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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LIFESTYLE

체코의 낭만 서사시

  • 2017-10-27

역사와 문화, 예술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나라, 체코. 보헤미안처럼 자유와 일탈을 꿈꾸며 체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발렌슈타인 정원.

천년 고도를 거닐다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라틴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한 바로크(baroque).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이 예술 양식은 화려하고 격동적인 표현, 빛과 어둠의 강한 명암 대비와 풍부한 색채, 웅장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건축에서는 거대한 구조와 자유롭고 유연한 곡선 등을 드러내고 조각에서는 동적인 자태와 다양한 복장 표현이 두드러지며, 회화에서는 대각선적 구도와 원근법, 눈속임 효과의 활용이 특징이다. 체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로크를 알아야 한다. 각 나라마다 특징적 양식이 발달했듯 체코는 바로크 양식이 꽃을 피웠다. 체코의 교회, 수도원, 궁전과 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각 시대의 양식을 흡수하며 형태를 바꿔왔고 바로크 양식이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천년의 역사를 품고 흐르는 도시, 체코의 수도 프라하(Prague)에서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바로크를 만난다.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서 구시가로 향하는 길. 언덕을 오르는 붉은색 트램, 도시를 붉게 뒤덮은 웅장한 건축물과 반짝이는 블타바강의 물결이 시야에 은은하게 스며든다.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고 프란츠 카프카가 평생 떠나지 못한 마력의 도시는 순식간에 이방인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프라하에 와보기 전엔 그저 연인을 위한 유럽의 어느 낭만적인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년 고도의 역사는 낭만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골목에서 만난 건물들은 프라하의 지난 역사를 속삭인다. 15세기 후스전쟁부터 17세기 최대 종교전쟁인 30년전쟁, 제1차 세계대전, 나치의 점령과 공산주의,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까지 수차례의 격동기에도 빛나는 바로크 문화는 살아남았다. 블타바강 위에 놓인 카를교는 600년 넘는 시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프라하의 상징. 다리 위에 조각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경부터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30개의 조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갤러리인 셈이다.






1 27개 종의 화음을 들을 수 있는 로레타 성당.   2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츨람갈라스 궁전.

거대한 헤라클래스 조각상이 입구를 지키는 츨람갈라스(Clam-Gallas) 궁전 역시 바로크 시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75년부터 40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백발이 성성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커다란 창문을 내어 오직 귀족만이 빛을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든 계단 위로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18세기에 각종 무도회와 콘서트가 열리던 곳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연주한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가 크리슈토프 디엔트젠호페르(Krystof Dientzenhofer)가 없었다면 체코의 바로크 양식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가 설계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 성당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성당이라 불리며, 1626년 이탈리아의 산타 카사 수도원을 모델로 세운 로레타(Loreta) 성당 역시 중요한 순례지로 꼽힌다. 로레타 성당의 회랑을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27개의 종이 화음을 내며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소리가 종교에 상관없이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로레타 성당과 국립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궁전은 걸어서 이동할 정도로 가깝다. 바로크가 전성기를 맞았을 때 체코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궁전이 위치한 흐라트차니 광장에는 프라하 성과 대주교 궁전이 한데 모여 있다. 약 9세기 말부터 역대 체코의 왕이 기거해온 프라하 성은 성당, 왕궁, 수도원, 정원 등을 포함한 성채로 현재 대통령 관저로 사용한다. 1100여 년 동안 다듬어 완성한 이 성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이르는 시대별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발렌슈타인(Wallenstein) 정원, 호사스러운 바로크 양식의 테라스와 난간을 엿볼 수 있는 브르트바(Vrtba) 정원 등 프라하 곳곳에서 바로크 역사의 숨결을 느꼈다.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엄격하다는 의미일 테다. 세계적 유산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변화와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대에도 변치 않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유산인지 깨달았다. 체코 전통 음식 스피치코바(svlckova)와 돼지의 허벅지 부위를 오븐에서 오랫동안 훈제해 만드는 베프르조베 콜레노(veprove koleno)로 든든한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었다. 유럽 3대 야경 중 하나라는 명성처럼 프라하의 밤은 낭만적이다. 어둠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블타바강에 황금빛 옷을 입고 찬란한 모습으로 늘어선 중세 건물이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 조금은 쌀쌀한 체코의 숨결과 동시에 따뜻한 바로크적 색채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릴 만큼 프라하가 남긴 여운은 생각보다 길다.











