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DECEMBER. 2017 SPECIAL

그가 걷는 길

  • 2017-12-04

지난 2월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 최효준 관장은 뉴욕의 아트 마켓을 경험하고, 한국의 주요 미술 기관을 대부분 거쳤다. 그만큼 국공립과 사립 미술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또 있을까. ‘소통’과 ‘교육’을 미술관 운영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최효준 관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21세기 미술관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1 인터뷰 내내 정성 어린 대답으로 미술관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낸 최효준 관장.
2 서울시립미술관의 야간 문화 행사를 즐기는 시민의 모습.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전시과장을 맡았던 서울시립미술관에 관장으로 복귀하셨네요. 16년 만입니다. 처음 대법원 건물을 미술관으로 복원할 때 참여한지라 감개무량합니다. 그동안 기관과 조직이 많이 커졌어요. 분관이 생겼고, 레지던시와 창고, 벙커, 거기다 백남준기념관도 오픈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더군요. 여전히 예산은 부족하고, 대중은 아직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네요.

관장님은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미시간 주립 대학교 경영학 석사까지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걷다 돌연 미술로 방향을 틀었잖아요. 미술에 빠져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1980년대 말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일본의 거대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경제적으로 붐이 일었어요. 그 덕분에 미국 아트 마켓도 무척 활발했죠. 저는 원래 미술을 좋아해서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특히 이스트빌리지의 젊은 예술가들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역사 속에 남은 아티스트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이 당시 급부상했죠. 젊고 급진적인 예술가들이 신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던 시대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뉴욕 미술계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취미로 즐기던 미술을 직업으로 삼은 거죠.

저도 1980년대 미국 미술을 무척 좋아해요. 저는 책으로 봤지만 관장님은 직접 그 현장에서 경험하셨다니 흥미롭습니다.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미술과 경제가 맞물려 돌아갔어요. 당시 신흥 부호가 된 인베스트 뱅커들은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싶어 했죠. 그래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며 스스로 클래스를 높였어요. 덩달아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도 수직 상승했고, 그런 호재가 맞물려 시장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런 과열 양상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당시 무척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무슨 일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관장님도 미술계에서 초년생이던 시절이 있겠죠? 뉴욕에서 아트 컨설턴트 일을 하며 블루칩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한국과 일본에 선보였습니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삼성문화재단 현대미술분과에 입사했어요. 당시 재단이 국제 아트 신에 밝은 사람을 찾고 있었고, 저는 큐레이터이자 국제미술부장을 맡았습니다.




3 경기도미술관 재직 당시 총괄한 <사람아, 사람아>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4 시민이 도슨트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인 백남준기념관 내부 전경.

전북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문화재단 등 내로라하는 국공립ㆍ사립 기관을 대부분 거쳤죠. 각 기관에서 맡은 업무와 운영상 특징을 귀띔해주시겠어요? 전북도립미술관은 개관부터 거의 모든 일을 맡아서 했어요. 재정적 자립도가 낮고 여건이 열악했지만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보람을 느끼며 일했고 성과도 좋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건립 공모 당시 컨셉을 잡고 기초를 다졌습니다. 국공립 기관 중 조직과 예산 규모가 가장 크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대한 항공모함이 작은 배보다 기동성이 떨어지듯 그만큼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또 경기도미술관은 법인화된 미술관이었죠. 당시 경기가 수그러들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에 관심을 두고 사회성 있는 전시를 많이 열었습니다. 삼성문화재단은 재정 지원이 거의 무제한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산을 따내고 거기에 맞춰 전시를 기획해야 한다는 개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요. 재정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가치가 높은 작품도 많이 소장했습니다. 운영 여건이 당시 여타 미술관보다 훨씬 좋았죠.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전보다 조직이 커져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계속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죠. 올해는 제가 취임하기 전인 작년에 계획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어요. 잘 갈무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공공성과 대중성의 균형, 현실적 사회 의제의 콘텐츠화, 커뮤니티 오거나이징, 미술관 분관을 통한 지역 거점 특성화와 개념 통합’을 운영 목표로 발표하셨죠.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는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그중에서 ‘현실적 사회 의제의 콘텐츠화’라는 항목이 가장 중요해요. 지금처럼 사회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엔 예술이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정신을 고양해야 합니다. 그런 면을 충족할 수 있도록 통일과 평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공공성과 대중성의 균형’은 계속 노력해나가야 할 목표입니다. 요즘 대중이 문화를 누리는 수준이 아주 높기 때문에 미술관이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 중입니다. ‘커뮤니티 오거나이징’도 아주 중요합니다.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먼저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하고 싶은데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지금 북서울 분관이 커뮤니티 뮤지엄으로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남서울 분관은 아직 어려움이 있지만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합니다. 취임 당시 표방한 목표 중 일부는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진행형입니다.

