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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ARTIST&PEOPLE

큐레이터의 일

  • 2017-06-02

<사동 30번지>(2007년), <시선의 반격>(2010년), <니나 카넬: 새틴 이온(Satin Ion)>(2015년) 등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전시로 이름을 알려온 독립 큐레이터 김현진. 그녀는 현재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를 마무리하고, 올 하반기 남산예술센터에서 <십 년만 부탁합니다>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십 수년간 국내외 미술계를 종횡무진 헤쳐온 그녀에게 큐레이터가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대학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큐레이터가 되는 건 아닌데, 큐레이터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원에 다니던 당시 한국에 처음으로 몇몇 대안 공간이 생겼어요. 1999년 겨울에 문을 연 대안공간 루프에서 자원봉사 형식으로 일을 시작했죠. 거기서 작은 전시를 몇 번 진행했는데, 작가들과 소통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그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죠. 이후 쌈지스페이스와 아트선재센터에서 초창기 경력을 쌓았어요.

2003년에 불현듯 미술관을 그만두고, 스웨덴 룬드 대학과 말뫼 예술학교가 주관한 ‘크리티컬 스터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유학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트선재센터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종종 김선정 관장님과 해외 출장을 갔어요. 그러면서 당시 활발하게 변화하던 국제 미술 현장을 좀 더 알고 싶고, 계기가 되면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 저는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무엇이든 계속 흡수해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였죠. 그래서 과감하게 미술관을 그만두고 말뫼로 떠났어요. 거기서 1년간 공부하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간 여러 미술 기관에서 객원 형식으로 1년 정도 맡아 운영하거나, 일정 기간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도 해왔고요.

2005년 네덜란드의 판 아버 미술관에서 1년간 리서치 큐레이터를 맡는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미술사를 주도해온 서구 미술관의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요. 한국의 미술 현장은 역동적이지만, 그만큼 제도적으로 미진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큐레이터는 미술 현장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예술적 철학에 입각해 그것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나 환경 등을 고민하고 개선해나가야 해요. 2005년에 판 아버 미술관에서 리서치 큐레이터로 일한 건 스웨덴의 크리티컬 스터디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인연을 맺은 관장 찰스 에셔(Charles Esche)가 초청해줬기 때문이었어요. 판 아버 미술관은 소장품으로 유명한데, 그곳의 현대미술 소장품 목록을 조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최근 이슈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2014년 초부터 2016년 말까지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셨는데, 그곳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나요?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다 2013년에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을 맡게 됐는데, 그때 <애니미즘>이란 전시를 초청했어요. 그 전시를 처음 기획한 이가 바로 HKW의 시각예술·영상 부문 수석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였죠. 그때 함께 일하면서 좋은 동료가 됐는데, 나중에 그가 HKW에 자문위원으로 저를 추천해줬어요. 하지만 작년에 자문위원직은 그만뒀습니다. 자문위원은 HKW의 전시를 기획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이 있거든요. 올해 저는 공동 큐레이터로서 현재 열리고 있는 HKW의 <2 or 3 Tigers>전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1 Heinrich Leutemann, Road Surveying Interrupted in Singapore, Wood Engraving after Heinrich Leutemann, c.1865~1885
2 지난해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십 년만 부탁합니다>공연.

전시 제목에서 ‘호랑이’는 무슨 의미인가요?
역사적으로 호랑이는 아시아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19세기 무렵 아시아 곳곳에 서구 열강이 침략하면서 호랑이가 무차별적으로 죽고, 결국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죠. 저희는 호랑이를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매체(medium)로 봤습니다. 즉 호랑이를 통해 아시아의 근대 100년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춰보는 거죠.

전시 소개를 좀 더 해주세요.
출품작 중 호랑이가 땅을 측량하는 기구 세오돌라이트를 공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19세기 판화가 있습니다. 이는 야생과 아시아를 대변하는 호랑이가 모든 걸 측량하고 제도화하는 서구의 모더니즘과 마주하는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한편 이 전시는 서구 모더니즘으로 재단할 수 없는 아시아 고유의 영역이 어떻게 다시 서구 사회에 침투해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올 하반기엔 한국으로 돌아와 남산예술센터에서 이주요 작가와 <십 년만 부탁합니다>전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듣기로는 10년 전부터 이 전시를 염두에 두셨다고요.
우선 이주요 작가하곤 오래전부터 여러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2004년엔 함께 ‘우적(Friendly Enemies)’이란 컬렉티브를 결성해 잡지를 출간하기도 했죠. 10년 전 이주요 작가가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없었어요.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10년씩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죠. 그걸 계기로 지난 2007년 계원예술대학교 내의 Gallery27에서 <십 년만 부탁합니다>전을 열게 됐어요. 향후 10년 동안 개인 컬렉터들에게 그들이 각자 선택한 드로잉과 설치 작품, 오브제 등을 맡기기로 했죠. 어느덧 그 시간이 흘러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됐어요.

<십 년만 부탁합니다>를 전시가 아닌 ‘공연’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 해 전부터 이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지 고민해왔어요. 그러다 불현듯 전시에 ‘시간’을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작가와 떨어져 있었던 각각의 작품도 10년이란 시간 동안 그 나름의 스토리가 생겼을 거예요. 그 작품을 맡은 이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거고요. 이런 이야기를 한데 모아 ‘사물이 주인공인 공연’을 만들기로 했죠.

상상이 잘 안 돼요. 사물이 주인공이라니.
일반적 연극은 배우들이 연기를 하죠. 그런데 이 공연에선 사물들이 연기합니다. 물론 사물 스스로 움직이진 못하니 기계장치나 퍼포머의 도움을 받겠죠. 여기에 각각의 사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더하는 형식입니다. 관람객은 1시간 남짓의 공연을 객석에 앉아 보게 되고요. 다시 말해 연약한 오브제들이 약자로 내몰린 위태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겁니다.

자칫 잊힐 뻔한 작품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거네요.
큐레이터의 일 중 하나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겁니다. 이주요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술 시장의 상품으로서의 접근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미술사나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어요. 또 역설적으로 이번 <십 년만 부탁합니다>를 계기로 작품을 돌려받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좋은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이렇게 남다른 형식의 전시를 기획하시는 걸 보면, 큐레이터가 ‘창작자’의 역할도 겸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큐레이터는 단순한 조직자(organizer)가 아닙니다. 물론 전시 조직 능력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전시는 궁극적으로 작가와 큐레이터의 창의성이 만나 만들어진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작가들과 평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작업 방향을 존중하면서 저만의 관점을 제시하고, 좀 더 정교한 영역을 구축하죠.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미술 기관과 인연을 맺고 현장 중심의 미술관 프로그래밍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이건 제가 최근 몇 년간 미술관에 소속돼 활동한 이유이기도 하죠. 미술계엔 작가나 큐레이터가 개성을 펼치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놓고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라는, 일종의 부조리가 존재하거든요. 미술관을 관람객은 물론 작가, 미술 관계자들이 모두 만족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제공 코리아 투모로우(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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