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가의 식전빵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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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7

식도락가의 식전빵

식사의 시작이자, 레스토랑의 얼굴인 식전빵은 셰프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미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그만큼 다양해진 식전빵의 흐름을 짚어봤다.

1 더그린테이블의 브리오슈와 호밀 바게트.
2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BLT의 팝오버.
3 엘본더테이블의 곡물 바게트와 바질빵.

바게트와 크루아상이 테이블에 오른다. 베이지 톤의 색감, 노릇하게 구운 표면에 흐르는 소박한 윤기. 첫눈에 봐도 프랑스 밀가루로 구운 빵이다. 갓 구운 빵은 그 온기와 향미, 수분을 지켜줄 고운 면보에 싸여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쫀득한 바게트에서는 밀 본연의 구수한 향이, 크루아상에서는 식욕을 돋우는 진한 버터 향이 진동한다.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식전빵은 레스토랑의 첫인상이다. 빵을 중시하는 것은 한 끼 식사의 기본을 잘 지킨다는 의미다. 한식에서 밥을 잘 짓는 것과 격이 같다. 윤기 흐르는 쌀밥이 한식당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듯이 서양에선 빵이 그 척도가 된다. 미식가 사이에서는 빵 맛 좋은 곳이 요리도 맛있는 곳으로 통한다. 미슐랭 레스토랑 선정의 중요 기준 중 하나가 빵과 버터의 개수라고 말할 정도. 스톡홀름의 레스토랑 프란트센에서는 ‘빵과 버터’를 코스 메뉴에 넣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국내에서도 많은 레스토랑에서 빵 맛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직접 구운 특별한 식전빵을 선보이는 것은 기본, 빵에 곁들이는 딥과 스프레드에도 레스토랑의 철학을 담아내며 수준 높은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7개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전빵의 비법을 발견했다.


식전빵 굽는 셰프들

“최고의 프랑스 요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요리사 자크 페팽(Jacques Pepin)은 잘 구운 바게트에 버터 한 조각이라고 답했어요. 레스토랑에서 빵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례죠. 엘본더테이블은 더 좋은 식전빵을 내기 위해 독립된 베이커리까지 마련했어요.” 얼마 전 새롭게 리뉴얼한 엘본더테이블 본점을 총괄하는 노해동 셰프의 말이다. 엘본더테이블의 고소한 곡물 바게트와 향긋한 바질빵은 가까이 위치한 베이커리에서 전문가에 의해 1차 베이킹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바질빵은 우유를 넣어 반죽해 쫄깃함이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 해바라기씨, 참깨, 귀리, 현미 등을 넣은 곡물 바게트에서는 건강한 단맛이 느껴진다. 트러플 퓌레와 오일을 넣은 진한 풍미의 버터를 함께 내는데, 트러플 버터와 곡물 바게트의 조합은 단순히 식전에 제공하는 빵을 넘어 하나의 디시처럼 느껴지기도. 집에서도 엘본더테이블의 빵을 즐기려는 고객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온라인 주문을 통해 빵을 따로 판매하고 있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스테이크 하우스 BLT의 팝오버 역시 스테이크 못지않게 인기가 많아 그곳에서 식사한 고객에 한해 별도로 판매한다. 팝오버는 속이 빈 형태의 빵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달걀과 치즈의 풍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더그린테이블의 브리오슈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부활한 흥미로운 이력이 눈길을 끈다. “코스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빵의 종류를 줄였어요. 설탕과 버터가 많이 들어간 브리오슈를 빼고 담백한 호밀 바게트만 내기로 했죠. 그러나 브리오슈를 찾는 단골 고객의 요청이 이어져 다시 브리오슈를 내놓고 있어요. 대신 식빵 형태로 만든 예전에 비해 볼륨을 줄여 1인용 사이즈로 선보이고 있죠. 빵도 식사의 중요한 파트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한 계기였어요.” 김은희 오너 셰프의 말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에 등장한 바로 그 빵. 밀가루, 버터, 달걀, 설탕으로 만들어 유지가 많고 달콤한 빵인데 셰프는 기존 레시피보다 버터의 양을 줄여 느끼하지 않고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브리오슈를 완성했다.




