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DECEMBER. 2017 SPECIAL

뉴 뮤지엄 개봉 박두!

  • 2017-12-08

수많은 공립 미술관 개관 계획을 밝히고 있는 요즘, 미술관이 갖춰야 할 바람직한 모델을 찾는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관 흐로닝어르 뮤지엄.

국내 미술관의 역동적 변화
2008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흐로닝어르 뮤지엄(Groninger Museum)을 찾았다. 1994년 개관한 흐로닝어르 뮤지엄은 세계적 명성의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과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asndro Mendini), 건축가 쿱 히멜블라우(Coop Himmelblau)가 설계한 화려하고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잠시 위치가 헷갈려 행인에게 미술관 가는 길을 물었다. 상세한 설명을 해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우리 동네에 미술관이 있나요?” 인구 20만이 조금 넘는 도시인데 사람들이 미술관의 위치를 모른다니! 세계 어디를 가나 미술관은 여전히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의 위상과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미술관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물론, 복합 문화 공간이자 평생 교육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그 전에 근대 이후 국내 미술관 정책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한국은 1946년 덕수궁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맞춰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을 설립하고,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후 박물관법 제정, 1991년이 돼서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개정해 미술관을 운영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 각 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8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국민의 정부 새문화관광정책’에 따라 1도 1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그 수가 증가했다. 2004년부터 시행한 이 정책은 공립 미술관 건립 시 총사업비(부지 매입비 제외)의 30%를 국가가 보조한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효율적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을 확충, 운영하기 위해 제정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민간 지원을 받아 공립 미술관을 건립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영향으로 2007년 103개였던 전국의 미술관은 2016년 219개로 대 폭 증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발표한 ‘국립현대미술관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21세기 미술관은 질적 성장, 긴밀한 지역사회와의 협력 등을 지향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먼저 전라남도는 2019년 1월 개관을 목표로 광양시에 전남도립미술관을 건설중이다. 광양을 낙점한 이유는 국내 주요 아트 페어로 성장한 광주비엔날레와 대규모 문화시설인 아시아문화의전당을 갖춘 광주광역시와 비교해 문화시설이 낙후하다는 광양 시민의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 물론 여수와 순천 등 도내 다른 도시와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2015년 7월 최종 후보지로 확정되었다. 사업비는 부지 매입비 외에 건축비 400억 원, 작품 구입비 50억 원 등 450억 원이 투입될 예정으로, 최근 특별교부세 23억 원을 추가로 행정자치부에서 지원받았다.
전남도립미술관처럼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미술관 유치에 적극적이다. 강원도는 2006년부터 10년 넘게 도립 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울산광역시는 드디어 시립 미술관 건립을 확정지었다. 2020년 12월 개관을 목표로 사업비 734억 원이 투입되는 시립 미술관은 울산 중구 북정동 옛 울산초등학교와 중부도서관 일대 6000㎡에 지하 3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로 들어설 예정이다. 얼마 전 부산현대미술관도 2018년 6월 개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착공 지연과 준비 부족으로 개관이 계속 연기됐지만 최근 개관전을 비롯한 운영 계획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차별되는 오늘의 미술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2017년 SeMA 창고에서 열린 <예술가 길드> 행사 전경.

미술관의 존재 이유와 미래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미술관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2015 문화예술정책백서>에 명시했듯 문화 예술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갈 창의성과 다양성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순수한 예술의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미술관 개관을 추진 중인 강원도와 전라남도 등의 지역 신문 기사를 보면 “충분한 문화 예산을 확보해 미술관을 짓는 것은 결국 도시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 어느 누구도 중앙정부가 강조하는 창의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위해 박물관 건립을 주장하진 않는다. 아직도 한국에는 지역 미술인의 입김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자치단체장의 의지로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는 시스템이 고착화돼 있다. 그 이면엔 박물관 유치로 지역 발전을 이뤄 내가 사는 도시가 고품격 주거 지역으로 변모하길 바라는 열망이 깔려 있다. 운영 실적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2016년 4월 연합뉴스 기사에는 ‘하루 관람객 겨우 수십 명’, ‘혈세 먹는 하마’,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박물관 설립에만 치중’ 등 전혀 낯설지 않은 문구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21세기 미술관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앞서 언급한 ‘국립현대미술관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 연구’에서는 21세기 미술관의 특징을 이렇게 밝혔다. “21세기 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집, 보존, 연구, 관리에서 활용, 공개에 집중한다. 회화, 조각 등 기존 장르의 소장품을 이용한 전시 공간에서 퍼포먼스, 패션, 디자인 등의 영역으로 확장한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변화한다. 확장된 문화 콘텐츠는 감상의 영역이 아니라 체험, 해석, 소통의 영역으로 바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전시 및 교육 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국내에서 21세기 미술관을 지향하는 박물관으로 간송미술관이 있다. 1938년 설립한 한국 최초의 근대 사립 미술관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성북동의 아담한 전시장에서 1년에 단 두 번 소장품을 소개해왔다. 그렇게 연구와 보존에 치중해온 간송미술관은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소장품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고 활용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전환 중이다. 2014년부터 2년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각기 다른 주제의 소장품 전시 <간송문화전>을 열었고, 앞으로 2년간 DDP에서 간송 소장품과 현대미술 작품, 패션 같은 다른 예술 분야와의 만남을 통해 소장품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할 예정이다. 간송미술관이 세운 중요한 계획 중하 나는 바로 대구간송미술관을 건립하는 것. 대구미술관과 대구육상진흥센터 사이 약 3000㎡의 시유지에 건립하는 미술관은 2018년 초에 착공, 2021년 상반기 개관이 목표다. 대구광역시가 부지 매입과 건립 비용을 포함한 약 300억 원을 부담하고, 간송미술문화재단서에 운영한다. 서울 성북동의 기존 간송미술관은 간송문화공원으로 조성해 한국 미술 연구와 보존에 집중하고, 대구간송미술관은 전시와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못지않게 지방자치단체와 원활한 업무 협약이 이뤄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예로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민간투자방식(BTL)의 부작용, 도심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 등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우환미술관 건립 계획이 결국 무산되는 등 그간 대구시는 여러모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부담한다고 하니 다소 안심이 된다. 궁극적으로 간송미술관의 대구 분관 개관이라는 실험이 간송 소장품의 콘텐츠와 품격을 확산하고 대중에게 미술관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12월 오픈을 목표로 충청북도 청주에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연면적 1만9855㎡의 옛 KT&G 담배 공장에 지상 5층 규모로 지어 약 1만1000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정부 미술품과 미술은행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수장하고, 생존 작가와 작가 사후 유족을 위한 미술 작품 수장고를 지원하는 것이 구체적인 계획. 특히 국내 최초로 ‘보이는 수장고(visible storage)’ 개념을 도입해 람관객이 전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장고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관 분관 계획이 가장 빽빽한 지역은 다름 아닌 서울이다. 서울시는 ‘서울시 전역의 박물관·미술관화’라는 기치 아래 2030년까지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 사업을 추진한다. 2022년까지 300억 원을 투입해 13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 현재 2016년 7월 발족한 서울시 문화시설추진단 내 박물관정책팀과 서울시립미술관 내 미술관 조성 프로젝트팀이 건립과 운영을 맡고 있다.




