아니라 속에 숨어 있는 본질을 드러내 우연의 미를 완성하는 뮤즈’라고 소개하는 목공예가 조용원.
단순한 형태에서 우러나는 나무의 물성을 효과적으로 살려내는 작업을 이어온 그는 올해 처음으로 ‘메종 & 오브제’를 통해 CNC 가공 기술에 도전했다. “저는 주로 손으로 작업하지만 이번에는 CNC 작업에 능통한 친구와 컬래버레이션을 했습니다. 손으로 불가능한 작업을 기계가 대신해주었죠. 하지만 마지막 공정에서 다시 손으로 매만져 목재 본연의 결을 살렸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웨이브’ 시리즈의 변주인 ‘와일드 웨이브’ 시리즈는 물결치는 듯한 표면이 한층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다.
작업 방식의 현대화를 넘어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의미로 공예에 접근한 최선호 작가도 있다. 공예의 본래 의미인 ‘실생활에 쓰임 있는 물건’에 집중한 그는 블루투스 스피커 표면에 오묘한 빛깔의 자개를 이어 붙인
‘유니버스 스피커’를 선보였다. 물론 작업 중에도 다양한 기술을 활용했다. 3D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고 캐드나 일러스트로 도면화한 후 CNC 기기로 집성목을 재단하는 과정을 거친 것. 그리고 탈착 가능한 전면부를 자개로 채워 현대 기술과 전통 기술의 만남을 표현했다.
젊은 공예가들은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 3D 프린터, CNC 기기, 레이저 기기 등을 옛날의 펜과 종이, 톱과 칼, 망치 같은 존재로 여긴다. 이들에게 하이테크는 자연스러운 툴인 셈이다. 이렇게 디지털의 수혜를 입은 지금의 공예는 본질적 가치를 보존하되 새로운 도구를 접목해 실용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공예를 낯설게 느끼는 요즘 세대에게는 친숙한 방식으로 다가가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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