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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FEATURES

김성균이라는 필름

  • 2017-11-03

극과 극을 오가는 필모그래피, 김성균이라는 필름을 읽는 방법.

수트와 코트 Mark Ronsen, 폴라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는 타인의 삶을 산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로, 건달이거나 악랄한 살인마, 박수무당, 민란 시대의 서민, 혹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연기자는 시나리오에 적힌 몇 줄로 삶을 상상한다. 평면의 텍스트를 현실로 끄집어낸다. 그리고 골격을 만든다. 혈관을 잇고 살을 붙인다. 근육과 주름, 눈매와 말투까지 다듬은 후에야 생명을 얻는다. 캐릭터가 탄생한다. 모든 배우는 조물주다. 그래서 배역과 배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다. 빠지지 못해 절망스럽고 빠져나오지 못해 고통스럽다. 그래서 김성균이 염려스러웠다. 그는 2012년 데뷔한 이래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필모그래피를 채운 영화만 23편. 특별 출연을 제외하더라도 1년에 3편이 넘는다. 매년 서너 명의 인생이 그의 몸을 투과한 셈이다. 롤러코스트를 탄 기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힘에 부치죠. 그래선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다작, 그게 갖는 위험을 알고 있어요. 자기 복제나 관객이 느낄 피로도, 그런 걸 걱정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내려놨어요. 내가 잊어야 관객도 잊고 연기에 집중하겠다 싶었어요. 이젠 그런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요.”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그는 피로해 보였다. 밤샘 촬영 이후 새벽 6시에 서울에 도착한 길이었다. 김성균은 경남과 서울을 오가며 2편의 작품을 촬영 중이다. 모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이전과는 무게가 다르다. 그걸 짊어질 수 있는 건 치열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체급이 다르니까. 지금 넘어지면 타격이 크다. 나 말고 누군가가 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걱정을 메우려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촬영장을 지키고 있다. 긴 연휴도 가족을 고향에 바래다주곤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보냈다. 치열함의 또 다른 이유는 두려움이다. 지금 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 모두가 쓸데없는 걱정이라 말하지만 김성균에겐 꽤나 절실한 고민이다.




셔츠 Time, 수트 Sandro, 시계 Tagheuer, 안경 Nishide Kazuo.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강박이라고 할까요. 어색하고 이방인 같은 이질감이 느껴져요. 감히 나까짓 게 이 일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은 걱정이 있죠. 그래서 더 치열하게 작품을 찾는 것 같아요.”

물론 김성균은 그간 자신의 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지난 6년 동안 어떤 배우보다 바쁘게 스크린에서 살았고 대중의 평가도 좋았다. ‘감독이 찾는 배우’, 연기자에게 이보다 기분 좋은 찬사는 없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김성균은 “운이 좋았다”며 말을 흐린다. 그러나 요행은 이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그에겐 아직 밑천이 남았다. 꽤 오래 다져온 내공 덕이다. 김성균은 남보다 빨리 무대에 섰다. 고향 대구 시내에 연기 학원이 들어서던 날부터 배우를 꿈꿨다. 비싼 등록금에 입학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극단을 찾았다. 그때가 열여덟 살이었다. 마룻바닥을 닦고 선배들의 물통을 채우며 마산과 사천, 삼천포 등의 작은 극단을 돌았다.

“서울은 제게 두려운 곳이었어요. 촌놈이 가긴 쉽지 않았죠. 내공을 조금 더 쌓자, 선배들에게 더 배우자, 그렇게 몇 년을 하다 어느 순간 답답해졌어요. 연습 마치고 돌아가는 밤거리가 쓸쓸하더라고요. 불 켜진 곳 하나 없이 휑하고 술 마실 젊은 친구도 없고. 대학로라는 곳은 어떨까, 또래 연기자들과 경쟁하면 참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무작정 상경했어요.”

20대 김성균에게 대학로는 영원한 젊음의 무엇이었다. 거기선 가벼운 지갑이나 발밑도 보이지 않는 캄캄함을 견딜 수 있었다. 돈 몇 푼이면 연극을 주제로 밤새 술잔을 기울일 동료나 에너지도 충분했다. 온 신경이 연기에 쏠려 있었다. 자취방이 있는 한성대학교 부근과 마로니에를 오가며 김성균은 머릿속으로 수천, 수만의 배역을 연기했다. 그때 쌓은 밑천이 쉽게 동날 리 없다. 대학로에서 그는 꽤 잘나가는 배우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운 좋게 연이어 배역을 맡았다. 계속 무대에 오르고 관객과 만났다. 그러다 갑자기 낯선 기분에 휩싸였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어요. 무대에 선 내가 초라해 견딜 수 없다는 생각. 긴장돼 무대에 오르기 힘들었죠. 한동안 의기소침하게 지냈어요. 마침 첫아이가 태어났죠. 경제적으로나 연기적으로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때 생전 안 해본 짓을 했죠.”

