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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SPECIAL

스마트폰에 의해 재매개된 세상, 그리고 위기의 현대 시각예술

  • 2018-03-06

자본주의의 상업적 실재 그 자체가 예술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 지금 스마트폰 시대의 현대미술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2015년 모마에서 열린 피카소 조각전엔 유례없는 수십만의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2007년의 아이폰(2G) 출시와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 우린 이 두 충격파 이후의 세계에 살고 있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생산성의 향상 없이도 금융과 투자를 통해 세계의 공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제동이 걸렸고, 이후 찾아온 기대 감소의 자본주의사회에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2008년의 쇼크 이후 문화 예술계에도 크고 작은 구조 조정이 있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관장이나 큐레이터 등 미술계 인사의 교체가 있었고, 새로운 리더들은 각자 형편에 맞는 응급 처방을 제안했다. 미술 시장의 거품이 붕괴했고, 중소 아트 페어 여럿이 망해 사라졌다. 투자 대상으로 손꼽히던 현대미술가 일군의 경매시장이 무너졌고, 한때 뉴욕 미술 시장을 지배한 연례 아트 페어 아머리쇼조차 점점 대중의 관심이 줄고 있다는 평이다. 프리즈 뉴욕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세계적으로 좀비포멀리즘(zombie-formalism)* 열풍이 일었으며, 새로운 추상미술을 둘러싼 과대 포장 광고는 2014~2015년경 정점을 찍고 해소됐다. 2008년 이후에도 초대형 미술을 추구하는 구시대적 프로그램은 여전히 지속됐지만, 미학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한편 유럽연합 출범에 관한 암스테르담 조약이 체결된 1997년 10월 이후, 미국식 다문화주의를 차용한 포용 정책과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이 유럽 곳곳에서 본격화되었다. 전 지구화 시대의 유럽연합에 최적화한 비전을 누가 먼저 제시하느냐에 따라 이후 10년의 패권 향방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1997년 4/4분기, 영국에선 찰스 사치가 자신의 yBa 소장품으로 구성한 <센세이션>전을 열었다. 그해에 프랑스에선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비평 전략서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을 출간했고, 1999년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생 미술 공간 ‘팔레 드 도쿄’를 공동 개관했다. 작품의 컨셉을 인간관계의 실천적•이론적 출발점으로 삼는 ‘관계 미술(relational art)’이 현대미술계용 비전이었다면, 현대 디자인계용 비전은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라비(Fiona Raby)가 주창한 ‘비평적 디자인(critical design)’이었고, 현대 공연 예술계용 비전은 한스-티에스 레만(Hans-Thies Lehmann)이 제시한, 극적인 상황을 나열하는 드라마에서 탈피한 ‘포스트드라마틱 시어터(postdramatic theatre)’였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통합 유럽의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한 다문화주의 정책은 2008년 이후 급속히 퇴행했다. 그로 인해 문화 예술계에 쏟아지던 공적 자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2008년 이후 유럽 문화계를 휘감은, 예술의 형태를 ‘관계’라는 개념으로 푼 관계 미술이나 비평적 디자인, 포스트드라마틱 시어터 또한 몰락을 맞았다. 그 빈자리를 한때 차지한 것이 좀비포멀리즘 계열의 추상미술이다. 하지만 좀비포멀리즘 계열의 추상미술도 10년의 전성기를 누리고 지금은 서서히 역사로 정리되는 중이다. 좀비포멀리즘 외에 ‘포스트-인터넷 아트’나 ‘포스트-시네마’ 등이 새로운 의제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5년을 넘기지 못했다. 여러 혼선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드러난 사실 하나가 있다. 2008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상징적 죽음을 맞았고, 이후 현대미술은 ‘오늘’임에도 ‘오늘’이 깨져버린 포스트-컨템퍼러리적(post-contemporaneity) 무시간성의 시공에 발을 내딛게 됐다는 점 말이다.






1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소비자-좀비’ 혹은 ‘정크-휴먼’으로 거듭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1997년 찰스 사치가 사치 갤러리에서 자신의 yBa 소장품으로 연 <센세이션>전 풍경.