블타바 강이 감싸 흐르는 체스키크룸로프.

어른을 위한 동화
체스키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체코어로 ‛체코의 오솔길’이란 뜻이다. 사진으로 먼저 접한 체스키크룸로프는 실존하지 않는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약 1만 4000명이 이곳에 살고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오간다. 300여 채의 가옥과 성은 1992년 체코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유서 깊고 아름답다. 평화로운 역사 덕분에 300년 동안 예전 그대로 역사적 건축물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영주들이 누렸을 옛 정취에 취해 돌바닥이 정겨운 마을을 무작정 거닐었다. 지도가 필요 없을 만큼 작은 마을은 이름 그대로 걷기 좋았다. 프라하의 성이 황제의 화려한 삶을 보여준다면 체스키크룸로프 성에서는 귀족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고딕 양식을 중심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재한다.






바로크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바로크식 오페라 극장.

가장 번성한 로센베르크(Rosenberg) 영주 통치하에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고, 에겐베르크(Eggenberg) 가문이 다스린 17세기 말엔 바로크풍으로 성을 개축해 바로크 오페라극장과 성 정원을 개장했다. 극장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한 바로크식 오페라극장 중 하나로 20세기 초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250여 년간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곳에서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 <라 디도네(La Didone)>를 감상했다. 패망한 트로이의 영웅 에네아와 카르타고 여왕 디도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오페라로 초기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준다. 연주자들이 악보 옆에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악기나 연주 스타일만이 아니라 무대연출, 조명, 의상, 분장, 안무 등 모든 요소를 바로크 시대 그대로 재현한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페라하우스를 가득 메우는 가수의 노래에 푹 빠져든 4시간. 공연이 끝난 뒤 밖으로 나오자 무대보다 환상적인 야경이 펼쳐졌다. 성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블타바 강물 위로 반짝이는 마을이 마치 섬처럼 떠 있었다. 낭만적인 이 골목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공간일 테지만 건조한 삶에 판타지를 더해주는 동화를 꿈꾼다면 이곳에 와야 한다.











와인의 향기가 가득한 모라비아 미쿨로프.

와인의 향기가 이끄는 대로
체코는 크게 서부의 체히, 동부의 슬레스코와 모라비아 지방으로 나뉜다. 중부, 그 중 모라비아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 중 하나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비옥한 땅에서 체코 와인의 95%를 생산한다. 라인 리슬링, 뮐러 투르가우, 세인트 로랑 등 체코산 와인의 70% 이상이 화이트 와인이다. 브라노프 나트 디이(Vranov nad Dyji) 성에서 와인의 향기를 따라가는 모라비아 여정을 시작했다. 이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으로 절벽 위에 그림같이 자리한다. 1699년에 완성한 이 성의 연회장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은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프레스코화를 잔잔히 비추는 것은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미쿨로프(Mikulov)로 이동했다. 20세기 체코의 시인 얀 스카첼(Jan Skacel)은 이 마을을 “신이 모라비아로 옮긴 한 조각의 이탈리아”라고 표현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점심식사를 즐겼다. 토마토와 칠리, 소시지와 감자 등을 넣고 끓인 카푸스트니차(kapustnica)라는 체코 전통 양배추 수프에서는 묘하게 김치찌개 맛이 났다. 9~10월 짧은 기간 즐길 수 있는 체코 전통주 부르차크(burcak)를 운 좋게 맛볼 수 있었다. 처음 수확한 포도에서 얻은 햇와인으로 와인과 막걸리를 섞은 듯한 맛이 친숙했다. 팔라바 포도 품종 와인도 마셨다. 레몬빛에 상큼한 열대 과일 향이 감돈다. 팔라바는 전 세계 재배량의 80%를 체코, 20%를 슬로바키아에서 재배하는 특이한 포도. 미쿨로프의 팔라바 언덕에는 20km가 넘는 와인 트레일을 조성했는데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찾는다. 올해로 탄생 70주년을 맞이한 팔라바 포도 수확 축제가 얼마 전 열리기도 했다. 때 아닌 낮술에 들뜬 기분으로 미쿨로프 성에 올랐다. 로맨틱한 바로크 양식 조각상과 좌우 대칭을 강조하는 바로크풍 정원이 반겼다. 1575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미쿨로프를 통치하며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일으킨 디트리히슈타인(Dietrichstein) 가문이 이곳을 다스렸다. 모든 영지에서 10%씩 거둬들인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지하에 그 와인셀러가 있다. 1643년에 제작한 길이 6.2m에 지름 5.2m, 무게 26톤에 달하는 거대한 와인통은 10만1400리터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다. 크기뿐 아니라 공들여 새긴 무늬와 장식의 우아함에 감탄이 새어 나왔다. 400년의 역사와 더불어 장인의 숨결까지 느낀 순간이다.






