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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FEATURE

단 한 사람을 위해

  • 2018-02-27

3대째 한복의 정신성을 잇는 한복 디자이너 백옥수와 조진우가 말하는 진짜 한복.

마음까지 얼어붙을 것 같던 1월의 어느 추운 날, 신사동에 있는 ‘한국의상 백옥수’를 찾았다. 그곳은 한겨울 무채색의 바깥 풍경과 달리 마치 봄을 실내로 옮겨놓은 듯 형형색색의 온기로 가득했다. 갖가지 색을 입은 한복 천은 돌돌 말린 채 한쪽 벽면을 천장까지 빼곡히 채웠고, 책가도를 그린 병풍,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신구, 오래된 재봉틀과 곱디고운 색상의 치마가 사방에서 아름다운 색감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 사이로 3대째 가업을 이어온 한복 브랜드 ‘한국의상 백옥수’의 백옥수 원장과 조진우 대표가 취재팀을 반겼다. 어머니인 백옥수 원장은 2대째, 아들인 조진우 대표는 3대째 대를 이어 옷을 짓고 있다. 치수 측정부터 디자인까지 단 한 사람을 위해 짓는 맞춤 한복 브랜드 한국의상 백옥수는 공연, 국가 행사, 영화 이벤트, 화보 촬영, 패션쇼 등 다양한 이벤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공식 개막 공연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 보고회 의상 제작, 관객과 손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진행한 다산성곽길 패션쇼 ‘한복, 성곽을 걷다’, 이탈리아·홍콩·중국 대사관이 주관하는 행사와 프랑스 박물관 특별 초청 전시 등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한복 쇼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이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 트렌드 또한 놓치지 않는 백옥수·조진우표 ‘한복’에 깃든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풍부한 컬러 속에서도 단아한 기품을 놓치지 않은 백옥수의 한복에 둘러싸여 나눈 대화는 마치 이웃집에 놀러 와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인생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잔치나 결혼식 같은 좋은 날에 입는 한복을 지을 수 있어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는 두 사람. 이 시간,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사실은 잠시 내려놓고, 스승과 제자로서 한복의 부흥에 앞장서는 두 선후배 한복 디자이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의상 백옥수가 다산성곽길에서 개최한 패션쇼 ‘한복, 성곽을 걷다’는 관객과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장소에서 열렸다. 성곽이라는 장소도 신선했지만 관객과 더욱 가까이에서 시선을 맞추려는 시도가 호평을 얻었다.

조진우_ 워낙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한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어머니와 한복은 제게 거의 하나나 다름없어요. 언제부터 한복을 짓기 시작하셨어요?

백옥수_ 나도 어릴 때부터 자주 입어서 한복은 아주 친숙했어. 어머니께서 설날과 정월 대보름에 각기 다른 한복을 지어주셨거든. 시어머니도 안동에서 이름난 염색 장인이자 한복 장인이셨어. 천연 염색을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천과 염색에도 매력을 느끼게 됐지. 남에게 맡기면 내가 직접 염색한 하나뿐인 옷감이 혹여 상할까 직접 바느질까지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 너와 네 누나를 키우면서도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는데, 아이들 옷을 예쁘게 입히면 기분도 좋고 스트레스도 풀리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보라는 권유도 자주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선 것 같아.

조진우_ 맞아요. 어릴 때 어머니께서 손수 옷을 지어주셨죠. 늘 집에 한복이 있었고, 아름다운 옷감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 멋진 한복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옷을 입고 가면 학교 친구들도 다 예쁘다고 했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패션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백옥수_ 처음엔 남자가 의상을 공부한다는 말에 내심 걱정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진우_ 어머니의 지지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대학에서는 서양 복식을 전공했는데도 점점 한복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거든요. 오래된 유물에 깃든 아름다움은 후대에도 여전히 큰 감동을 주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대학원에서 전통 복식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KBS 방송국 의상실에서 일하며 마주한 사극용 전통 복식도 한몫한 것 같고요. 그렇게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본격적으로 한복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죠. 하지만 그런 정신은 결국 어머니께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께서 지금은 짤 수 없는 희귀한 원단, 궁중 복식 같은 옛날 옷이나 장신구를 많이 소장하셨잖아요. 제 주변에 오래된 오브제나 의복이 항상 있었고, 그런 것이 모여서 어머니도 저도 좋은 한복을 만들 수 있는 자산이 됐다고 생각해요.

