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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SPECIAL

숨은 주인공들

  • 2017-12-18

전시가 열리면 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 뒤엔 여러 스태프의 노고가 숨어 있다. <아트나우>가 국내 주요 미술관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미술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Questions
1. 현재 소속 미술관의 최대 화두는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2. 미술관에서 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언제인가?
3. 미술관에서 일하며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4. 소속 미술관이 더 발전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
5. 즐길 거리가 많은 세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6. 미래 미술관의 필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고원석
1. 내년에 부산시립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의 1호 미술관으로서 걸어온 20년 역사를 점검하고, 앞으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2. 현대미술을 통해 우리가 속한 시간과 장소를 해석하는 다양한 사유를 경험하면서, 그것을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문득 깨닫는다. 내가 사는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만족감을 느낀다.
5.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공공성이다. 갤러리, 대안 공간과 달리 미술관은 주류 미술 그리고 판매와 무관한 작품의 미학적 역량에 초점을 맞춰 전시한다. 시민의 문화적 수요에 부응하는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관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6. 동시대 미술은 변화하고 있다. 손에 잡히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수용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보여보는 것을 넘어 예술을 매개로 한 일종의 체험을 유도하는 곳이어야 한다. 보여주는 전시가 주가 되던 과거 미술관은 이제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가능성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제주도립미술관 전시 기획, 작품 수집 담당 큐레이터 강효실
1. 올해 제주도립미술관의 최대 화두는 단연 ‘제주비엔날레 2017: 투어리즘’ 개최다. 이 행사는 2009년 미술관 개관 이래 가장 규모가 큰 단일 사업으로 1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9월 2일부터 12월 3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 원도심의 예술 공간 이아, 알뜨르비행장, 서귀포 원도심의 이중섭거리에서 국내외 작가 73팀의 작품을 전시한다. 나는 비엔날레 계획 수립 및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3. 제주도립미술관과 함께 성장해온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제주를 대표하는 변시지 작가의 작업을 정리한 일이다. 향후 지역 미술사 정립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4. 미술관 학예연구팀이 2016년에야 신설되어 독립적 운영이 다소 미흡한 상황이다. 학예연구사 충원과 전문성 확보가 필요한데, 이는 제주도립미술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6. 지금도 많은 미술관이 동시대 사회, 문화, 예술의 흐름을 담은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래 미술관은 전시뿐 아니라 교육, 네트워크, 정보화, 복제, 출판, 마케팅 등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큐레이터 변지혜
1. 서울시립미술관은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서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소통하고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3. 지난 8월 관악구청과 함께한 대외협력전에서는 한여름의 산을 표현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떻게 하면 시민에게 미술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지 고민하다, 전시장에 작품과 어울리는 문학작품을 뽑아 갈 수 있는 자판기를 설치했다. 관람객 한 분이 “익숙한 문학작품을 보면서 미술을 감상하니 신선하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듯 따라갈 수 있어 좋았다”고 말씀해줘서 보람을 느꼈다.
4. 각 스태프가 특정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 안을 무엇으로 촘촘히 채우고 어떠한 결을 만들 건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다. 자신의 일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또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만큼, 동료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함께 일할 때 어떻게 하면 시너지가 날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일할 수 있을지 편안하게 논의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6. 미래 미술관은 관람객과 어떻게 만나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교육이나 이벤트, 기관과 연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 최근 과학의 발달로 VR 기술 등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시가 등장했다. 기술이 작품 감상법,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 소통 방식을 바꾼 것이다. 미술관은 새로운 변화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교육사업본부 본부장 박남희
1. 2015년 개관한 아시아문화전당의 국내외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최대 화두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과 네트워크 확장, 특히 ‘교육’을 중심으로 지역과의 소통과 협업을 유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린이문화원을 중심으로 공교육과 연계하는 것은 물론,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 기획, 찾아가는 문화 교육 등이 있다.
3.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행사를 마련한 적이 있다. 예술가가 아이들을 직접 만나 꿈을 물었는데, 캄보디아나 네팔 아이들은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말한 반면, 한국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거나 가족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더라. 실천적 커뮤니티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이 시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순간이었다. 예술이 추상적 가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영역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4. 신생 복합 예술 기관으로서 더 많은 관람객을 발굴하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관람객의 눈높이와 수요 항목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며, 다층적 홍보 역시 필요하다. 한편 이 기관은 세계로 향하는 아시아 문화의 창구 기능을 해야 하기에 이를 위한 연구도 강화해야 한다.
6.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스템의 결합으로 다양한 방식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예술 역시 소재부터 기법, 나아가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 미술관도 다른 관점으로 전시나 공간의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참여형 전시 방식의 체계화, 온라인 형식 작업의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 디자인 기획관 김용주