생전 안 보던 오디션에서 김성균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박창우 역을 따냈다. 최민식과 하정우, 조진웅이라는 장벽 같은 배우들 틈에서 그는 자신의 몫을, 아니 그 이상을 해냈다. 누적 관객 470만이라는 흥행을 거둬 김성균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알렸고, 첫 작품부터 주연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했다.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등 5개의 신인 연기자 트로피까지 거둬들이며 강렬하게 데뷔했다. 거기에 대해 김성균은 ‘러키 보이’라는 말로 답한다.

“꿈 같은 경험이었죠. 눈앞에 있는 어마어마한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엔 헤맸어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발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서툴렀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라서 그나마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멍하니 있다 감독님에게 ‘연기 해야지?’라는 말도 들었으니까.”




버건디 니트 Giorgio Armani, 네이비 퍼 블루종 Brooks Brothers.

운이나 무지의 용기라고 하기엔 박창우를 연기한 솜씨는 노련했다. 연극배우가 카메라 앞에 설 때 흔히 범하는 ‘넘치는 연기’도 김성균에겐 없었다. 그의 연기는 공간을 느끼게 한다. 관객에게 제공하지 않는 정보가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든 연기를 한다. 그래서 그의 제스처나 발성을 관객은 쉽게 납득한다. 연기한다기보다는 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적절하다. 그 자연스러움 덕에 <이웃사람>의 류승혁이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동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강성일 같은 비현실적 인물도 거부감이 없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거기에 김성균이 있을 것 같은 익숙함, 그것이 그의 연기다.

“배역을 분석하고 이후엔 실질적 이미지를 찾아요. 영상이나 사진, 소설이나 미술 같은 여러 곳에서 파편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모자이크하듯 완성하죠. ‘이렇게 살았겠다’, ‘이런 걸 겪었겠다’ 여러 가정을 두고 캐릭터를 만들어요.”

영화배우로서의 삶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쏜살같이 달려왔지만 부침도 있었다. 한동안 시나리오가 끊기고 계획한 작품이 차례로 엎어지기도 했다. 쉬어가도 좋을 텐데 조바심이 일었다. 이대로 잊힐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신현오 PD에게 연락이 왔다. <응답하라 1994>의 삼천포 역 제안이었다.“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어요. 악역 조연으로 알려진 배우, 노안으로 유명한 저에게(웃음) 대학교 신입생이라니 어이가 없었죠. 꽤 오래 고민했어요. TV라는 매체가 겁나기도 했고. 결과적으론 감사한 제안이었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1994의 예민하고 섬세한 삼천포, 1988의 따듯한 이웃집 아저씨는 김성균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거기엔 김성균의 실제 모습이 있었다. 그 뒤로 악역이 아닌 배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튀어>의 홍만덕이나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박하연은 실제 김성균의 소탈함과 따듯함을 닮았다. 텃밭 가꾸기와 낚시를 즐기는 30대 자연인 김성균은 그 작품들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였다.

“결국 벽은 저 자신인 것 같아요. 예민한 성격 탓인지 내 마음이 나를 다치게 하고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깨달은 건 억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욕심내면 될 일도 엎어지더라고요. 배역이나 돈을 떠나 즐길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요새는 대선배들을 자주 떠올려요. 오랜 기간 연기하고 좋은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 그분들의 길에서 뭔가를 배워가는 느낌이에요.”

김성균의 2017년 하반기는 이미 빠듯하다. 일곱 살 같은 서른 살을 연기한 영화 <채비>의 개봉과 악역이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배역을 맡은 드라마 <언터처블>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그 외에 출연을 확정한 작품도 이미 여러 편. 아마도 김성균의 빼곡한 필모그래피는 지속될 것이다. 감독과 관객이 찾는 한 그는 연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성균은 답한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 발을 움직이고 있다”고.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장호  헤어 김태석  메이크업 이선민  스타일링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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