백옥수_ 옛 오브제를 모은 지 꽤 됐지.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거든. 실제로 수백 년 전 의상도 있고, 구하지 못하면 박물관에서 보고 철저히 고증하기도 해. 나중엔 다 모아서 박물관을 열고 싶어. 하지만 너도 나만큼이나 오래된 걸 소중히 아끼잖니. 늘 옛것을 가까이 두고 살아서 그런지 항아리나 바가지 같은 오래된 물건도 좋아하고, 고서적을 수집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칭찬하고 싶을 때도 있어. 요즘 젊은이 중에는 옛것을 지키려는 사람이 흔하지 않거든.

조진우_ 맞아요. 제 디자인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법고창신’이에요. 옛것을 참고해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뜻이죠. 옛것의 소중함을 염두에 두어야죠. 또 우리 의복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그 모양과 디자인을 많이 보고 공부해야 새로운 옷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시대와 어울리도록 색감이나 소재에 변화를 주더라도 한복의 기본 형태와 정신은 지켜야죠.

백옥수_ 맞아. 하지만 한복도 흐름이란 게 있으니까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의 트렌드도 파악해야 해. 때에 맞는 경향을 미리 인지하고 앞장서야지. 한복을 지으러 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한복을 짓기 위해 사람들이랑 마주 앉아서 뭘 좋아하는지, 어떤 한복을 원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하니까 그때그때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






조진우_ 옛 정신을 지키면서 최신 흐름을 놓치지 않는 어머니가 참 존경스럽고 신기해요. 그런데 옷을 지으러 오는 사람 중엔 한복을 어떻게 입고 배색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서양 복식에 비해 한복을 입을 기회는 거의 없으니까요. 한복은 배색에 따라 느낌이 달라서 개인에게 어울리는 고유의 색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무채색에 익숙한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원단을 보면 어색해해요. 아이들은 좋아하지만요. 그럴 때 어머니는 어떻게 하세요?

백옥수_ 옷을 지을 때는 입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색을 쓰는 것이 기본이야. 개개인의 얼굴이 다르듯 저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컬러를 골라야 해. 하지만 눈으로 본 원단과 완성한 옷은 완전히 다르니까 옷을 입을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꾸준히 원단을 보여주면서 설득하지. 맞지 않는 컬러를 고르면 디테일을 살려 보완하기도 하고.

조진우_ 배색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옷을 지을 수 있는 것이 한복의 매력인데, 후배 디자이너로서 봐도 어머니는 색감을 선별하는 능력과 안목이 탁월해요. 개인에게 어울리는 색을 척척 고르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도사 같다니까요.

백옥수_ 컬러는 내 자부심이야. 염색하지 않은 백단을 내가 다 직접 염색해. 물론 공장에 맡기면 쉽지만 그렇게 하면 ‘백옥수’가 아니지. 그래서 만들 수 있는 한복 수도 몇 안 돼. 염색을 하거나 색깔을 고를 땐 계절을 염두에 두곤 해. 초록빛 나뭇잎에 단풍이 들 때까지, 연분홍 꽃잎이 붉은색이 될 때까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색깔을 떠올리기도 하고, 되도록 계절에 어울리는 컬러로 염색해. 각자 옷을 입을 때도 계절에 맞게 입어야 하거든. 사람들은 보통 한복 한벌로 사계절을 나는데 난 꼭 계절에 맞게 입으라고 권해.

조진우_ 예전에 한복집이 많을 땐 원단 회사의 카탈로그에서 정해진 색깔을 고르기도 했다면서요? 주단집이나 포목집처럼요. 그래도 한복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어머니 말씀대로 사람마다 일일이 치마, 고름, 저고리의 색을 고르고 각자에게 맞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옥수_ 색깔은 물론이고, 모양이나 문양도 마찬가지야. 얼굴이 작은 사람, 목이 긴 사람 등 체형이 다양하니까 깃 모양이나 진동선을 다 달리해야 해. 한복은 양복처럼 몸에 딱 맞는 형태가 아니고 풍성하게 몸을 둘러싸니까 과거엔 상대적으로 저고리를 대충 만들기도 했대. 하지만 각자의 몸에 딱 맞게 지어야 제대로 된 한복이지. 저고리를 타이트하게 맞추고 치마는 풍성하게 만드는 게 좋아. 생활 한복이 아니라 어쩌다 입는 예복이니까 멋스러워야 해. 한복은 옷 자체로만 보면 평면적이고 직선적이지만, 그만큼 사람이 입었을 때 특유의 입체감과 공간미를 표현하는 매력이 있어. 그 점을 옷에서 잘 드러내면 좋지.

