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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ARTIST&PEOPLE

더 나은 세상의 기원

  • 2017-12-04

아름다움이 규격화되고 수많은 선입견에 갇힌 시대, 김두진 작가는 모든 것을 초월한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가 말하는 예술다운 예술은 무엇일까?

리안갤러리 개인전 <대지>에서 사슴 뼈를 이용한 작품에 새로운 유토피아를 담아낸 김두진 작가.

김두진 작가는 동화, 애니메이션,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 영역의 이미지는 물론 서양 미술사의 명화 속 장면을 차용해 등장인물을 해골 이미지로 변화시킨 디지털 회화를 선보여왔다. 성, 종교, 외모의 이분법적 사고를 전복시켜 차별이 사라진 동등한 인격체를 그린 것. 11월 2일부터 12월 16일까지 리안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대지(Earth)>에는 선입견을 초월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담아낸다. 신작 작업이 한창인 김두진 작가를 만나 그가 꿈꾸는 예술에 대해 들어보았다.











낯선 세상에서 비자 카드처럼 합법적으로 갱신해야 하는 삶을 표현한 작품 ‘Two Blind Mickey Mouse Need a Visa to Arrive a Strange Planet’.

서울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신체 이미지를 담은 접시를 진열한 영상 설치 작품 ‘잔인한 장식장’을 선보였습니다. 성, 종교, 외모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저항하는 지금의 작업에 단초를 제공한 듯 보입니다. 제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남성을 사랑하는 게 비정상으로 느껴졌고, ‘내가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죠. 육체와 정신의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제 몸을 해체해 재배치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성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자 우리가 미와 추,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시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선보인 ‘게이의 방’, ‘사랑하는 사람의 체액은 생크림보다 달콤하다’ 등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습니다. 성 소수자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그들도 이성애자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부정하기보다 화해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이미지를 차용한 영상 작품 ‘No Place Like Home’을 통해 성 정체성에서 시야가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물론 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작업 주제로 삼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중은 본인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쉽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꺼리더군요. 그때 예술가로서 내가 취하는 작업 방식에 대해 자문하게 됐어요.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이 관심을 기울일 보편성을 지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가족을 따뜻하고 애틋한 존재로 묘사하는데, 현실에서는 일부의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을 그린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선택해 도로시의 다리 부분을 자른 영상을 편집해 만들었죠. 영화에서는 도로시가 신고 있던 마법의 구두 굽을 경쾌하게 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제가 만든 영상에서는 느릿하게 같은 장면만 반복됩니다. “집만 한 곳이 없다”라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내 가족의 모습은 어떤지, 우린 가족의 이미지를 하나로 규정지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5-Blur Blur Blur’, ‘Two Blind Mickey Mouse Need a Visa to Arrive a Strange Planet’ 등의 작품에서 디즈니 만화와 같은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상투적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현명한 방법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보다 일반적으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미지를 비트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성, 인종, 외모의 껍질을 제거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 ‘바쿠스의 젊음’.

‘해골’ 시리즈에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종교, 인종, 성을 초월해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기엔 해골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서울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영상 ‘잔인한 장식장’(1998년)에서 신체를 분절시키고 파편화하는 데 그쳤다면 ‘해골’ 시리즈에서는 아예 피부(껍데기)를 제거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정보를 없애는 데에 주력했어요. 아름다움이 하나의 권력이 된 시대에 피부 없이 뼈만 남는다면 차별할 근거도 사라지니까요.

회화·설치·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고전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3D 디지털 페인팅으로 ‘해골’ 시리즈를 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먼저 제가 고전 명화에 주목하게 된 이유를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외피를 제거한 해골과는 상반되게 인간의 피부를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표현한 매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바로 회화더군요. 그중에서도 신고전주의를 표방한 프랑스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작품이었습니다. 서양인의 몸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 묘사했거든요. 의미와 형식을 전복시키기 위해 가장 고전적 매체인 회화와 대비되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제 의도를 적절히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준비 과정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서양 회화를 전공했으니 가장 익숙한 매체는 회화죠. 하지만 작업의 발전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새로운 매체를 익히고 배워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1년 노암갤러리의〈skin〉전에서 처음으로 ‘해골’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전시를 위해 2009년부터 라이트웨이브와 같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 ‘No Place like Home’.   2 심리적인 대칭의 공포와 동성애의 공포를 결부시킨 작품 ‘Symmetrophobia’.

단순한 ‘3D 프린팅’이 아닌 ‘디지털 페인팅’으로 명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바탕으로 한 회화와 조각, 사진 기술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고전 명화의 이미지 구조를 모델링해 조각처럼 형태를 만든 후 질감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결국 작품의 정체성은 페인팅으로 봐야 옳겠죠.

11월 2일부터 12월 16일까지 리안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시 <대지> 이야기를 해보죠. 이번에는 전시 제목처럼 땅에 주목한 건가요? 대지는 생명과 소멸이 교차하는 공간이잖아요. 사람의 뼈도 결국엔 삭아 흙이 되고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순수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반복이 아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예전 ‘해골’ 시리즈가 엑스레이를 연상시키는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전시 작품은 사실적이고 비교적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땅에서 막 뜯어낸 현실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에도 공을 들였어요. 실제 땅의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으니까요. 정적이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은, 입체적이지도 평면적이지도 않은 중간 단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사람 뼈가 아닌 동물 뼈, 그중에서도 사슴을 선택한 의도가 있을 텐데요. 초식동물 중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식동물 뼈도 이용하긴 했지만 주로 사슴 뼈를 사용했어요. 가장 나약한 존재가 강자인 육식동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죠.

이번엔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작품이 아닌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Bacchus’, ‘Dying Slave’ 등을 레퍼런스로 이용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남성, 그중에서도 백인 남성을 가장 멋있고 이상적으로 그린 작가예요. 현재의 백인 남성 중심 사회가 아닌, 모든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열린 사회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미천하다 여기는 동물 뼈를 이용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죠.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3 관훈갤러리 그룹전 <로고스와 파토스>에서 선보인 작품 ‘We were Born with Them’.
4 선과 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Hey! Honey, Look at Me Tender’.
5 미켈란젤로의 환조를 차용한 작품 ‘Bacchus’.

모든 차별이 사라져 순수하게 공생할 수 있는 중성의 세계를 표현한 건가요? 이 세상에서 차별받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인 거죠.

늘 작품에서 소외된 이를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역할 아닐까요?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하는 일이 지금 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어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그런 사명감을 가지길 희망합니다. 현재는 자본주의 중심의 사회지만 결국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거잖아요. 권력마저 자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세상, 순수한 대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새 등 조류의 동물 뼈를 이용해 ‘대지’ 시리즈를 발전시켜볼 생각입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흙, 물, 불, 공기 4원소를 표현하는 것이죠. 한 명이 아니라 다수가 등장해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피에타’가 다음 전시의 예고편이에요. 고전 명화 ‘피에타’의 모자 관계처럼 인간의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할 거예요.



 

김두진
1997년 관훈갤러리 그룹전 <로고스와 파토스>로 데뷔한 김두진은 1999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2004년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1년 노암갤러리 개인전〈skin〉을 비롯해 선컨템포러리,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선보였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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