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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ARTIST&PEOPLE

프랑수아 모렐레 다시 만나기

  • 2017-06-02

기하추상의 거장이자 네온 아트의 선구자로 주목받는 프랑수아 모렐레는 옵아트, 키네틱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과도 관련이 있는 작가지만 특정 사조에 속한 적 없이 독자적 행보를 이어왔다. 그는 다채로운 시리즈 작업을 통해 끝없는 실험과 변화를 시도하며 2차원과 3차원을 종횡무진 누볐다. 작년 5월 작고한 그의 개인전이 5월 25일부터 7월 9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전시작을 포함한 주요 작품을 감상하며 우연성, 모순, 대비, 유머가 두드러지는 모렐레의 유쾌한 조형 세계에 동행해보자.

Random Distribution of 40,000 Squares Using the Odd and Even Numbers of a Telephone Directory, Oil on Canvas, 100×100cm, 1960

Random Distribution of 40,000 Squares Using the Odd and Even Numbers of a Telephone Directory
프랑수아 모렐레(Francois Morellet)는 1950년 브라질에서 스위스 예술가 막스 빌(Max Bill)의 추상미술을 처음으로 접한 후, 한동안 엄격한 규칙성과 획일적 배치가 특징인 기하추상을 추구했다. 그러다 점차 전통적 구성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자적 조형 세계로 나아가며 스스로 ‘게임의 법칙’이라 칭한 우연성을 도입한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제작한 ‘그리드(Grid)’ 시리즈에 속하며, 기하추상에 우연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사례다.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홀수와 짝수에 따라 분포된 4만 개의 정사각형’이라는 제목 그대로 우연히 발견한 숫자에 기반을 두고 제작했다. 캔버스에 4만 개의 사각형을 그린 후 아들과 부인에게 전화번호부에서 임의로 찾은 숫자를 부르게 하고 짝수인 경우 적색, 홀수인 경우 청색으로 사각형을 채운 것. 체계성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우연에 의해 구성됐다는 반전이 있다.





Sphere-trame, Stainless Steel, 240cm(d), 1962

Sphere-trame
모렐레가 제작한 최초의 입체 작품이다. 그는 1961년 6명의 미술가가 프랑스에서 결성한 GRAV(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의 창립 멤버다. 이 그룹은 시각적 착시를 유도하는 옵아트, 움직임의 요소를 도입한 키네틱아트와 연관성이 있으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공간, 시간, 빛, 관람자의 참여를 강조했다. 스테인리스스틸 막대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구(球) 형태로 만든 이 작품에서도 그런 특징이 보인다. 감상자의 위치와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체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는 1968년까지 GRAV 활동에 참여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평면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설치 작업을 전개했다.







1 Geometree N°5 A, Branch and Soft Lead Pencil, 160cm(d), 1983  2 Delacroix-defigure, 15 White Canvas Format, 450×800cm, 1989

Geometree N°5 A
프랑스 숄레에서 태어난 모렐레는 줄곧 고향에서 작업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숄레의 정원을 열심히 가꾸기도 한 그에게 자연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초반에 시작한 ‘기하학적 형태’ 시리즈 중 하나로, 자연의 일부를 재료로 도입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는 벽에 흑연으로 그은 선과 이에 맞닿은 나뭇가지가 전부다. 두 선이 이어져 하나의 원을 구성하는데, 전체 비율상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가 약 30%, 벽에 그은 선이 70% 정도. 원이라는 단순 형태에 존재하는 기하학과 자연, 평면과 입체, 매끈한 필선과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의 대비가 돋보인다. 작품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모렐레는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처럼 말장난을 즐긴 작가다. 그는 종종 단어를 결합하거나 철자를 삭제, 혹은 변환시킨다. ‘Geometree’라는 제목은 나뭇가지를 재료로 쓴 점에 착안해 ‘기하학’이란 의미의 ‘Geometrie’에서 i를 e로 교체한 것이다. 이와 같은 언어유희와 우연성은 다다이즘과 모렐레의 공통점이다. 모렐레의 작업을 ‘다다추상’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Delacroix-defigure
미술사의 명화를 재해석한 1980년대 후반의 ‘Defigurations’ 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모렐레가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8년)을 자신만의 추상 언어로 번안한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바이런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는데, 향락을 일삼던 사르다나팔루스 왕이 적군에게 포위되자 자신의 노예와 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극적인 장면을 묘사했다. 붉은 색조와 대각선 구도가 지배하는 들라크루아의 화면은 모렐레에 의해 백색 기하추상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등장한 강렬한 인물 형상은 15개의 백색 캔버스로 환원돼 흰 벽 위에 놓였다. 비슷한 크기의 백색 사각형이 반복 배치되지만, 다양한 각도로 흩어지고 일부는 포개지면서 역동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들라크루아의 회화와 화폭을 벗어나 공간으로 확장된 모렐레의 추상 설치 작업, 두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연속성을 따져보는 데 감상의 묘미가 있다.







1 Relache N°2, Acrylic and Oil on Canvas, Lacquered Aluminium, Neon Tubes and Canvas Strips, 332×270×26cm, 1992  2 Petite Acrobatie N°5, Neon Tubes and Acrylic on Canvas on Wood, 198×150cm, 2011

Relache N°2 / Petite Acrobatie N°5
모렐레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바로크 미니멀’이라는 모순적 단어의 조합을 제시했다. 장식적이면서도 단순하다는 뜻이다. 이런 특징은 그의 네온 작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네온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네온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재료인 네온은 내 작품에 시간과 리듬 같은 요소를 더해주었다.” 브루스 나우먼, 조지프 코주스, 트레이시 에민 등 작품에 네온을 활용한 현대미술가는 여럿이지만, 모렐레는 간판이나 광고에 쓰인 이 재료를 가장 먼저 미술에 도입한 작가다. 그가 처음으로 네온을 사용한 것은 1963년이다. 1992년에 시작한 ‘Relache’ 시리즈는 상이한 색상의 직각 형태가 네온 튜브, 채색 알루미늄, 물감으로 제작돼 마름모꼴 캔버스 위에서 중첩된다. 또 다른 작품 ‘Petit Acrobatie’는 원형의 화면, 이른바 톤도(tondo)에 적색과 청색 네온을 배치했다. 백색 면 위에서 곡선의 적색 네온과 직선의 청색 네온이 대비를 이루고, ‘Relache’와 마찬가지로 선들이 화면 밖으로 확장하며 자유로운 이미지와 운동감을 더해준다. ‘작은 곡예’라는 뜻의 작품 제목이 곡예사의 몸짓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1 Confrontation N°2, Pencil and Acrylic on Canvas on Wood, 206×206cm, 2016

Confrontation N°2
이 작품은 갤러리현대의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선은 모렐레의 작품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조형 요소다. 말년에 모렐레는 아크릴물감으로 칠한 선과 연필로 그은 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비스듬히 놓인 정사각형 화면의 왼편에 흑색 아크릴물감으로 칠한 굵은 사선을 반복 배치하고, 그 선이 끝나는 지점과 연결해 오른편에는 가는 연필 선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넓게 펼쳐진다. 이로써 왼쪽 윗변의 약 3분의 2 지점과 아래쪽 꼭짓점 사이에서 서로 다른 두 선을 나누는 수직선을 암시한다. 이 보이지 않는 선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의 선이 팽팽하게 대면하는 셈이다. ‘대결’은 모렐레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퐁피두 센터 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장 위베르 마르탱의 말을 빌리면, 엄격하면서도 경쾌한 것이 모렐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순과 대결, 그 사이 미묘한 긴장과 균형감. 바로 위대한 예술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김보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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