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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SPECIAL

다시 시작하는 미술관

  • 2017-12-04

진정한 21세기 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변의 문화와 경제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소재 미술관은 총 219개다. 박물관까지 포함해 1000개 미술관 시대를 열었지만, 수도권(경기 49개소, 서울 37개소)에 집중되어 지역적 불균형이 심한 편이다. 그렇다고 수도권 거주자들이 미술관을 즐겨 찾는 것도 아니다. 몇몇 미술관에 국한될 뿐이다. 또 2016년 문화 향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영화·대중음악·연극·뮤지컬·미술관 순으로 문화 예술 행사 관람 의향을 나타냈다. 미술관 관람 의향이 낮은 이유는 간단하다. 흥미로운 볼거리,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접근성, 입장료, 주변 환경, 편의시설 등 여러 요인을 포함한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2004년부터 책임 운영 기관으로 바뀌며 전시 기획, 아트 상품, 각종 프로그램 등에서 자립도를 키울 수 있는 경영 전략을 세웠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오픈하면서 주변의 문화와 경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긍정적이다. 미술관의 접근성, 지역 문화시설과의 인접성 등의 요소가 얼마나 경제적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법인화, 미술품 수집 예산, 관장의 역할, 학예사를 비롯한 미술관 직원의 고용 안정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러 문제 중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건 전문가 양성과 예산 지원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흥밋거리와 볼거리는 누가 만드는가? 결국 사람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의 인력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당당히 상위에 오른 큐레이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기대만큼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 전시를 기획하기 어렵다. 당장 모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긴 어렵겠지만, 급변하는 세계 문화 속에서 21세기 한국 미술관을 리드할 전문가를 양성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인프라 구축 플랜은 꼭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뮤지엄 전문가(museum professional)’ 양성은 미래 미술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전시 예산 지원도 마찬가지다. 거액을 투자한 전시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이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든든한 예산 지원이 뒷받침될수록 양질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성공 확률도 높아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소장품 구입 예산, 전시 기획 예산, 인력 충원(신기술 전문가 포함) 등 미술관의 성장 동력에 필요한 요소를 채우지 않고 발전을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변화의 시점에 우리 미술관에 필요한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제도적 뒷받침이다. 그동안 미술 정책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왔지만,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 실질적 반영 정도는 미흡했다. 그나마 최근 문체부가 박물관 정책은 도서관박물관정책단 ‘박물관정책과’에서, 미술관 정책은 예술국 ‘시각예술디자인과’에서 담당하던 이원 구조를 ‘문화기반과’로 통합한 건 눈여겨볼 만하다. 절실한 박물관 행정과 미술관 행정을 유기적 관계로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이 개편이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직원의 적절한 업무 분담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박물관 정책 업무의 전문가가 있듯, 미술관 정책 업무를 담당 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개념적 모순과 정책 실행상 충돌을 일으켜온 현재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문체부 조직 개편처럼 통합해 ‘박물관 진흥법’으로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구분 없이 뮤지엄이란 용어로 통용하는 세계 미술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도 바뀌고 있다.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Arata Isozaki)의 미술관 세대 구분 이론을 빌리면, 오늘날 미술관은 ‘장소 특수성을 지닌 뮤지엄으로 예술작품과 건축의 통합을 지향하는 공간’이었던 3세대를 지나 ‘가치를 생산하는 실험적 장소로서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뮤지엄’으로 규정되는 4세대에 이르렀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는 AI, VR, loT, 3D 프린팅 등 최첨단 기술을 내세운 4차 산업혁명이란 신드롬을 좇아 새로운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이번 문체부의 조직 개편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문화적 대안을 찾기 위해 미래문화전략팀을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이러한 맥락 중 하나다. 그러나 20세기까지 지속해온 뮤지엄의 역할을 하루아침에 부정할 수는 없을 터.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보다 한국의 실정에 맞는 미술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유지하느냐가 급선무다.




적극적인 해외 브랜치 개척과 문화 상품 개발 등으로 국제적 성공을 거둔 테이트 모던.

실제 우리의 미술관은 영국의 테이트 모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모마,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영 방식으로 국제적 성공을 거둔 미술관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테이트 모던과 모마처럼 해외 브랜치를 개척해 수장고에서 잠자는 미술품이 없을 정도로 전시 공간 운영을 활성화하고, 미술품을 활용한 아트 상품 개발과 도서 발간 등의 사업에 전념할 자회사를 설립해 기념품을 고급문화 상품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국공립 미술관부터 재정적 압박을 이유로 소장품 구입 예산을 삭감하고, 운영비 역시 줄이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나 해외 브랜치 개척은 이상처럼 느껴진다. ‘국공립 미술관과 지역 미술관의 협력망을 구축’해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차별화된 양질의 전시 콘텐츠 개발’로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도시 재생은 국제적 미술관에서는 일찍이 추구해온 정책 방향이며, 국가의 문화 정책 차원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온 세계 유수 미술관들이 걸어온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은 공공적 가치와 사회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정책은 구체적이며 실천적이어야 한다. 실행의 우선순위도 중요하다. 어떤 것을 먼저 현실화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갈린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미술관 정책은 이상과 목표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뒷받침이 열악했을 뿐이다. 따라서 21세기 새로운 변곡점에 있는 미술관의 변화는 목표의 공허한 외침이 아닌 현실 문제의 풀이로 시작해야 한다. 미술은 문화의 중심이며, 미술관은 인간 정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미술관 정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참고 자료
<4차 산업혁명 시대, 영월 박물관 고을의 성장 방안 고찰>(김선영), 2017 영월국제박물관포럼. <뮤지엄에 대한 공적 지원 제도의 딜레마와 해결 과제>(김찬동), 2015 영월국제박물관포럼.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변종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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