2018년 현재,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문화 예술계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내세운 각종 응급 처방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지난 10년 사이 대두한 문제 또한 여전히 미결 과제로 남아 있다. 거대한 미결 과제 네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재현 불가능한 모습으로 유동하는 세계’다.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빠르게 소비되고 다시 빠르게 사라져버린다. 우리가 오랫동안 학습과 전시 관람을 통해 터득한 ‘미술적’ 눈으로 포착하려 하면 그 이미지는 이미 논의할 수 없는 ‘빈칸’이 될 뿐이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빠르게 소멸한다. 이렇게 ‘타임라인’처럼 흐르는 세계에 대응하는 비평적 창작의 체계를 만들고자 여러 예술인이 용을 썼지만 아직 대단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둘째는 ‘비평적 경험의 불모화’다. 화이트 큐브에 미적 경험의 과정을 작업으로 제시, 구현함으로써 관람객을 미적 고양으로 이끌고, 이를 통해 지적 성장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1934년) 등에 등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의해 재매개된 세상에서 ‘경험’은 더 이상 쓸모없게 됐다. 사실 현대미술이 상징적 죽음을 맞은 건, 현대미술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순수 공간으로서의 화이트 큐브에서 펼치는 전시와 이를 뒤틀어 만든 오프화이트 큐브 전시의 방법들이 불능화되어버린 것이 진짜 본질이다. 2015년 모마에서 열린 피카소 조각전이 ‘예외적으로’ 화제를 모은 이유가 뭐였겠나. 오늘날 소위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의 등장 덕에 ‘경험의 집합’을 조형하는 일로서의 큐레이팅은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문제를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의 등장 덕에 ‘여행을 통한 유의미한 경험의 축적과 이를 통한 성찰성 획득’의 기회가 감소하고, 독서나 전시 관람을 통한 지적•정신적 여행 또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연출된 ‘리얼리티 쇼적 리얼리티’와 진짜 리얼리티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펼쳐지기도 한다. 리얼리티 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의도치 않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지난해 김정남 피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이 일반화된 시대에 전시 관람이 어떻게 다시 예의 경험적 전시 관람이 될 수 있을지 묻기 전에 독서는 어떻게 다시 독서가 될 수 있을지, 여행은 어떻게 다시 여행이 될 수 있을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경험은 어떻게 다시 경험이 될 수 있을지 묻는 것이 옳을지도.
세 번째는 ‘실재성(리얼한 것)을 약속하는 리얼리티의 실종’이다. 2015년 1월 필자는 ‘인프라-리얼(infra-real)’이란 개념어를 새로 제시했다. 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매핑 이미지로 재현하는 스마트 기기 환경에서 ‘리얼함을 리얼리티하게 대체하는, 리얼리티를 본떠 만든 리얼리티’를 실재의 리얼리티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현대 시각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이 ‘실재성(리얼한 것)의 귀환’으로 행해왔다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자 ‘포스트-컨템퍼러리’ 같은 흐름에서 좀비포멀리즘적인 오늘의 시각예술은 ‘실재성(리얼한 것)의 부재’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재성(리얼한 것)을 약속하는 진짜 리얼리티의 실종은 ‘이미지-사물’ 혹은 ‘사물-이미지’ 같은 물질과 물질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신성(fetishism)과 20세기 현대미술에 표현된 숭고미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미술사학자들과 이론가들은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야기하는 숭고미가 순차적으로 사라진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숭고의 미적 경험을 회고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이미 그런 시대의 흐름 앞에 소진된 인간들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지속된다면 현대미술계는 어찌될까? 20세기에 추구한 현대적 인간의 이상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 아닐까?
네 번째는 ‘좀비적 스마트폰-사용자-인간의 탄생’이다. 모든 걸 포스트-컨템퍼라이즈하는 오늘날의 기본 특성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무감각한 소비자들이 ‘마케팅의 이름으로’ 시공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른 비사회주의적 경제체제인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를 위해 (재)디자인된 쇼핑몰적 도시화 공간이 문화적 불모를 야기하는 ‘좀비-도시’ 혹은 ‘정크-스페이스’(열화 복제본으로서의 소비주의 사회용 매트릭스 공간)를 양산했다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인 이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소비자-좀비’ 혹은 ‘정크-휴먼’으로 거듭났다. 그들의 넋을 빼앗는 역할은 소비 행위와 주기를 중심으로 재설정된 삶 그 자체와 사회 전역에 넘쳐나는 ‘좀비-오브제’가 맡았다. 좀비-오브제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20세기의 디자이너 오브제를 틈새 마케팅의 방법으로(단가에 맞춰 어설프게) 모사한(인간의 의도가 작용했지만 그 의도란 것도 좀비의 것이라 부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진짜’로 둔갑한 ‘가짜’ 상품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좀비-오브제는 개별적으로 보면 과거 디자인, 디자이너 오브제와 잘 구별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늘의 좀비-오브제는 대부분 별 고민 없이 만든 것이기에 존재 방식부터 다르다. 그것은 언제든 시장의 상황에 맞게 변형돼 새로이 싸구려 재료로 출력•출시될 수 있는 유동하는 이미지•사물 연속체로 퇴행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3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의해 재매개되는 세계에 최적화한 패션 산업을 보여주는 뮤지션 카녜이 웨스트.
4 나이키와 오프 화이트의 버질 아블로가 출시한 ‘더 텐’ 컬렉션.