1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지하 벙커를 이용한 전시 공간 SeMA 벙커.
2 백남준 작가의 생가를 개조해 개관한 백남준기념관.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존 서소문 분관,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이어 2016년 8월 옛 질병관리본부 시절 식약청의 시약 창고를 개조해 만든 대안 전시 공간 SeMA 창고, 2017년 3월에는 종로구 창진동에 위치한 백남준 작가의 생가를 개조한 백남준기념관, 10월에는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지하 벙커를 이용한 전시 공간 SeMA 벙커를 잇따라 개관했다. 1970년대 유신 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는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조성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연면적 871.91㎡ 규모로 바닥과 천장 등 당시 모습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 한편 종로구 평창동에 미술문화복합공간(가칭), 사진미술관, 서서울미술관 개관을 계획 중이다. 그중 미술문화복합공간은 2018년 4월 착공, 2019년 12월 개관할 예정. 많은 문화 예술인이 거주하는 오래된 동네인 만큼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도서관과 미술관을 결합한 독특한 컨셉의 공간으로 꾸밀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렇듯 국내에 수많은 미술관이 들어서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규모나 수 못지않게 얼마나 정책에 부합하는 내실 있는 미술관이 탄생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수평과 개방, 통합을 지향하는 프랑스의 미술관 루브르 랑스.

해외에서 21세기 미술관의 모델을 찾고 있다면 2012년 개관한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인 루브르 랑스(Louvre Lens)의 사례를 눈여겨보자.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가 이끄는 건축 사무소 사나(SANAA)가 프랑스 북부 도시 랑스의 2만80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설계한 미술관으로 빛을 반사하는 알루미늄 외관이 눈에 띈다. 3000㎡ 면적의 전시실에는 고대부터 19세기까지 회화, 조각 등 루브르 소장품 200여 점을 시대순으로 전시했는데, 너른 공간에서 한눈에 작품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이색적이다. 위계와 권위를 중시하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달리 수평, 개방, 통합을 지향하는 루브르 랑스의 특색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약간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면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전시를 기다리고 있거나 복원 중인 작품을 유리 너머로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루브르 랑스는 기능에 따라 공간을 분리하고, 단순한 작품 감상에서 나아가 빛과 어둠, 시선의 차이를 체험하도록 이끈다. 개관한 지 약 8개월이 지났을 무렵 당시 뮤지엄 관장 그자비에 덱토(Xavier Dectot)는 “루브르 랑스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이나 별관이 아닙니다. 루브르 랑스는 같은 소장품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루브르입니다”라고 그 가치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관람자를 배려한 공간뿐 아니라 준비 과정도 본받을 만하다. 루브르 랑스는 2003년 당시 문화통신부 장관 장 자크 아야공과 루브르 박물관 관장 앙리 루아레트가 처음 분관 계획을 발표한 시점부터 미술관 건립 전 과정을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10년 이상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정부와 지역 주민이 소통한 결과, 1986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프랑스에서도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한 도시 랑스는 연 45만 명, 4년간 누적 관람객 230만 명이 방문한 활기찬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한편 루브르 랑스는 2014년부터 ‘루브르 랑스 발레’라는 디지털 문화 클러스터를 조성해 문화 관련 정보 기술을 개발하고 교육에 이용할 수 있는 전자책 등을 만드는 중이다. 전통적 의미의 박물관에서 나아가 랑스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프랑스 정부의 과감한 결정을 바탕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자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루브르 랑스의 다채로운 노력은 21세기를 지향하는 국내 미술관에서 마땅히 배워야 할 점임이 틀림없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류정화(전시 기획자)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