1. 미술관은 과거 소수를 위한 고급문화 기지였지만, 점차 대중이 여가를 누리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관의 역할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관람자의 편의 및 예술과의 원활한 소통을 돕기 위해 전시 디자인 방식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2. 직접 디자인한 전시 공간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감동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내 직업에 감사하게 된다. 특히 원로 작가의 회고전을 열 때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평생을 빚어온 예술 작품이 대중과 만나는 순간은 작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데, 이 순간에 내가 매개자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다. 또 미술관에서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늘 에너지가 충만하다. 그 점도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3. 지난 2012년에 개최한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준비 단계부터 정기용 건축가의 사진을 책상 한쪽에 붙여놓고 그의 삶을 제대로 전시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전시를 열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꿈에 나타났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한데, 내게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좋은 기억이다.
6. 20세기 미술관은 외관의 건축적 조형 요소나 거장 건축가의 이름으로 랜드마크(landmark)적 이슈를 불러왔다. 하지만 21세기 미술관은 복합적 전시 콘텐츠와 관람자의 공감각적 경험으로 기억되는 마인드마크(mindmark)적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경기도미술관 교육 담당 큐레이터 최혜경
2. 미술관에서 일하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 기획에 현대미술 작가부터 과학자, 영화감독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내게 새로움을 접하는 흥미로운 장소다. 또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즐긴 관람객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보람을 느낀다.
3. 강익중 작가와 함께 어린이 5만 명의 꿈을 벽화로 제작하는 ‘5만의 창, 미래의 벽’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꿈을 수집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18년이면 이 벽화가 1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데, 그때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특히 강원도 산골 분교에서 만난, 멋진 집을 짓는 목수가 되고 싶다던 한 꼬마가 기억에 남는다.
5. 미술관에서는 작품의 맥락과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는 관람객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그 자체로 심미적 공간이다. 사인물 하나도 허투루 설치하지 않는다. 심미적 공간에서의 경험은 예술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생활 속에서 예술을 경험하기에 미술관만큼 훌륭한 공간은 없다.
6. 미래의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보존하는 곳이 아니다. 소통과 참여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하며, 사실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요즘 미술관은 더 이상 미술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융합’은 시대의 키워드고, 이를 위해 미래의 미술관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대구미술관 홍보마케팅팀장 문현주
2. 휴일에 전시장을 돌다 보면 관람객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그들이 전시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미술관에서 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일과 육아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게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일하는 엄마가 참 좋아”라고 말해주는데, 그럴 때마다 더 즐겁고 현명하게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3. 대구미술관 건물에는 한글 없이 ‘d am’이라는 로고가 쓰여 있다. 어느 날 택시 기사님이 “댐? 수자원공사 건물인가 봐요? 참 좋은 자리에 있네요”라고 하시더라. 홍보 담당자로서 더 열심히 대구미술관을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 순간이었다. ‘d am’은 ‘I am Daegu Art Museum’을 의미하는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4. 대구미술관은 개관한 지 6년 됐다. 신생 미술관을 넘어 발전 가능성 있는 미술관으로 발돋움하려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구성원의 인성과 더불어 유연한 조직의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일단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끔 뇌와 눈을 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느릿한 템포, 순한 콘텐츠를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가장 즐겁고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미술관이다. 국공립 미술관에 한정해 이야기하면, 내가 속한 지역의 삶의 기록을 미술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 장연희
1. 보존과학자로서 우리 박물관의 화두는 ‘문화재의 안전한 보존 처리와 보관’이다. 문화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형체를 잃고 소멸한다. 유물이 더 훼손되지 않게 보존 처리해 후대에 물려주는 것, 그리고 일반인에게 공개될 때까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보존과학자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창의적 보존 처리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문화재마다 최선의 보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 박물관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훌륭한 문화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거다. 방대한 소장품을 직접 내 손으로 보존 처리할 수 있고, 좋은 시설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 만족스럽다.
4. 과거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내에 보존과학이 도입된 지 40여 년이 됐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미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5.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가 보이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선 과거의 문화, 예술, 생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은 낡고 손상된 문화재가 아닌 예술품을, 생생한 삶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여정을 제안한다. 이 여정을 통해 감성이 풍부해지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며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다. 박물관은 힐링의 장소이자 지식의 장, 문화의 보고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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