뜻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포스트-컨템퍼러리한 오늘의 특성을 달리 표현해보자. ‘집 비스무레한 데서 살며 음식 비스무레한 걸 먹고, 옷 비스무레한 걸 걸친 채 책 비스무레한 걸 읽으며, 학교 비스무레한 곳에서 공부하고, 사람 비스무레한 존재와 교류 비스무레한 걸 시도하는 청년 비스무레한 젊은이가 직업 비스무레한 걸 구하는 데 도전 비스무레한 어려움을 겪는 시대 비스무레한 오늘의 풍요 비스무레한 빈곤.’ 좀비적 스마트폰-사용자-인간에게 정말 현대미술이 필요하긴 할까? (참고로 좀비적 재생 공간으로서의 초대형 화이트 큐브라는 신종 불모지 혹은 폐허를 비평적으로 리셋하며, 좀비적 스마트폰-사용자-인간에게 다시 휴머니티를 선사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전개해 성공을 거둔 작가는 아직 0명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2011~2012년 이후의 스트리트 패션에서 새로운 미래를 보기도 한다. 포스트-컨템퍼러리 패션으로 두각을 나타낸 스트리트 패션은 이제 예의 ‘스트리트 패션’이 아니다. 흔히 설명하듯 ‘하이패션이 된 스트리트 패션이 대세’라는 뜻이 아니다. 근본적인 ‘게임 체인저’라는 말이다. 뮤지션 카녜이 웨스트나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등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의해 재매개되는 세계에 최적화한 첫 번째 모델을 제시한 패션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팅-프로듀서이자 사업-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타임라인의 양태로 흐르는 세계, 즉 새로이 재매개된 스트리트 컬처의 트렌드와 결합해 ‘라이프스타일 레이어’를 끼워 넣은 아이템을 창조해내는 그들의 능력은 기존 디자이너들의 그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특정 요소를 아이템에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두 곡 이상의 노래를 합쳐 만드는 매시업이나 피처링 등 음악 산업의 그것과 가깝기도 하며, 기존의 것을 이전과 다르게 재구현•재맥락화하려는 전략은 흡사 현대미술가의 그것과 같다.
2015년 아디다스가 카녜이 웨스트의 ‘이지 부스트 750’을 앱 주문만 받는 방식으로 출시하면서 스니커즈 시장은 아예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나이키가 용이고 아디다스가 호랑이인 용호상박식 판도는 저물고 아디다스가 시대를 규정하는 진정한 승자로 단독 부상했고, 나이키는 추억을 자극해 한정판도 아닌 한정판을 내는 2인자가 됐다. 2016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두 회사의 주식 가치는 현재 그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단, 2017년 나이키는 버질 아블로와 협업해 ‘더 텐’을 발표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아디다스는 ‘이지 부스트 350 V2’의 색상 변주로 혁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2009년 스니커즈 페스티벌인 ‘스니커콘’이 출범했을 때 이미 근본적 변화가 예고된 셈이지만, 늙은 명가 나이키는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시장은 희소가치가 있는 한정 상품을 중심으로, 그것도 일반적 소비자가 아니라 종횡으로 족보를 꿰고 있는 2차 시장의 리셀러•컬렉터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다.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기대 감소의 시대에, 소위 ‘힙템’의 성격은 과거의 그것과 다른 무엇으로 거듭났다. 긴 이야기를 짧게 하면 2차 시장의 리셀러•컬렉터는 이제 현대미술계의 컬렉터와 마찬가지로 주요 플레이어 노릇을 하고 있다. 오늘날 ‘힙브랜드’의 운명은 그들과 함께 어떤 관계를 발전시키느냐에 달렸다.






