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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ARTIST&PEOPLE

나만 바라봐

  • 2017-12-04

소리 환경 장치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후니다 킴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다. 심지어 작품 속에 들어가는 전자회로기판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마치 그것만 바라보라는 듯이.

작품뿐 아니라, 그것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자회로기판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탐구하는 후니다 킴.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치곤 작품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어요. 왜 그런 건가요?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작품 발표를 거의 안 한 편이에요. 그동안 작업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죠. 사실 작품을 보여주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어요.

한국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사운드 아트를 공부했습니다. 두 분야가 다른데, 왜 조각 공부를 계속하지 않으셨어요? 대학 3학년 때 흥미를 잃었어요. 조각뿐 아니라 미술 분야 자체에 대한 재미를 잃었죠. 미술이 그들만의 잔치고, 제가 그 안에 갇혀 있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일본에 가 전혀 다른 분야인 사운드 아트를 공부하신 건가요? 중간에 웹 디자인에 빠진 시기도 있었어요. 몇 년 동안 본격적으로 했고, 해외 매체에도 여러 번 소개됐죠. 하지만 그것도 시시해져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어요. 사운드 아트는 거기서 만난 선생님을 통해 시작했어요. 이전에 웹 디자인을 하며 익힌 사운드 믹싱 작업을 응용해 새로운 소리를 녹음하고, 그걸 편집해 제가 만든 웹 플래시를 바탕으로 공연하며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얘길 해보죠. 현재 자신의 작업을 “청각과 촉각을 중심으로 한 소리 환경 장치를 제작, 설치와 퍼포밍을 통해 공기를 ‘소조’해 새로운 생태계를 생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어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보통 ‘조각’이라고 하면 물리적 조각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공기’를 조각하고 있어요. 저를 ‘공기 조각가’라고도 소개하죠. 여러 레이어로 계속 덩어리를 만들어 그때그때의 상태에 따라 최초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을 ‘소조’라 한다면 저는 소리를 통해 공기 중에서 그 작업을 해요. 소리는 공기가 있어야 흐르잖아요. 가까이에서 나온 소리가 크게 들리고, 멀리서 나온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도 그런 원리 때문이죠. 하지만 퍼포머가 그것(소리)을 들고 어느 한 공간에서 움직인다면 그 레이어가 바뀌는 거죠.







후니다 킴의 전자회로기판들.

소리의 근원인 장치의 위치를 바꿔 그것이 다르게 들리게 한다는 개념인가요? 아니요.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개념이에요. 이전에 만든 ‘사운드스케이프 아파라투스(Soundscape Apparatus)’라는 장치를 예로 들게요. 제가 만든 그 장치에서 소리를 내보내면, 거기서 나온 소리와 그것이 어딘가에 반사되어 들리는 소리가 레이어를 이뤄 귀에 들어가게 돼요. 소리가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 음악을 스피커로 듣는 것과는 다르죠. 제 소리는 통합되지 않고, 따로따로 공기 중에 흐르다 머릿속에서 비로소 완성돼요. 어디에서 어떻게 퍼포밍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다른 ‘그림’을 보게 되는 개념이죠.

소리도 직접 만들지만, 장치 속 전자회로기판(이하 기판)도 전부 직접 디자인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만난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왜 보이지 않는 기판에 그렇게 신경 쓰는 건가요? 각 회로를 잇는 선의 테두리도 디자인하고 들어가는 부품도 전부 빨간색, 노란색 등 색을 맞추었더라고요. 그래 봐야 기계장치 속에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는 것들인데. 기판에 색을 넣고, 디자인도 하는 건 전에 물리적 조각을 하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기판 자체를 조형 언어로 보는 거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기판 작업이 제 작업에서 ‘원자적 요소’의 개념과 사물이 아닌 환경 그 자체를 생성하는 데 있어요. ‘미디어를 만든 미디어’로서 기판을 보는 거죠. 비록 겉면에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그 안의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 그 안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무슨 뜻이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물질’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고 있어요. 기술이 발전해 이전에 크고 복잡하던 것들이 점점 작고 단순해지고 있죠. 언젠가는 대부분이 아주 복잡한 구조의 디지털 ‘신호’만으로 존재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최초로 담을 물리적 공간도 필요하죠. 그게 ‘기판’이에요. 전 그걸 ‘디지털 토지’라고도 해요. 현재 저만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이것을 설계하고, 그 안에 각 요소를 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죠. 그럼으로써 좀 더 제가 구상하는 생태계의 조작이 수월해질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존재하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들을 시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간 발표한 몇몇 작품에서 내부의 기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결국 그런 이유겠군요? ‘내가 이 안까지 예쁘게 만들었으니 꼭 봐줘’ 같은 거요. 그렇죠. 점점 ‘블랙박스화’되고 있는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거죠.