조진우_ 개인 맞춤옷뿐 아니라 무대의상이나 패션쇼 의상도 많이 만드시잖아요. 그럴 땐 어때요?

백옥수_ 가장 염두에 두는 건 공연을 올리는 시기나 노랫가락에 맞추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해서 영감을 얻지. 그리고 무대의상이라고 무조건 화려하게 만들진 않아.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옷을 추구해. 물론 시스루 원단으로 치마를 만들거나 치마를 가닥가닥 찢어서 풍성하게 만든 적도 있어. 당시엔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어느새 유행하더라. 내가 시조가 됐지. 하지만 그럴 때도 한복의 기본 형태는 지키려고 노력해.






1 2014 한민족 디아스포라 행사 기념 한복 쇼에서 한국 고유의 멋이 살아 있는 한복을 선보였다.
2 백스테이지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조진우 한복 디자이너.

조진우_ 어머니 말씀을 듣다 보니 작년에 제가 참여한 한국공예진흥센터의 ‘한복 개발 프로젝트 쇼’ 무대가 기억나요. 저도 한복의 원형은 그대로 두되 약간만 변형했어요. 제가 옷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가끔 쇼 무대나 패션 화보에선 독특한 디자인을 할 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복의 형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어요. 그래야 한복이 양복이나 다른 의상과 만났을 때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해요. 한복도 아니고 양복도 아닌 옷을 만들면 오히려 임팩트가 없어요.

백옥수_ 내 생각도 그래. 우리 고유의 한복을 억지로 변형하고 싶지는 않아. 무대의상을 만들 때만 약간 변화를 주지.

조진우_ 요즘 고궁에 가면 한복을 입은 사람이 전보다 많아졌잖아요. 어머니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입는 한복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옥수_ 그건 생활 한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퓨전 한복이야. 그런 한복에 대해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컬러나 디자인이 한복 고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거든. 전통 치마의 길이를 짧게 하고 저고리 길이를 조금 늘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기존 한복의 틀을 지키면서 입어야 해. 한국 옷도 아니고 일본이나 중국 옷이라고도 할 수 없는 옷을 보면 속상할 때도 있어.

조진우_ 저도 어머니처럼 사람들이 이왕이면 올바른 방식으로 입길 바라죠. 하지만 한복을 등한시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요즘같이 한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현상엔 찬성해요. 퓨전 한복을 만든 사람들도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을 연구했을 거예요. 편하게 입고 관리하기 쉬운 옷을 만들려고 고민했겠죠. 그런 걸 생각하면 아직까지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바른 한복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저나 어머니 같은 한복 디자이너가 더 열심히 활동해서 제대로 보여줘야겠죠. 한복 자료를 정리하고 체계화한 콘텐츠도 많이 생기길 원하고요.

백옥수_ 한복을 짓는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한복을 만들기보다는 기본을 지키라고. 한복은 우리 고유의 복식이고 소중한 문화유산이잖아. 지금 우리가 짓는 한복도 후대에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으니 정확하고 신중하게 만들어야지.

조진우_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신이 만드는 옷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천지 차이예요. 한복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해요. 제 후배들을 보면 한복을 파격적으로 응용해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도 있지만, 한복의 전통과 제작 방식을 자세히 알고 만들기를 바라죠. 한복 고유의 원형이나 독보적인 요소를 억지로 현대화할 필요는 없어요. 한복을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 세련된 감각을 더하면 전통과 현대, 미래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겠죠. 꼭 한복 자체를 변형한다기보다 한국에 대한 느낌이나 한국인만의 감성을 표현한다면,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이고 미래적인 한복이 탄생할 거예요.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  장소 협찬 한국의상 백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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