작가 Sasa[44]가 지난해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전시한 작품 ‘갱생 Rehab 160116-170115’. 그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스니커즈를 수집하는 일을 작업으로 삼았다.

현대미술계의 2차 시장이 새로이 작품 수집에 뛰어드는 신흥 부호와 미술관 수장고에 안착하는 소장선 덕분에 무한히 성장해왔다면, 스니커즈를 비롯한 스트리트 패션의 2차 시장은 신발이나 옷을 신고 입는 소비자와 중국의 신규 리셀러•컬렉터 덕분에 무한히 성장하고 있다. 큰 차이가 있다면 후자가 훨씬 주기가 짧고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
이렇게 패션 분야가 현대미술의 어떤 특성을 흡수하게 된 배경엔 2000년대의 마지막 버블이 작용하기도 했다. 미술 시장이 불타오른 2004~2008년, 현대미술은 패션지의 지면에 일종의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패션계 신세대는 현대미술의 수법을 재빨리 캐치했다. 기회는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와 함께,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의 상황과 함께 왔다. 중국인의 명품 소비와 함께 구식 명품의 시대는 종막을 향하게 됐고, 기대 감소의 시대를 사는 스트리트 컬처 지향의 힙스터들은 무시간성 문화를 구축하며 후드 바이 에어, 베트멍 등을 ‘힙템’으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7년의 ‘루이 비통×슈프림’ 대란은 꽤 오래도록 흥미로운 지표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2008년 이후 패션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은 찾아왔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더니즘의 자산을 뒤틀고 재해석하는 일을 바탕으로 변주해온 넓은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그 방법론이 이제 유효성을 다하고 어제의 것이 됐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언제 죽었느냐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함께, 혹은 그 파장의 여파가 업계를 뒤흔든 2010년대 초반에 죽었다(2009년에 마틴 마르지엘라가 비즈니스계를 떠나고, 2011년 존 갈리아노가 몰락한 일은 어찌 보면 시대 변화에 의한 필연일지도). 그렇다면 컨템퍼러리 패션 이후의 패션은 무엇일까? 포스트-컨템퍼러리 패션을 규정하는 힘은 무엇일까? 2011~2019년의 게임 체인징 시즌이 지나고 나면, 즉 2020년대에는 어떤 본격적 변화가 대두할 것인가? 당신의 눈은 그 변화의 향방을 보고 있는가? 나는 현대미술의 일부를 완전히 대치해버릴, 패션 비즈니스 그 자체의 미학화와 예술화를 본다. 그렇다면 여타 인접 분야엔 어떤 변화가 닥치게 될까?



 

*좀비포멀리즘(zombie- formalism, 좀비형식주의)
21세기의 시점에서, 전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를 비평적으로 참조해가며, 화가의 직능을 성찰하는 새로운 미술의 논리와 방법을 창안해낸 결과를 뜻한다. 하지만 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 등 포스트모더니즘 세대의 비평가들은 좀비포멀리즘을 싸잡아 평가절하한 바 있다. 평론가 클레먼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등이 주창한 형식주의, 즉 매체적 성격에 부합하는 형식이 내용까지 결정짓는다는 전후 모더니즘의 논리를 그대로 재활용했다고 오해한 것.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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