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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LIFESTYLE

미술의 경제학

  • 2017-09-27

더 새로운 것, 더 충격적인 것에 중독된 현대미술의 속성상 자본과 미술은 밀접할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 짚어보는 미술과 자본의 거부할 수 없는 함수관계.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규모 신작 ‘Demon with Bowl’(2017년).

데이미언 허스트가 돌아왔다. 그의 컴백 무대엔 약 50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무려 740억 원에 달하는 예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된 장인을 총동원해 만든 대규모 작품 ‘Demon with Bowl’(2017년)이 등장했다. 베니스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작 발표 전시에 국가 간 미술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날레 못지않은 관심이 몰린 건 어쩌면 당연지사. 유럽의 미술 매체는 앞다투어 “데이미언 허스트가 돌아왔다”라는 헤드라인의 뉴스를 내세웠다. 안 그래도 비싸게 만들어 비싸게 팔기로 유명한 데이미언 허스트가 역대 최고 예산을 들인 작품이라니. 게다가 한동안 데이미언 허스트의 소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년에 걸쳐 제작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하지만 온갖 레퍼런스와 패러디가 난무하고 브론즈, 대리석, 영상 설치 등 매체도 다양한 이 작품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아쉽게도 그리 좋지 않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의 전시는 과장되고 기괴한 사건(extravagant affair)”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텔레그래프> 역시 “이 스펙터클한 실패는 그의 커리어에서 난파선이나 다름없다(This spectacular failure could be the shipwreck of his career)”라고 묘사하는 등 연이은 혹평을 쏟아냈다.






제프 쿤스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베벌리 힐스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Ballerinas’(2010~2014년)를 선보였다.

작품 감상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처음으로 돌아가 740억 원이라는 예산을 떠올려보자. 그는 현대미술계에서 마켓과 자본의 힘으로 탄생, 성장한 대표적인 작가다. 알다시피 그의 출발점엔 영국의 유명한 컬렉터 찰스 사치가 존재한다. 찰스 사치는 1988년 골드스미스 칼리지 학생이던 데이미언 허스트가 기획한 전시〈freeze〉에서 그를 발굴했다. 물론 그때 선보인 작품은 지금 봐도 센세이셔널하지만, 데이미언 허스트와 게리 흄, 세라 루커스를 비롯한 yBa의 급성장엔 찰스 사치라는 자본가의 힘이 컸다는 점은 자명하다.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도 이들의 성장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작품을 사들이는 걸로 유명한 그는 옥션에서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그걸로 모자라 자신이 세운 기록을 직접 깨는 일도 더러 있다. 이런 딜러, 갤러리스트, 컬렉터 등의 자본은 현대미술의 흐름과 직결된다. 매거진 <아트뉴스>에 따르면 제프 쿤스의 작품가는 출판 재벌 피터 브란트(Peter Brant)가 ‘Pink Panther’(1988년)를 1800만 달러(약 20억 원)에 사들인 1999년 크리스티 옥션을 기점으로 치솟아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 전에는 가장 비싼 작품이 28만8500달러, 우리 돈으로 3억200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하게 뛴 셈이다.
이렇게 현대미술계가 딜러와 컬렉터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일반적으로 아티스트는 후원자, 즉 딜러나 컬렉터와 쉽사리 결별하기 어렵다. 일단 스타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후광을 받은 데다,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열면서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찰스 사치가 보유한 자신의 작품을 데이미언 허스트는 도로 사들이기도 했지만, 이는 2017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가 뽑은 영국 부자 명단에 애니시 커푸어와 함께 아티스트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릴 정도로 부를 축적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120명이 넘는 스태프를 거느린 팩토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제프 쿤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사들일 수 있을 만한 자본력을 갖췄으나,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1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America’ (2016년)는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년 9월부터 상설전으로 선보이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2 구겐하임 아부다비에서 11월 7일까지 열리는〈The Creative Act: Performance·Process· Presence〉전에서 애니시 커푸어의 ‘My Red Homeland’(2003년)를 볼 수 있다.

거대 자본의 힘이 미술계의 지형을 흔드는 시대다. 돈이 삶을, 나아가 예술을 지배한다는 건 더는 비밀이 아니다. 자본에 따라 예술의 판도가 바뀐다. 지난 3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출범 후 처음으로 국회 예산안을 발표했다. 백악관이 밝힌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예산안을 보면, 연방 정부의 지원이 전체적으로 크게 감소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트럼프 정권은 중앙 부처 15개 중 국방부, 국토안보부, 보훈부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부처의 예산을 삭감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한국의 문화예술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의 국가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도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이 기금의 예산 삭감이 예술계에 직격탄을 던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NEA는 비영리단체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미국의 문화 예술 지원에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한다. 물론 미국은 사설 기관의 활동이 활발해 한국처럼 몇몇 국가기관에 의존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NEA 덕분에 미국 국민이 문화 예술을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의 이런 결정 탓에 몇 개월간 세계 미술계가 술렁였다. 하지만 지난 7월 발표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현 예산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의 NEA 예산 삭감 계획은 불발됐다.
이처럼 예술과 돈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옥션, 엄청난 작품 가격, 아트 마켓, 기금 등을 떠올린다. 사실 미술은 개인의 취향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러한 이유로 자본의 힘이 더 막강하게 작용한다. 미술 시장의 흐름이 부유한 컬렉터의 사적 취향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계를 흔드는 큰손과 블루칩 작가가 미국과 유럽에 몰려 있긴 하지만, 자본이 급속도로 힘을 뻗치는 이런 시기엔 어디든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국인 컬렉터가 옥션에서 중국 국적 작가의 작품을 비싼 값에 사들이는 건 이미 유명한 사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술 시장이 점차 왜곡되고 전시의 관행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철저하게 컬렉터를 타깃으로 하는 아트 페어나 옥션과 달리 일반인 대상의 전시도 자본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 아니,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므로 오히려 더 휘둘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처럼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페스티벌 등 대규모 행사가 연이어 열릴 때는 더욱 그렇다. 물론 공공 행사는 아트 마켓처럼 작품을 매매하진 않기에 마켓과 맥락을 달리할 수 있지만, 전시란 결국 재정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행사다. 적절한 스폰서십이나 예산이 없다면, 더 많은 대중을 예술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과 자본의 관계는 여전히 흥미로운 불가분의 관계다. 무엇이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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