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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LIFESTYLE

Dignity of Animals

  • 2017-09-20

동물의 생명력과 존재 가치를 화폭에 담는 화가들. 그들이 그린 작품은 때론 친근하게, 때론 진지하게 우리 마음을 흔든다.

1 야생동물 그리기에 전념하는 로버트 베이트먼의 ‘Grizzly Head Portrait’.   2 전통 진채화로 동물을 의인화해 해학적으로 표현한 곽수연 작가의 ‘책거리’

파블로 피카소의 주변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아프간하운드, 닥스훈트, 푸들 등 품종도 다양했다. 개에 대한 그의 애정도 각별했다. 닥스훈트 ‘럼프’는 피카소의 무릎에 앉아 식탁 위 음식을 함께 먹었다고 전해진다. 애견인이 아니면 친구로 인정하지 않아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 개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피카소의 작품에 다양한 개가 등장하는 건 당연지사. ‘개와 소년’, ‘두 명의 곡예사와 개’ 등 자신의 삶을 반영하듯 개와 사람을 표현한 그림이 상당수다. 한 인터뷰에서 “전 작업 중에도 카불(그가 키운 아프간하운드의 이름)을 생각해요. 카불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림도 카불처럼 얼굴이 뾰족해지거나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식으로 바뀌죠”라며 개들이 작품에 영감을 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피카소만이 아니다.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는 거미원숭이, 고양이, 개, 앵무새, 사슴 등 온갖 동물을 키웠다. 그녀가 남긴 143점의 작품 중 55점이 동물과 함께 있는 자화상일 정도다.
동물은 단순히 인간과 함께 사는 존재를 넘어 감정을 나누는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다. 예술가에게도 그렇다. 화려한 삶 이면에 대해 고뇌하는 예술가에게 동물은 위안, 위로, 사랑 그리고 영감을 준다. 그렇다고 동물이 늘 사람과 공존 관계로 화폭에 담긴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그림 속 동물의 형태도 조금씩 달라졌다. 미술사에서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의 시작은 고대 미술로 보는데, 당시의 동물은 주술적이고 기원적인 의미가 컸다. 예를 들어 인간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은 호랑이를 용맹하게 그리거나, 가족의 믿음과 평화, 장수를 상징하는 고양이를 나비, 꽃과 함께 그렸다. 초인의 경지를 열망하는 인간의 끝없는 바람을 동물에 투영했다고 보면 된다. 동물이 신비로움을 벗고 현실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이때부터 화가들은 드라마틱한 세계의 공상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에 있는 동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동물 화가로 이름을 날린 에드윈 랜드시어, 로코코 시대 프랑스 귀족사회의 문화와 취향을 그린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마르그리트 제라르 등 당대 유명 화가들은 개와 산책하거나 방에서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담은 그림을 남겼다. 동물이 있는 풍경화가 주를 이룬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캔버스 속 동물은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피카소와 칼로처럼 동물을 그리되, 입체적이고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애정과 보호 같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현대미술은 동물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는 귀한 존재로 본다. 특히 해외에는 동물 보호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화가가 많다. 그들에게 현대미술은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된다. 캐나다 출신 작가 로버트 베이트먼은 토론토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사랑했다. 집 뒤에 있는 골짜기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관찰하는 게 취미였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야생동물 그리기에 전념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자연주의적 삶을 사는 그가 그린 북극곰, 독수리 등 야생동물은 사진으로 오인할 만큼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생동감 넘치는 풍경과 동물의 표정 등을 보고 있으면 자연에 대한 그의 애착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 크리스틴 아넬도 멸종 위기의 동물과 현존하는 동물을 그리는 야생동물 전문 화가다. 어려서부터 앵무새를 비롯한 다양한 조류와 함께 생활한 그녀는 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특히 새를 그릴 때는 눈을 가장 공들여 그린다. 실제 살아 있는 것처럼 깊이 있게 표현해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브라운 계열의 재생 종이만 고집하는 그녀는 동물을 컬러풀하게 칠해 배경과 대비되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편 유기견의 마지막 모습을 담는,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초상화를 그리는 미국의 마크 바론도 있다. 미국에선 15초당 한 마리의 개가 안락사를 당하고 있다. 유기견이 입양되지 못한 채 안락사당하는 사진을 보고 ‘An Act of Dog’ 프로젝트를 시작한 마크 바론. 사람들에게 유기견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개들이 죽기 전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있다. 2011년에 시작해 55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유기견을 돕는 데 사용한다. 그림 속 개들은 철창 속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기 때문인지 더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3 크리스틴 아넬이 그린 ‘Blue and Gold Macaw’. 살아 있는 것처럼 깊이 있게 새의 눈을 그렸다.   4 김연석 작가의 ‘프렌치 불도그’. 여러 번 덧칠해 실제에 가깝게 표현했다.   5 동물이 주는 따스함과 친밀감을 담아내는 이종서 화백의 ‘귀여운 고양이’.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해외파와 달리 국내 작가들은 ‘반려’의 의미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작가들이 함께한 제38회 국제 HMA 예술제에서 ‘우리 집 굼실이’로 프랑스 부르봉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이종서 화백. “가족처럼 여기며 함께해온 굼실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그리기 시작했어요. 보고 싶고 또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그림으로 남겼죠.” 그가 그린 굼실이는 사진 속 모습 그대로 털 한 올 한 올 섬세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내 특유의 따스함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반려동물 초상화 작가 김연석은 반려동물을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여긴다. 초상화가이기 때문에 사실을 더 사실처럼 그리려고 노력하는 편. 물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듯 여러 번 덧칠해 털로 덮인 동물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독창적인 회화 기법으로 자신만의 동물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도 있다. “직접 키우던 개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본격적으로 사람과 가깝고 길들여진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힌 곽수연 작가. 그녀의 그림은 민화처럼 한국적 색채가 짙게 서려 있다. 전통 진채화(광물성 석채로 그린 채색화)로 작업하면서 현대적 기법을 혼용하는 실험적 작업을 시도하는데, 주인공인 동물을 의인화해 해학적으로 표현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개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고, 양이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재치 있는 그림. 그녀는 동물을 화폭에 담으며 단순히 동물을 그리는 것을 넘어 현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동물을 포착한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그들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고, 각박한 세상에 동물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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