4 포시즌스 호텔 서울 보칼리노의 치아바타와 마늘 스프레드.
5 서울다이닝의 발효빵에 곁들여 내는 브라운 버터와 라드. 6 파크 하얏트 서울 코너스톤의 천연 발표빵과 홈메이드 딥 소스.


딥과 스프레드로 맛의 변주를

빵에 곁들여 내는 딥과 스프레드도 맛의 차이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파크 하얏트 서울 코너스톤의 홈메이드 딥 소스는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투박한 스타일의 컨트리 스타일 빵에 상큼하고 풍성한 풍미를 더한다. 오븐에 구운 가지 속과 그릴에 구운 파프리카, 콩피한 샬롯과 마늘, 바질 잎과 모레스카 품종 100% 유기농 올리브 오일을 넣어 만든다. “빵은 식사의 첫 코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식욕을 돋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더욱 신경 쓰고 있어요. 딥 소스에 들어간 파프리카의 단맛, 레드 와인 식초의 신맛, 바질의 신선한 맛이 입맛을 자극해 식사를 더욱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게 하죠.” 총주방장 페데리코 에인스만의 말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보칼리노는 화덕에서 구운 따끈한 치아바타를 통째로 제공한다. 이탈리아식 바게트라 불리는 전형적인 식사빵이지만 마늘 스프레드를 더하면 한층 근사해진다. 마늘을 올리브 오일에 담가 약한 불에 4시간 동안 가열한 것으로 은은한 마늘 향과 함께 담백한 맛이 나며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는다. 취향에 따라 마늘을 통째로 빵에 올려 먹거나 수저로 으깨 발라 먹는다. 곁들여 내는 스페인산 ‘에스파뇰라 엑스트라 올리브 오일’이나 발사믹 식초를 찍어 먹어도 좋다. 총주방장 치로 페트로네는 “레스토랑에서 내는 빵은 ‘우리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죠. 빵은 식사 내내 옆에 머무르며 다른 요리를 보완해요. 빵이 맛없으면 다른 메인 요리도 충분히 즐길 수 없죠”라고 말한다.




레이지 쿠오레의 라바쉬와 후무스.

식전빵의 관습을 깨는 시도
그런가 하면 전혀 다른 차원의 빵을 선보이는 레스토랑도 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레이지 쿠오레는 특이하게도 아르메니아와 이란에서 주식으로 먹는 라바쉬와 후무스를 낸다. 박수엽 총괄 셰프는 식전빵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방지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고. “라바쉬는 납작한 형태로 이스트를 넣지 않고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워 만들어요. 가장 기본적인 맛 외에 고소한 향기가 나는 캐러웨이(caraway)와 참깨 등을 더해 3종의 라바쉬를 제공하고 있어요. 심심한 듯한 라바쉬를 보완하는 것은 병아리콩과 참깨 페이스트, 파프리카 등을 섞어 만든 후무스죠. 레몬 주스로 산미를 강조해 애피타이저로도 훌륭하고 와인에 곁들이는 간단한 안주로도 활용하기 좋아요.” 서울다이닝은 먹걸리 발효종을 이용해 담백한 발효빵을 내는데 함께 곁들이는 2가지 스프레드가 눈에 띈다. 무염 버터를 약한 불에서 갈색이 될 때까지 끓여 헤이즐넛 풍미를 더한 브라운 버터와 라드(lard)가 바로 그것. 김진래 셰프는 돼지의 지방인 라드는 빵의 고소함을 한층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돼지기름을 따로 먹는 일이 거의 없죠. 반면 북유럽에서 라드는 흔히 사용하는 식자재예요. 덴마크에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라드를 빵과 함께 내고 있어요. 질 좋은 돼지기름에 팔각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천천히 투명해질 때까지 녹인 뒤 체에 걸러 담아내요.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도 특색 있는 스프레드를 의도했죠.” 빵을 주식으로 먹는 프랑스나 미국 등지에는 식전빵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빵은 본래 코스 중간이나 요리를 먹고 남은 소스에 찍어 먹는 용도이기 때문. 서양과는 사뭇 다르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식전빵 문화는 흥미롭다. 레스토랑의 첫인상이자 셰프의 맛과 철학을 단번에 드러내는 하나의 코스로, 그 어느 곳보다 대우받고 있는 식전빵. 이제 레스토랑에서 식전빵을 만난다면 무심히 입에 넣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셰프의 의도를 음미해보길.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박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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