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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 라이트

  • 2017-09-19

뛰어난 작가는 때때로 흘러간 시간 속에 숨어 있다. 생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남다른 예술성으로 영남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들을 찾았다.

1 박현기, TV 어항, 1979   2 박광호, 8-알파와 오메가, 1971   3 김종식, 닭을 안은 여인, 1956

김종식, 김윤민, 임호, 서성찬 등이 참여한 토벽동인은 부산 최초의 서양화 동인으로 지역색을 바탕으로 추상적 작품을 선보이며 부산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지난 1988년에 작고한 김종식 작가는 드로잉과 유화를 포함해 2만 점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작품이 남아 있어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를 비롯한 부산 미술계 원로들이 꾸준히 강조하는 연구 대상이다. 대담하고 즉흥적인 붓질, 과감한 색채로 부산항과 판자촌, 노점상 등 향토성 짙은 소재를 포비즘적 작품으로 표현한 초기를 거쳐 1970년대에는 선과 색채를 해체하는 추상적 풍경화를 주로 작업했고, 말년에는 드로잉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외부 활동보다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생전에는 일부 미술 전문가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2001년 부산 공간화랑에서 작고전이 열렸으나 공간적 제약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가운데,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는 그를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종식 작가를 연구해온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해에 부산 미술사 정립을 목표로 내세우며 토벽동인을 재조명하는 강연을 개최했으며,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부산 미술, 그 정체성의 출발: 토벽동인>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내년에는 김종식 작가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 이미 일부 갤러리에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를 짐작이라도 한 듯 김종식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을 선보이며 그의 예술 세계를 주목하고 있다.
박광호 작가는 최근 대구 미술계에서 조금씩 거론되는 인물이다. 지난 2000년에 작고한 그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한국적 색채로 표현하며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는 드물게 초현실주의를 고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에서 약 40년간 교직 생활을 한 그가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지역 미술계와의 교류를 피한 그의 성향이 한몫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 출신으로 이루어진 ‘앙가주망’의 그룹전과 대구 추상미술인의 그룹전 <직전>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탓에 그의 예술성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것. 지난 2012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작고 작가 발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박광호 작가의 첫 번째 회고전이 열렸고, 이후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주축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고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은 지역 미술계에서 장르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과 더불어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지역 미술계와 단절되었다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이들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것은 비단 지역 미술계만의 숙제가 아니다. 일례로 대구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인 박현기 작가는 200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2010년 갤러리현대의 회고전을 거쳐 지난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박현기 1942-2000 만다라>전을 통해 대대적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전시에서는 2만여 점에 달하는 자료를 공개했고, 이는 백남준과 차별화한 ‘한국적 미디어 아트’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미술 작가의 재조명은 곧 한국 미술사를 정립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지역 미술사를 탐구하고 지역에서 나아가 수도권에 소개하는 선순환을 통해 한국 미술의 아카이브를 구축해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2의 이중섭과 박수근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
사진 제공 대구문화예술회관, 부산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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