모리비아의 꽃, 크베트나 정원.

미쿨로프에서 가까운 곳에 레드니체·발티체(Lednice-Valtice) 문화경관이 있다. 지금도 유럽 소국의 영주로 남아 있는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가문이 소유한 레드니체 성과 발티체 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설물과 대규모 정원을 포함한다. 레드니체는 체코어로 ‘냉장고’라는 뜻으로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17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빈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가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해 400여 개의 방과 350개가 넘는 비밀의 문을 만들었다. 성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199km² 규모의 정원. 인근의 강물을 끌어들여 인공 호수를 만들고 담장 안에서 사냥도 했다고 하니 진정 그들만의 세상이다. 붉은 지붕의 바로크 양식이 고풍스러운 발티체 성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주거지로 사용했다. 발티체 성은 매년 그해 최고의 와인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 지하에 와인 살롱이라 불리는 거대한 와인 저장고 ‘국립와인센터’가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체코 와인 경연대회가 열리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100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소믈리에가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에서 달콤한 레드 와인까지 6종의 와인을 추천했다. 오크통에 기대서 와인을 홀짝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법처럼 빈잔에 자꾸 와인이 채워졌다. 테이스팅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와 햇빛을 쐬니 금세 술기가 오른다. 아쉬운 마음에 결국 가장 마음에 든 리슬링 품종 화이트 와인을 한병 샀다. 미쿨로프 북쪽 파블로프(Pavlov)로 이동해 토폴란스키(Topolansky) 와 이너리에서도 와인 테이스팅을 했다. 4대째 가족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로 8000그루 규모의 농장에서 포도를 재배한다. 와이너리의 오너는 여섯 살 때부터 와인을 마셔 왔다고 했다. 이 부근에서는 어릴 때 달콤한 와인을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열두살 된 딸은 이제 향으로 와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러한 조기교육(?) 덕에 체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전통 악기 침발롬을 이용한 음악단의 선율은 모라비아에서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침발롬 연주자와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가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의 춤과 노래를 감상하며 와인을 즐겼다.
다음 날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모라비아의 자랑이라는 정원을 찾기 위해 크로메르지시(Kromeriv)를 찾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크베트나(Kvetna) 정원은 꽃의 정원이라 불린다. 17세기 말에 완성한 인공미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엄격한 선과 대칭, 절제된 패턴, 치밀한 계산으로 설계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뒤섞여 있는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착안한 페르시안 카펫 스타일도 볼 수 있다. 한쪽 면으로 약 250m에 이르는 회랑이 뻗어 있다. 지붕 아래쪽이 산책로 역할을 한다면 지붕 위는 전망대다. 페르시안 카펫 스타일 정원은 위에서 보면 더욱 아름답기 때문이다. 회랑 지붕에 올라 그 옛날의 귀부인처럼 천천히 거닐었다. 햇살처럼 무심하게 시선이 닿는 풍경 어디든 와인의 향기가 가득한 모라비아. 와인을 담그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았을 법한 마을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카타르 항공으로 떠나는 체코
카타르 항공편으로 프라하로 향했다.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는 신규 노선으로 하마드 국제공항에서 환승한다. 하마드 국제공항은 2017년 스카이트랙스 어워드에서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5성 공항’ 등급을 획득한 중동 최초의 공항이다. 카타르 항공에서 운영하는 ‘알 무르잔 프리미엄 라운지’는 2개 층으로 구성해 규모가 약 3000평에 달한다. 카타르 항공에서는 환승객을 위한 무료 시티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제공 체코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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