해외 뮤지엄의 정책이나 프로그램 중 한국에 들여오면 좋을 만한 것이 있나요? 외국은 뮤지엄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라는 직책이 따로 있습니다. 포커스 그룹이나 비지터 패널같이 미술관 외부인의 의견을 듣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함께 의견을 나눌 고정 관람객도 있어야 합니다.

한국 미술관에도 자문위원이 있지 않나요? 물론 많은 전문가가 자문하지만, 기업의 모니터링 요원 같은 기능이 필요해요. 미술관을 좋아하고 자주 오는 사람들이 소비자와 수요자 입장에서 전시를 바라보고 꾸준히 의견을 내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미술관의 서비스를 누리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는 겁니다. 만든 걸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릴 만한 걸 만드는 마케팅 개념을 미술관 운영에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고 봐요.

그럼 21세기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덕목은 뭘까요? 21세기 미술관은 새로운 미래형 교육기관이 되어야겠죠. 교육은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반영해야 합니다. 뮤지엄이 학교와 협업해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학교가 하지 못하는 교육을 시도해야 해요. 요즘 미술관 교육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대부분 전시 연계 교육이에요. 교육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뮤지엄이 앞장서서 미래에 필요한 사람, 창의력과 상상력이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데 공헌해야 합니다.




5 백남준기념관 개관 행사에 모인 인사들.
6 시민이 직접 큐레이터로 참여한 프로그램.

관장님은 전시 기획에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참여하시죠. 한 기관의 수장으로서 큐레이팅에 이 정도로 열의를 갖고 임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이 미술관의 전시나 프로그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올인합니다. 큐레이터는 주로 미술계의 평가에 신경 쓸 수밖에 없지만, 진짜 평가자는 입소문을 퍼뜨리는 일반 대중입니다. 지금 같은 여건에서는 기획자가 거기까지 신경 쓰긴 어려워요. 그래서 관장인 저라도 기획에 좀 더 신경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 기획이 잠재 관람객이나 불특정 다수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관장은 마케터이자 홍보맨입니다. 서비스를 누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전시를 만들어내면 저절로 홍보가 돼요. 그걸 찾아내서 대중의 취향이나 문제의식을 최대한 섬세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서 기획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몇 년 전에 관장님과 한 컬렉터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때 관장님이 모든 작가와 작품에 대해 꿰뚫고 있어서 무척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런 방대한 지식의 소스는 어떻게 얻고, 작품을 보는 안목은 어떻게 키우세요? 예술, 대중문화, 경영, 행정, 과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다양한 현상을 예의 주시합니다. 통섭의 시대잖아요. 방송, 책, 인터넷, 영화도 많이 보고 주변을 잘 살피면서 융합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해요.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간접적으로 소스를 얻기도 합니다. 음악계의 ‘귀 명창’이라는 말을 미술에 적용하면 ‘눈 명필’이 되겠죠. 많이 보고 공부하면 점차 좋은 걸 감식할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될 겁니다.

수년간 미술 기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미술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국제 아트 신이 인정하듯 한국 현대미술은 엄청난 역동성과 잠재력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아직 불안정하다고도 할 수 있죠. 한국은 우리만의 맥락을 갖추지 못하고 서양 미술을 그대로 이식한 것 같습니다. 마치 서양 미술계의 평가가 우리의 평가 기준이 된 것처럼요. 외국에서 인정받으면 한국에서도 인정받고 스타가 되는 건 문제입니다. 물론 훌륭한 한국 작가가 세계로 진출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우리 고유의 문제와 미술에 주목하는 작가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미술관에서 겪은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면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중국 현대미술 전시를 할 때였어요. 전시장을 둘러보다 자연스럽게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제가 어느덧 도슨트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3~4년 후에 누가 길에서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때 설명 잘 들었다면서 말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사람이 미술관에서 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만큼 관람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향후 미술관에서 혹은 개인적 차원에서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내년 말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대형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화를 통해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순수한 미술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술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애호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지향점에 대해 계속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확고한 애호심을 갖고 예술을 도구로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고 의지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겁니다. 개인의 개성은 유지하되 협동조합처럼 효율적으로 공유하고 융합해야 합니다.




7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안창홍 작가의 작품.
8 최근 미술관은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효준
최효준 관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미시간 주립 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졸업한 후 돌연 미술로 진로를 변경했다. 서울대학교 미술사학 석사, 원광대학교 순수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의 유수 미술 기관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