블랙박스요? 어떤 기계가 고장 나서 뜯었는데, 당최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 같은 거예요. 일례로 스마트폰의 기능은 점점 좋아지지만, 어떻게 그 안에서 우리의 명령이 여러 신호체계를 거쳐 실행되는지는 알지 못해요. 옛날엔 선풍기가 고장 나도 뜯어서 조금만 만지면 고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나요? 이전의 칩들이 더 간단하게 블랙박스화 되어 고칠 수 없는 거죠. 저는 이런 개념을 ‘폴더 속 폴더’라고 불러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폴더가 쌓이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활도 불편해질까요? 기술이 발전해 작은 칩이 등장했는데 그게 고장 났다면, 이전보다 발달한 기술로 고치면 되잖아요.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칩이 점점 작아지고, 그런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의 두려움에 대한 거예요. 앞으로는 예전과 달리 과학 따로, 수학 따로 습득하는 게 아니라 모든 미디어가 통합된 메타미디어(meta media) 중심의 사고가 필요한 시대로 더 빨리 접어들 테니까요.







후니다 킴의 전자회로기판들.

기판 속 다양한 회로나 전자신호를 설계하는 건 언제 배우셨어요? 그건 이전의 조각이나 사운드 아트 작업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잖아요. 일본 유학 당시 미디어 아티스트와 전자공학을 전공한 친구들과 협업하며 배웠어요. 하지만 제가 그것에 대해 잘 모르니까, 마치 웹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싸우듯 자주 싸웠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선 저만의 작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직접 해야겠다 생각하고 죽어라 매달렸어요. 처음엔 공대생 한 명과 협업해 그 친구가 80%, 제가 20% 정도로 작업하다 나중엔 70% 대 30%, 60% 대 40% 정도까지 따라잡았죠. 지금은 제가 80%를 해요.

어쨌든 우리는 지금 몇몇 작업의 기본이 되는 기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언젠가 기판 그 자체만으로 전시를 하거나 오브제로 선보여도 좋을 것 같아요. 조형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실제로 작동까지 하잖아요. 사실 그 부분을 고민하기도 했어요. 기판 작업은 ‘공기를 소조해 새로운 생태계를 생성하는’ 제 작업에서 원자 요소가 되는 개념이라, ‘이야기’로는 존재해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한정될 수밖에 없거든요. 아카이브 전시라면 선보일 수 있겠지만, 이전의 제 작업에선 그 이야기가 아주 밑단에 있는 거라서요. 하지만 그걸 선보이고 싶은 욕구는 분명 있어요.

혹시 그런 욕구가 ‘오케스트라 주얼리(Orchestra Jewelry)’ 같은 작품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요? 물론 당시에도 기판이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뭔가 ‘블랙박스화’를 거부하는 듯한 커다란 반지를 선보였잖아요. 아마 소리도 났죠? 맞아요. 지난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미래의 공예’를 제시하는 카테고리에 전시했죠. 사실 오브제로 활용해도 좋을 만큼 공예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실제론 자신을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이용해 ‘청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갖춘 주얼리였죠. 주얼리라는 게 보통 시각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물체잖아요. 하지만 그 작품은 손가락에 끼워 악기처럼 연주도 가능했어요. 그걸 착용한 여러 사람이 모이면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도 할 수 있죠. 아직 작품의 내부에 있는 배선이나 회로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앞으로 몇 년 후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마치 누드 스킨을 입듯, 안의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제 이야기를 슬슬 정리할까 해요. 오늘 제가 만난 후니다 킴은 관심 분야도 폭넓고, 실제 하고 있는 작업도 많고,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은 더 많은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이가 되길 원하세요? 제 작품을 접한 이에게 관점의 전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또 겉으론 명료한데 안으로 들어 갈수록 복잡한 작업, 마치 호리병 같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그간 그렇게 살기도 했고요. 프로토타입은 엄청 만들지만 겨우 단순한 ‘정사각형’이 나오고, 과정은 엄청 복잡하지만 결국 나오는 건 하나고….

여기 오기 전, 한 작가가 국내에 후니다 킴 같은 작업을 하는 이는 후니다 킴밖에 없다고 말해줬는데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요?(웃음) 앞으로 당신의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11월 16일에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그룹전이 있어요. 싱가포르 작가들이랑 제가 개인 작업 외에 몸담고 있는 프로토룸(Protoroom)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전시고, 개인전은 내년 6월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려요.

 

후니다 킴
서울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사운드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공부했다. 가나아트스페이스의 <사운드 아파라투스 시리즈 H_01>, 아트스페이스우정국의 <사운드 아파라투스 시리즈 ‘작곡’>, 도쿄 세보(Sobo) 갤러리의 등에 참여했고, 2014년부터 개인 작업 외에 김승범과 함께 프로토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자회로기판(PCB)
후니다 킴이 설치와 퍼포밍을 통해 공기를 ‘소조’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때, 작동하는 작품 속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 아직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몇몇 작품에선 의도적으로 몸체의 일부를 노출하기도 했다. 최근 ‘오케스트라 주얼리’ 같은 작품을 통해 전면에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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